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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원전의 시간을 돌려라 -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분야 환경기술.에너지/대체에너지 날짜 2011-01-25
디지털 원전의 시간을 돌려라

원전 1기를 짓는데 보통 4~5년이 걸리고, 비용은 2조 원이 넘게 든다. 하지만 3차원 전자공간에 원전을 지으면 공간과 시간의 한계가 없음은 물론이고
비용은 크게 줄어든다. 이때부터 서 교수의 마법이 시작된다. 바로 시간의 마법.





“다음에 오시면 이 테이블 위에 로마의 판테온을 홀로그램으로 띄워 놓을게요. 지금 로마에 있는 그대로를 원하세요? 아님 복원되기 전 과거의 모습을 원하세요?”

기자는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아리송한 그의 직업(?) 때문에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 해야 했다. 그는 컴퓨터 3차원 동영상으로 시설물을 재현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럴 때 보면 그는 컴퓨터공학자 또는 건축학자 같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른 시설물의 노화와 변형모습을 예측하는 그를 보면 영락없는 시설물공정관리자 또는 시뮬레이션 모델 개발자의 모습이다.

정확한 그의 전공은 원자력시스템공학. 우리나라의 주된 에너지원인 원자력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제반시설을 연구하고 이에 필요한 시스템의 설계를 다루는 학문이 그의 주요한 연구 기반이다.

그렇다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로마의 판테온이나 홀로그램 얘기가 원자력공학과 연구실에서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시간을 움직이는 4차원의 세계

여기에 대한 답은 서 교수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연구, ‘4+차원 소프트파워 기술’에 있다.

그는 3차원 전자공간에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짓는다. 즉, 원전을 3차원 입체형상화 하는 셈. 원전은 1기를 짓는데 보통 4~5년이 걸리고, 비용은 2조 원이 넘게 든다. 하지만 실제 원전과 크기만 다를 뿐 다른 조건은 모두 같게 만든 3차원 영상은 공간과 시간의 한계가 없다.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시설물을 만들고 나면 서 교수의 마법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는 3차원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건물의 시간을 10년, 20년 또는 원전의 일반적인 수명인 60년 후로 이동시킨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설물의 노화와 진행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과거로 돌릴 수도 있다. 현재 원전의 상태를 입력하면 과거로 돌아가 원전의 노후에 영향을 끼친 변수를 찾을 수 있다.

3차원 공간에서는 시설물의 수리와 보수 작업도 가능해진다. 재료를 맘대로 바꿀 수 있고, 구성부품의 배치와 사람들의 활동 패턴까지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60년이 흐른 뒤 원전에서 일어날 상황이지만 현실의 시간은 원전이 설치되지 않은 시간, 0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서 교수가 제안하는 4차원 소프트파워 기술이다. 3차원 영상에 시간 코드를 입혀 대상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현하고, 여기에 시설물의 건설과 보수에 필요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4+까지 실현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이 기술은 원전 건설뿐 아니라 배의 수조, 문화재 복원, 가속기 운영 등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며 “현재는 원전에 적용하기 위해 원전의 노후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찾아 그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4+소프트파워 기술 외에도 서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방사능 누출과 같이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 냉각수를 노심에 공급해주는 장치인 원자로의 비상노심냉각을 정화할 새로운 기술의 개발, 안전 주입 계통의 선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라디오가 전해준 꿈

서 교수는 ‘하루의 연구 시간은 25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연구에 열정적으로 매진한다. 그는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원자력’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관심을 갖게 된 후 지금껏 원자력이라는 한 길만 걸어오고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질량과 에너지의 동등성 법칙(E=mc2)’을 배우며 원자력공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의 지고지순한 원자력 사랑에 위기는 없었을까?

“1979년에 미국 스리마일 섬의 원전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1986년에는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했죠. 그때 원자력공학은 한마디로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MIT에서 유학하던 1981~1986년 당시 학과가 거의 문을 닫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 대다수가 취업을 못하는 상황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홀로 프랑스로 건너가 미처 마치지 못한 공부를 더 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전력공사에 해당하는 프랑스 전력공사 EDF에 입사했다. 고 소득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삶이 그를 기다리는 듯 했다.

대한민국 원전기술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꼭 제 모교인 서울대에서 후배를 양성하며 평생 연구하고 싶었죠. 그리고 우리만의 원자력 기술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그가 귀국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원자력 수준은 세계에서 7~8위 정도(원자력의 기술수준은 보통 운영하는 원전 기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원전을 짓는 기술은 모두 외국으로부터 차용하고 있었다.

원자력이 가진 풍부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를 믿었던 서 교수는 우리만의 원전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전성 문제 때문에 원자력 개발을 주저하던 일본이 최근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원자력 기술은 앞서서 선점하지 않으면 특허권, 저작권 때문에 후발주자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작더라도 우리만의 기술이 있는 게 중요해요.”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하고 싶지만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4+소프트파워 기술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한 연구다. 처음 그가 원자력에 전자기술을 도입하고, 여기에 시간과 비용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까지 시도하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서 교수도 그의 연구가 완벽하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고 힘들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사회가 할 일은 그의 노고에 박수를 쳐 주고 힘을 돋우는 것뿐이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라 공학자입니다. 공학자라면 적어도 돈을 필요로 하는 결과를 내기 보다는 돈을 만들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하죠. 사람들의 삶에 편이를 가져올 기술을 만드는 것이 공학자로서의 역할이니까요. 저는 모험과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벤처정신’이 투철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도전 정신만 있다면 다른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죠.”

서 교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의 것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고유의 한국 원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서균렬 교수는 오늘도 ‘하루 25시간’의 삶을 살고 있다.

고수의 비법전수

현재 원자력에 관한 기초 개념은 모두 연구된 상태다. 지금은 이를 실현할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험심과 창의력으로 무장된 용감한 학생들이 많이 원자력공학에 도전해서 국내 원전기술의 단계를 끌어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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