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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공학 -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
분야 융합과학/산업공학 날짜 2011-04-07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
감성공학
| 글 | 윤명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ㆍmhy@snu.ac.kr |


근래에 논리적인 기능보다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감성 마케팅’전략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여러 매체에서도 ‘감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감성 리더십, 감성경영, 감성품질 등이 신조어로서 등장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단어들은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에 대한 한 차원 높아진 관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성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진 것으로, 이런 신조어들은 경제활동에 보다 인간성을 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제인 감성공학도 앞 단어들보다는 오래되었지만 신조어 중 하나다. 감성과 공학이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인 감성공학은 지난 10여 년간 인간공학,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인지과학의 발전과 함께 어느덧 제품 디자인의 주요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르노나 도요타의 CEO는 ‘감성품질’이라는 단어를 회사의 주요 목표로 언급하고 있으며, 삼성이나 노키아같은 모바일 회사에서도 감성 디자인이 제품 성패의 주요 축이 된지 오래다.

감성공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망으로서의 이미지나 감성을 구체적인 제품설계로 실현해내는 공학적인 접근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사용자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이나 지각으로 인해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감성(고품격, 쾌적함, 압박감 등)’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해낸다. 이를 제품이나 환경설계에 공학적으로 응용해 편리하고 안전하며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쾌적하게 하고자 하는 기술이 바로 감성공학이다.


 
   
 
 
2003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와이어드 넥스트 페스티벌에서 워터스크린 위에 뿌려진 모나리자상을 보고 아이들이 기뻐하고 있다.
인간중심의 설계 두각

감성공학이란 용어는 1988년 국제인간공학회에서 학술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영어로는 감성의 일본식 발음인 ‘感性(칸세이)’를 따서 ‘Kansei Engineering’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감성공학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인간공학, 휴먼팩터 분야에서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 실용화하고 있다. 인간공학의 범주 내에서 감성공학의 개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감성공학과 가장 유사한 기술 분야는 ‘사람-기계 인터페이스’ 또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다. 최근에는 감성의 주요 요소를 ‘관심’이라고 정의하고 관심 디자인, 관심공학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감성공학은 다학제적인 특성상 인문사회과학, 공학, 의학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있다. 감성공학의 기술체계는 크게 감성공학 기반 기술과 감성제품 기술로 구분된다. 감성공학의 근간을 이루는 기반 기술로는 감성의 특성을 파악하고, 감성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감성요소 기술과 이렇게 형성된 감성공학기술과 연계해 직접 응용될 수 있는 제품설계 기술로 대비된다. 궁극적으로 감성공학은 인간의 감성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후 이에 적합한 제품, 환경 시스템 설계, 개발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과학이다.

정보화와 시장개방에 의해 소비자들이 제품을 비교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이 기능, 품질, 가격면에서의 경쟁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될 때 제품이 인간에게 주는 이미지, 즉 고품격, 쾌적함 등 사용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용편의성이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고부가가치 시장으로의 진입이 불가능해졌다. 볼보 자동차 S20과 S40은 제품설계에 사용자를 배려하는 애정이 많이 나타나 있다.

 
   
 
 애플의 MP3플레이어‘아이팟’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04년부터 연간 약 80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는 전략적 연구거점 육성 프로그램으로 최종 선정한 3건의 신규과제 중에는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기술, 즉 감성융합 기구를 구축하는 큐슈대의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큐슈대는 사용자 요구를 수집, 발굴, 다면적으로 분석해 사용자의 감성에서 포착된 연구과제를 귀납적으로 명확화하고, 감성융합 기획 부문에서는 감성에 기초를 둔 인간이 바라는 기술 개념화, 다양한 분야를 융합시킨 구체적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편성했다.

감성적 교육시스템

그러나 감성공학 기술이 호기심과 유행에 따른 기술도입 수준을 넘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술적 창의성에 바탕을 둔 산업디자인 기술지원과 인력확보만으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역설적으로 제품의 디자인 기술은 산업디자인 기술만이 아니라 제품을 구성하는 모든 시스템 디자인 기술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자동차공학과를 만든다고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것처럼, 디자인 인력만을 양성한다고 경쟁력이 향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문과, 이과, 예체능을 구분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수한 인력이 계열을 구분하지 않고 융합될 때 진정한 디자인 기술이 실현된다. 이런 점에서 교육시스템과 인재양성 프로세스도 감성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감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융합이라는 단어도 미래를 암시하는 단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과학기술에서도 ‘융합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미래기술은 융합의 기술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융합의 시대, 감성의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는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교육, 연구개발, 시스템 설계의 많은 부분에 인간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으며, 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학문, 분야, 학과, 조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인간중심’의 설계가 강조되고 있다.


미래를 여는 키워드, 감성과 융합

진정한 융합은 융합 분야를 정의하고, 융합할 수 있는 집단을 지시한다고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융합의 기회와 문화를 제공하고 융합하는 장을 제공하며, 융합을 위한 프로세스를 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일전에 새로 생긴 카페테리아같은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식당에는 최첨단 메뉴 자판기가 있었다. 현금을 넣고 메뉴를 정하면 식권이 출력되고 이것을 점원에게 주면 식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최첨단 자판기는 오로지 가게 주인을 위한 것이었다. 점원이 직접 자판기의 현금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주인은 하루에 한 번 자판기의 현금을 걷어가면 되었다.

두 달 후에 그 식당에 다시 갔을 때, 그 식당은 폐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당 어디에도 손님과 점원에 대한 감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중심 설계와 감성공학은 자칫 시스템 설계자로 하여금 식당주인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더 나아가 손님을 위한 식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제시하는 시스템 디자인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Profile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인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산업공학과의 인간공학, 감성공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휴먼인터페이스 시스템 연구실(http://his.snu.ac.kr)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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