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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공학 - 정보기술의 미래 이끈다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기타
산업기술/재료
날짜 2011-04-07
정보기술의 미래 이끈다
스핀공학
| 글 | 김상국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ㆍsangkoog@snu.ac.kr |


자석은 무엇으로 이뤄졌을까. 우선 막대자석을 원자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크기의 분자나 더 작은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철, 코발트, 니켈 같은 원소는 아주 작은 자석이다. 수많은 작은 자석이 서로 같은 방향으로 배열돼 있으면 강자성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되는 자성물질은 바로 강자성을 띤 원소로 이뤄져 있다.


스핀은 작은 자석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적혈구(붉은색)과 백혈구.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 분자에는 자성을 띤 철을 함유한 ‘헤미’가 존재한다.
특정 원소는 왜 막대자석과 같은 물성을 보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자석의 본질을 ‘스핀’(spin)이라고 한다. 사실 원자의 자성은 전자가 갖고 있는 스핀 상태로부터 나온다. 지금부터 양자역학 개념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스핀을 단순히 엄청나게 작은 자석이라고 생각하자.

다소 생소한 개념인 ‘스핀’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다. 사람은 5분 동안만 숨을 쉬지 못해도 생명에 치명적이다. 호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혈액 속에 있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끊임없이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헤미’라는 붉은 색소와 글로빈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이 헤미가 바로 자성을 띤 철을 함유하고 있어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핀이 없었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성 박테리아(Magnetotactic bacteria)에는 60~80nm 크기의 자석이 인간 척추의 등골처럼 나란히 배열돼 있다. 이 작은 자석은 미생물의 생존에 어떤 역할을 할까. 이 미생물은 자석을 이용해 거대 지구가 내뿜는 자기장(=지자기)을 감지해 자신이 움직일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새는 1년에 수백~수만km의 경로를 정확하게 이동한다. 연어는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갔던 단 한번의 경험을 더듬어 같은 강의 상류로 회귀한다. 이들 생명체는 마치 정확한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최첨단 GPS를 갖고 있는 듯싶다. 어떤 학자는 이들 생명체에 지자기를 감지할 수 있는 자석물질이 내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원자 크기의 작은 자석이 있는 반면 지구처럼 거대한 자석도 있다. 자성물질로 이뤄진 나침반의 N극은 지구의 북극을 가리킨다고 배웠다. 이는 막대자석의 N극이 지구의 S극에 끌려 북쪽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보통은 나침반의 N극이 지구 자전축의 북극을 가리킨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지자기의 S극은 지축의 북극과 일치하지 않는다.


지구가 내뿜는 자기장

 
   
 
 
스핀트로닉스 기술은 기존의 전자기술에 전자가 지닌 스핀과 관련한 기술을 접목한 신기술이다.
지자기의 S극은 1970년 이후 매년 40km씩 이동하고 있으며 수만 년이 지나면 지축의 남쪽으로 이동하는 대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는 지구의 외핵에서 전도성이 큰 철과 니켈로 이뤄진 유체가 운동하기 때문이다. 탐험가가 지구의 극점을 정복할 때 나침반을 이용하면 지자기의 N극과 S극을 찾게 된다. 요즘 탐험가들은 정확한 극 지점을 찾기 위해 GPS를 이용한다.

지자기는 또한 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를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기상주간회의에서 스텐 오든월드 박사는 2012년에 초강력 태양폭풍이 엄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양폭풍은 코로나 물질을 분출하는데, 평소에는 태양풍 속의 전자, 양성자 같은 입자가 지구 자기장의 보호막에 막혀 지구를 비켜간다. 그러나 초강력 태양폭풍이 엄습하면 지자기는 더 이상 보호막 역할을 하지 못해 입자가 지구자기장을 교란시키며 지구 주변에 쏟아진다. 이 때문에 엄청난 전압이 발생하고 인공위성이 손상되거나 수명이 단축되며 정전, 방송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스핀을 이용한 미래 기술을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기술이라고 한다. 반도체기술은 수십 년 전부터 지식기반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근간이었다. 각종 반도체소자를 조합해 만든 컴퓨터, 정보저장 매체, 통신장비는 이제 현대문명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전자가 흐를 수 있도록 회로를 만들어 전하의 양과 흐름을 제어하는 소자가 바로 반도체소자다. 전자는 전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 개념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스핀 상태를 갖고 있다. 동물의 암수처럼 전자도 스핀 ‘업’과 스핀 ‘다운’상태로 구별된다.

스핀트로닉스 기술은 기존의 전자기술에 전자가 지닌 두 개의 스핀과 관련한 기술을 접목한 신기술이다. 즉 전자가 갖고 있는 전하의 특성을 이용하는 동시에 스핀 상태를 구별하는 신개념을 소자에 적용하는 것이다.

누구든 한번쯤은 작업한 내용이 예상치 않은 정전이나 운영체제의 오작동으로 하드디스크나 이동디스크(비휘발성 메모리)에 저장되지 않은 채 사라져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컴퓨터 정보기억소자의 하나인 D램(DRAM)이 휘발성 메모리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컴퓨터를 처음 켜면 부팅과정이 필요한데, 부팅이란 컴퓨터를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하드디스크에서 읽어내 속도가 빠른 휘발성 D램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컴퓨터에서 작업 중인 정보는 임시로 D램에 저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휘발성 하드디스크에 수시로 저장해야 한다. 만일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를 끄면 그 정보는 모두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반도체소자의 진화

그렇다면 컴퓨터의 휘발성 램을 비휘발성 램으로 대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한 지금 사용하고 있는 D램(256MB~1GB)을 100GB 이상의 대용량 매체로 대체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곧 부팅과 하드디스크가 필요 없는 신개념의 컴퓨터가 등장한다는 의미다.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정보기억소자가 바로 M램(MRAM)이다.

M램은 자성물질로 이뤄진 다층박막 셀을 정보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며 수많은 셀에 정보를 저장하고 읽어낸다. 기본적으로 자성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은 스핀이 갖는 방향을 제어해 정보를 저장한다. 한번 배열된 스핀 방향은 외부에서 일정한 힘을 가하지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고정돼 있어 비휘발성이다. 이 스핀 방향을 재배열해 저장하는 과정이 곧 정보를 재기록하는 과정이다.

M램은 정보용량을 높이기 위해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 있지만 과학기술자의 끊임없는 연구로 곧 컴퓨터에 장착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밖에 각종 정보통신 산업에 응용될 수 있는 미래 스핀소자에는 초고주파 스핀소자, 나노선 스핀소자, 스핀홀 소자, 스핀발광다이오드, 자성반도체 소자가 있다.

이들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열정과 창의력을 지닌 미래 과학기술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P r o f i l e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방사광을 이용해 자성박막을 연구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부임해 수행한 스핀동역학 연구가 미국응용물리학회지 표지논문으로 세 차례 선정됐다. 현재는 스핀파-동역학소자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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