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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설계공학 - 극한작업용 필드 로봇 기술
분야 융합과학/로봇
산업기술/기계
날짜 2011-04-07
극한작업용 필드 로봇 기술 - 로봇설계공학
| 글 | 김종원/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ㆍjongkim@snu.ac.kr |

책상 위에 고정된 개인용 컴퓨터(PC)의 시대는 가고 가정용 로봇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집 밖에서는 필드 로봇이 돌아다니며 인간이 하기엔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한다. 고정관념을 깨고 발상을 전환하면 곧 펼쳐질 로봇의 세계를 한 발 앞서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미래형 로봇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6개의 바퀴로 화성의 울퉁불퉁한 지형을 돌아다니는 화성 탐사로봇 오퍼튜니티.
19세기 말 자동차가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끄는 마차에 익숙했다. 그래서 마차보다 느린데도 값은 비싸고 전속 운전사와 수리공이 필요했던 자동차를 보고 “마차의 효용성은 무한하지만 자동차는 한때의 장난감일 뿐이다”라고 혹평했다. 말이 끄는 마차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용될 것이지만, 자동차는 장난감의 일종으로 귀족들이 싫증을 내면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왕 포드와 절친한 변호사는 포드가 자동차 산업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마차는 사라지고 자동차는 이제 ‘1가정 1차’ 시대를 맞았다.

이처럼 사고방식의 관성은 크며, 그래서 발상의 전환은 힘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나 같으면 마차보다는 자동차가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급속히 자리 잡을 거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을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지금 나오고 있는 태양전지로 가는 전기자동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주행 거리도 짧고 속도도 느리고 흐린 날이나 밤에는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혹시 그냥 무슨 전시회에만 출품되는 것으로 재미있다고만 하고, 그것이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엔지니어를 꿈꾸는 독자가 있다면 무조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가정하며 살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노트북 컴퓨터가 아무리 최첨단 기종이라고 해도 20년 뒤에 바라보면 ‘도대체 저런 걸 옛날 사람은 어떻게 사용했나’하고 한심해 할 것이다. 따라서 20년 뒤 세상을 주도할 사람들이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거대한 박물관으로 생각하자. 지금 출현하는 신기술과 신제품을 더 이상 새롭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미래에 이것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상상하기 바란다.

1가정 1로봇 시대

 
   
 
 
적의 공격을 피해 적진으로 날아가 임무를 수행하는 무인폭격기도 필드 로봇의 일종이다.
최근 인간을 닮은 로봇이나 청소 로봇 등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로봇들이 보여주는 기능은 영화 속 로봇처럼 고도의 지능을 가지면서 속도도 빠른 로봇과는 거리가 멀다. 청소 로봇만 봐도 같은 곳을 여러 번 청소하는 멍청한 짓을 하는가 하면 먼지를 남김없이 다 빨아들이지도 못한다. 속도도 느리고 배터리를 사용하므로 자주 충전해야 한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 한 가정에서 한 대 이상의 로봇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설마 그렇게 될 것인가?”하고 우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이런 장난감 같은 로봇을 한 가정에서 한 대 이상 보유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그 로봇이 ‘아시모’와 같은 인간형 로봇이라면, 그렇게 비싼데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한 대 정도 운영할만한 정도지 어떻게 집에서 한 대씩 보유한다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특히 우리가 엔지니어라면, 즉각 없애야 한다. 1950년대에 컴퓨터가 출현했을 때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집에서 한 대 이상 컴퓨터를 보유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개인용 컴퓨터라니? 그렇게 비싸고 큰 컴퓨터가 어떻게 집안에 들어오나? 그러나 지금은 집집마다 PC가 한 대 이상 있다.
만일 이 PC가 지금처럼 책상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명령에 따라 집안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부르면 가까이 와서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하는 일을 해준다고 상상한다면 개인용 로봇이 그렇게 먼 미래의 일로 생각되진 않을 것이다. 인터넷 연결은 물론 내 명령에 따라 전화도 걸어주고, 음악도 틀어주고, 심부름도 하고, 청소도 하고, 외출했을 때 집안도 지키는 등 지금의 컴퓨터가 해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집안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컴퓨터. 이것이 바로 가정용 서비스 로봇이다. 책상 위에 놓아둔 PC의 시대는 곧 지나갈 것이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한 가정이 한 대 이상의 로봇을 보유할 것이라는 예측은 곧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다.
엔지니어는 항상 미래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야 하며 되도록 신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줄이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엔지니어가 될 수 있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조하는 엔지니어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앞에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컴퓨터를 가정용 서비스 로봇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다니게’ 만드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은 특정 위치에 고정돼 인간 대신 반복해서 일한다. 자동차 차체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용접로봇이 한꺼번에 붙어서 용접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로봇이 이제는 움직인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공장에서 쓰는 거대한 산업용 로봇이 돌아다닌다고 상상하는 것보다 PC가 돌아다닌다고 상상하는 쪽이 더 편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서비스 로봇의 설계를 시작하는 것이 옳은 개념이다.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바닥 형상과 가구 배치를 생각하며 컴퓨터를 돌아다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컴퓨터를 지지하는 본체가 있어야 하며, 그 본체 밑에 이동을 위한 장치가 부착돼야 한다. ‘아시모’처럼 두 발이 달린 인간형 로봇일 수도 있다. 인간처럼 걷는다고 해서 이것을 ‘휴머노이드’(humanoid)라고 부른다. 강아지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독자가 사는 집안을 다시 살펴보자. 아파트에 산다면 문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평평한 바닥이다. 그렇다면 두 발이든 네 발이든 반드시 걸어 다녀야만 하는가? 바퀴나 캐터필러를 사용해서 굴러다니면 안 되나? 문턱 정도만 넘어 다니면 되므로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처럼 바퀴 6개가 달린 형태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는 로봇을 사용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본체가 가정용 서비스 로봇에 가장 유리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만약 미국 시장을 고려한다면 지하실, 1층 거실, 그리고 2층 침실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미국 주택의 환경에 맞는 로봇이어야 한다. 이 경우 가장 큰 관건은 로봇이 계단을 어떻게 오르내리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정용 서비스 로봇의 기본적인 본체, 즉 플랫폼(platform)으로 무엇이 가장 적합한지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것은 표준화 문제와 직결되므로 누군가 가장 먼저 표준 플랫폼을 완성한다면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가정용 서비스 로봇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간과 비슷한 형태라고 단정하면 창의적인 로봇 설계를 할 수 없다.

