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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공학 - 시스템으로 세상을 디자인한다
분야 융합과학/산업공학 날짜 2011-02-24
산업공학 - 시스템으로 세상을 디자인한다

공학을 이해하며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능력을 갖게 하는 산업공학은 인터넷과 정보혁명 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NHN 김범수 공동대표의 사례를 보면 표면적으로 그의 사업영역과 성공내용이 산업공학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 사장의 이력과 대학원 전공분야, 취업 후 경력 등을 자세히 관찰하면 세심한 시스템 분석능력과 신산업의 발전단계를 사업의 성장모델에 정확히 일치시키는 안목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IT산업의 변화속도를 과대평가한 나머지 시장의 성숙과 기술의 파급에 걸리는 시간을 무시하고, 앞선 분야에 확실한 사업모델 없이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게임과 NHN의 성장 배경에는 시장과 사업을 제대로 읽고 변신하는 치밀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치밀함은 개인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김 사장이 산업공학 교육에서 받은 시스템 분석능력과 기획능력의 산물이라고 판단된다. 보통사람에게는 일면 신기하게 여겨지는 NHN의 성장과정이 김 사장에게는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시스템을 파악한 후 행동하는 자신감에 있는 것이다.

생산성의 혁명 이끌어

산업공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맞춰 성장했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산업공학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추종해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의 도입이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산업공학 고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김 사장의 사례도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에서의 사업기회를 치밀한 기획으로 추진시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산업공학은 산업혁명 후 시작된 제조시스템과 함께 시작됐다.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원칙’에서 출발한 산업공학은 20세기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대량 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던 테일러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노동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이런 철학은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생산성의 혁명’으로 발전했다. 드러커는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종교인 기독교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도 아닌 바로 테일러리즘이라고 역설한바 있다.

즉 테일러리즘에 의한 생산성의 혁명이 생산력을 극대화해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이것이 결국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수도 시스템, 냉장고, 에어컨 등의 기술이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기여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고급기술을 대량 생산해 보통사람의 생활의 일부분으로 공급하는 생산성 기술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리적인 최적화, 운영과학이 산업공학에 포함됐고 이후 이는 경영과학으로 발전했다. ‘시스템적인 접근방법에 의한 효율성의 극대화’에 ‘수리적 최적화’라는 도구를 갖게 된 산업공학은 1950년대 이후 독립적인 학문으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 기술이 작업관리, 인간공학, 품질관리, 생산관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1980-90년대에는 비효율적인 기업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운동인 기업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과 일본의 여러 경영관리기법이 산업공학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품질분야에서는 최근 프로세스 혁신개념이 더욱 확장·적용돼 불량률을 1백만분의 1이하로 줄이자는 ‘6 시그마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산업공학은 이런 분야에서도 핵심 연구인력과 실무자원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 및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정보 시스템, e-비즈니스 , e-매뉴팩처링 등의 디자인 및 응용에 산업공학이 기여하고 있다.

첫째도 둘째도 시스템

산업공학에서 가르치는 주요 내용은 시스템적 접근법, 최적화 및 계량분석 역량, 모델링 및 분석 능력, 제조업무 프로세스 관리 및 시스템의 혁신능력, 기획 및 관리 기법에 대한 기본 소양이다. 산업공학 전공자들은 또한 다양한 분야의 응용프로그램 개발능력을 교육받고 있으며, 공학도에게 부족하다고 인식되고 있는 협업능력과 의사소통능력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있다.

과거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공학은 인간공학, 작업관리, 생산관리, 품질관리, 재고관리 등 제조 시스템의 관리라는 개념에서 교육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통합 전산시스템(ERP), 공급체인관리(SCM) 등 기업정보 시스템과 통합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기 시작하면서 수리계획, 통계분석, 데이터 마이닝, 최적화, 의사결정 시스템, 시스템 모의실험, 공장 자동화, 제품/프로세스 디자인에 대한 교육도 추가되고 있다.

또한 전산시스템 사용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감성공학 등이 인간공학분야의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술경영도 산업공학의 중요한 부문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우수한 강점을 가진 산업공학이 아직까지도 사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학계 및 산업계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계산업이나 화학산업처럼 고유한 영역이 없는 산업공학의 특성은 앞으로도 잠재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직도 산업공학은 과학재단의 기술분류에서도 독립적인 학문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기계공학으로 분류돼 있다. 또 IT산업 인력의 20%이상을 공급하고 있으면서도 IT관련학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그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시스템 통합 및 기업 컨설팅 부문 등은 산업공학의 고유영역 및 고객 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업공학은 공학과 경영학, 경제학 모두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진 학문이다. 때문에 많은 유명한 회사의 CEO가 산업공학 전공자다. 오래 전 미국의 국가적인 영웅으로 부각됐던 크라이슬러사의 전회장 리 아이아코카를 비롯해 유나이티드항공사의 존 에드워슨, 노스웨스트항공사의 존 다스버그, UPS의 마이클 에스큐 등 전직 또는 현직의 CEO가 그들이다.

