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사이언스
  • 과학동아
  • 어린이과학동아
  • 수학동아
  • 시앙스몰
  • 지니움
회원가입 로그인
닫기

동아사이언스

기술가치평가 - 기술의 가격을 매긴다
분야 기타/기타 날짜 2011-04-07
기술의 가격을 매긴다
기술가치평가
| 글 | 허은녕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ㆍheoe@snu.ac.kr |

1997년에 닥친 외환위기는 경제시스템을 비롯해 정치, 교육, 산업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외환위기 이후 일어난 많은 변화 중에서 눈에 띠는 현상이 바로 벤처붐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작된 벤처기업 육성책으로 1999년 이후 몇 년 동안 거의 전 분야에서 벤처기업이 생기고 또 수많은 성공담이 탄생했다.

대기업 연구소에 있던 엔지니어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뛰어나와 사업을 시작하고, 대학생과 교수가 학내기업을 만든 뒤 기술을 개발해 팔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한 시장이 커지면서 닷컴회사가 부상했고 게임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벤처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큰 돈을 번 창업자가 여럿 등장했다. 건국 이후 60년 산업 역사상 우수한 ‘기술’ 하나만 개발하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기술은 얼마입니까

사실 벤처기업의 꿈은 이미 1980년대에 익어가고 있었다. 세계적인 워드프로세서를 물리치고 우리 글을 지킨 ‘ 글과 컴퓨터’, 의료기기 시장에 혁신을 일으킨 ‘메디슨’이 성공한 벤처기업의 시초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땅이나 건물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기술에도 중요한 재산가치가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21세기에 들어서며 기업의 수익 원천이 ‘기술을 포함한 지식자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며 이들을 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당연히 새로 소개되는 기술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가 중요한 연구주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기술가치평가는 바로 이렇게 시작됐다.

 
   
 
 
대체에너지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는 기술가치평가 분야의 한 축이다. 사진은 프랑스 남쪽에 있는 ‘오델로 태양열 발전소’ 모습.
벤처기업의 등장으로 금융권 역시 보증이나 담보 위주에서 성장가능성이나 신용 위주로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 또한 기업 성장가능성의 척도로서 기술가치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과학산업’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이제는 자연과학 분야의 발견도 곧바로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을 아는 사람들이 직접 평가에 참여하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기술가치평가 전문가를 찾는 수요가 증가했다.

기술변호사인 변리사가 기술·특허 관련 재판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기술의 가치평가나 기술이전을 전문으로 하는 자격증이 1999년에 만들어졌으며 전문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서울대 공대의 지구환경경제연구실과 기술정책협동과정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두 과정 모두 대학원 중심과정으로, 공학이나 이학의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평가기법의 지식을 추가해 이를 융합하는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지구환경경제연구실은 주로 대체에너지기술, 이산화탄소저감기술, 수자원확보기술에 대한 평가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깨끗한 환경이 가지는 가치나 공공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반면에 기술정책협동과정은 정보통신, 생명공학 같은 첨단기술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용가치와 비사용가치

가치를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총 가치를 사용해 얻어지는 가치(사용가치)와 사용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가치(비사용가치)로 나누는 방법이다.

사용가치는 다시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는 ‘직접사용가치’로 기술을 직접 사용하는 활동에서 얻어진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처럼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하거나 문자를 보낼 때 얻어지는 가치를 말한다. 두 번째는 ‘간접사용가치’로서 유명 브랜드나 신제품을 사용해 사용자에게 주어지는 가치를 의미한다. 세 번째는 ‘선택가치’로 재화를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사용하고자 하는 행동과 관련된 가치다. 미래에 과연 그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택가치가 발생한다.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과 비슷해 ‘유산가치’라고도 한다.

비사용가치는 재화를 사용하는 일 이외에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비사용가치는 ‘존재가치’와 ‘보존가치’로 나눈다.

먼저 존재가치란 어떤 물건이나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가치를 뜻한다. 예를 들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동식물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치를 부여하거나 먼 지역의 아름다운 천연경관 지역에 가본 적도, 가볼 계획도 없는 사람이 단지 그 지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보존가치는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한 자원이 미래 세대에 전해지리라는 기대에 따른 가치를 뜻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환경보전단체의 활동에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 이런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가치는 유형가치(유형자산)와 무형가치(무형자산)로도 나눌 수 있다. 유형자산은 부동산, 기계설비, 채권 같은 기존의 가치평가에서 사용되던 자산항목이며, 무형자산은 대표 사례로 지적자본을 들 수 있다. 지적자본은 특허나 고급 기술인력 같은 기술재산 이외에도 상표권, 고객 데이터베이스, 제휴 파트너를 포함한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기업의 경영능력을 측정하거나 실제 가치를 파악하는 데 해당 기업의 지적자본을 제대로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술가치평가 비중 커져

일반적으로 기술가치평가는 기술성, 시장성, 사업성으로 만든 평가기준의 틀에 따라 이뤄진다. 즉 기술이 우수한지, 만들어 팔 시장이 충분히 있는지, 사업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개별 항목별로 가중치를 통해 점수를 매겨 최종 가치를 평가한다.

 
   
 
 
경쟁력 있는 기술은 기업 성장가능성의 척도다. 구글은 ‘검색엔진’ 기술로 창업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760억 달러 자산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공공기술의 경우 국가가 직접 사용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가치 이외의 평가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서 말한 세 가지 속성 이외에 ‘사회적 중요성’의 항목을 추가해 만든 평가틀로 그 가치를 산정한다. 이때 공공기술의 가치는 주로 기술개발이나 적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추가 파급효과를 산정해 평가한다.

첨단기술 평가는 전통적인 가치평가 방법론으로는 충분한 평가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기술가치 평가에 새로운 분석틀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학술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방법론은 옵션가치모형기법과 조건부가치평가법이다. 두 기법 모두 최근 신기술 평가나 벤처기업 평가에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술평가는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증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그 쓰임새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에서도 연구개발 관련 부처별로 전문평가원을 설립하고 전문가를 초빙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기술평가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자기분야의 과학지식을 습득한 뒤 평가기법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P r o f i l e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자원환경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겸 기술정책대학원협동과정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지구환경경제연구실(enecon.snu.ac.kr)을 이끌고 있다.
자료첨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