공학과 경영 마인드를 두루 갖춰

유명한 높이뛰기 선수 에드윈 모세스, 달라스 카우보이의 전 감독 톰 란드리,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세이브 존슨 감독, 시애틀 매리너즈의 찰스 암스트롱 구단주 등은 전통적인 산업공학이 아닌 독특한 분야에서 성공한 산업공학인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공학과를 가진 조지아공대의 경우 4백여명의 주요 기업 CEO를 배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많지는 않으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김동진 부회장을 비롯해 하나로 통신의 윤창번 사장, 대우정보시스템의 박경철 사장 등이 있다. 또한 삼성전자, SK 텔레콤 등 대기업에도 산업공학 출신 임원들이 많이 진출했다.

김범수 사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IT, 특히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에는 산업공학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한글과 컴퓨터의 전하진 전대표, 한국정보공학 유용석 사장을 비롯해 한때는 산업공학 출신이 코스닥 등록 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CEO를 배출하기도 했다. 공학을 이해하며 최적화와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능력도 보유하고 있는 산업공학 출신자들이 인터넷과 정보혁명 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산업공학 출신의 또하나의 특징은 다른 분야에 진출한 경우에도 탁월한 기획능력과 업무 수행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유식 변호사를 비롯해 이미 상당수의 판사, 변호사가 산업공학 교육을 받고 그 장점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다. 산업공학 석사 출신의 한 현직 판사는 산업공학에서 받은 체계적인 사고와 분석능력이 법조인으로서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산업공학을 전공한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싱크탱크로 알려진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산업공학 출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진에는 석사시절 경영과학이나 산업공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다수 있다. 날카로운 시각과 독창적인 철학을 제시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W 이론을 만들자’라는 책의 저자인 서울대 이면우 교수가 사실은 인간공학을 전공한 산업공학자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산업공학적인 사고방식의 창의성과 강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공자들이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 중에는 카톨릭 신부가 된 산업공학 전공자가 카톨릭 교단에서도 사업기획, 정보시스템 통합 같은 업무를 기획하고 관장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례가 있다. 이는 산업공학이 가르치는 시스템적인 사고와 최적화 능력, 사업기획 능력 등이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이라는 의미다.

산업공학 출신자들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는 시스템 통합 및 컨설팅 분야다. 유명 외국계 컨설팅회사인 D사는 올해 한국 신입사원의 3분의 1을 산업공학 전공자로 채웠으며, 전체 컨설턴트 중 산업공학 출신은 경영학과 다음으로 많은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는 경영학과와 산업공학과의 규모 차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분야도 진출 활발

최근에는 회계법인과 증권사, 카드사도 산업공학 전공자를 채용하고 있다. 통계와 계량적 분석이 뛰어나고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인간공학을 전공한 산업공학도가 신용카드사에 취직해 고객의 잠재적인 욕구를 분석하고, 고객만족을 위한 고객특성분석 및 대량고객 특성화 업무를 담당하는 사례도 있다. 그동안 외국의 산업공학도에게는 진출이 활발한 분야이나 유독 국내에서는 진출이 미진했던 의료경영, 호텔, 통신, 서비스, 물류 등의 분야에도 이제 산업공학인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산업공학과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최근 2-3년 간 학생지원, 인기도 등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의 교육에 대한 만족도도 공대 평균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공계 대학원의 지원률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산업공학과 대학원의 경쟁률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내 산업이 제조업의 성숙단계로 접어들어 산업공학적인 전문성을 많이 요구하게 된 것과 전통산업이 IT와 접목되면서 산업공학도의 진출분야가 넓어진 때문으로 판단된다.

공공시스템 분야는 산업공학의 참여가 가장 절실한 부문인데도 아직은 산업공학인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다. 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의 대표적인 물류기업들이 산업공학 출신자를 CEO로 두고 있는 것을 보면 물류와 같은 국가기간시스템에서의 산업공학적인 사고가 매우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원자력과 같은 거대시스템의 안전관리분야도 국내에서는 매우 취약한 분야다.

선진국의 경우 안전인증, 인간공학적 관리프로그램 등이 안전시스템관리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어 사고방지와 안전관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법제화·표준화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구지하철 사고와 태풍 매미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기간산업을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관리하는 체계가 매우 미흡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좀더 선진화된 공학 교육 체제를 갖춘 네덜란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산업공학이 왜 지금보다 훨씬 비중있게 취급돼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전 공과대학 중 산업공학 및 산업경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이며, 중상위권인 아인트호벤공대 산업공학과의 경우 최근 10년 만에 학생 1천8백명, 교수 60명을 보유한 초대형 학과로 변신했다.

산업공학을 떠나 법조계나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조차도 “한번도 산업공학을 전공한 것이 후회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라고 이야기하는 점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고민하고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발상의 전환 방향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장학금이나 유학기회 같은 유인책이 아니라 공학 마인드를 가진 우수한 인력을 지속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다시 이공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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