위험 대신하는 필드 로봇

 
   
 
 
곤충을 모방한 초소형비행체(MAV). 센서를 장착해 정찰 기능을 수행하도록 개량이 이뤄지고 있다.
집안이나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서비스 로봇이 있다면 인간을 대신해 야외로 나선 로봇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필드 로봇’이라고 부른다. 그럼 과연 무슨 일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일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층빌딩 표면을 청소하는 작업을 생각해 보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줄에 매달려 유리창과 벽을 닦거나 페인트를 칠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로봇이 대신 해준다면 더 자주 빌딩 벽을 청소할 수 있으며 도시의 모습은 더욱 깨끗해질 것이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는 선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약 6년 전 선박의 벽을 설계하는 표준이 이중 구조로 바뀌었다. 즉 바닷물과 접촉하는 외벽이 있고 3m 정도 간격을 두고 내벽이 또 있어야 한다. 외벽이 뚫려도 내벽이 있으면 선박 내부의 원유 등이 유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이중 구조의 벽은 제작하기 어렵다. 작업자가 3m의 간격 속으로 들어가서 용접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3m의 간격은 거의 밀폐된 고립된 공간이다. 거기서 용접을 하면 용접열과 용접 연기 등으로 엄청나게 괴롭고 위험하다. 그래서 서울대 연구진과 대우조선은 이런 극한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자율주행형 용접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은 군사 분야에도 활용된다. 폭격기나 정찰기는 적의 공격을 피해 적진으로 날아가 폭격과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폭격기나 정찰기도 인간이 직접 조종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다니게’ 만들어야 한다. 무인 폭격기나 정찰기도 필드 로봇의 하나다. 그럼 운전자 없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미래의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도 필드 로봇일까? 당연히 그렇다.

필드 로봇이 필요한 분야는 너무나 많다. 농업용으로 농약 살포 로봇, 과일 수확 로봇 등이 있고, 건설 산업용으로 터널 공사용 로봇, 고층 타일 부착 로봇 등이 있다. 해양산업용 해저 무인탐사 로봇과 광산용 채광·채탄 로봇 등이 있다. 전력 산업용으로 배전선 작업 로봇, 지하 수압관 검사 로봇, 원자로 원격보수 로봇이 있다. 그리고 방재용으로 진화 로봇, 테러 경계 로봇, 지뢰 제거 로봇 경비 로봇, 인명 구조 로봇이 여기에 속한다. 한편 의료용으로 내시경 로봇, 인체 탐사용 마이크로 로봇이 있으며, 우주산업용으로 우주구조물 조립·점검 로봇이 있다. 방위산업용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유진로보틱스와 공동 개발한 ‘롭해즈’는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를 따라 파견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들은 개발될 예정이거나 현재 개발이 시작된 필드 로봇일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필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극한 환경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흥미진진한 필드 로봇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일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필드 로봇은 아이디어의 집합체

 
   
 
 
고층 빌딩 청소용 필드로봇의 개념도. 캐터필러 형태로 벽 위를 굴러다니거나 벽에 부착해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등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
지금부터 고층 빌딩 청소 로봇을 한번 설계해 보자. 우선 고층 빌딩 표면은 여러 가지 요철을 갖고 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빌딩도 멀리서 보면 평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양한 요철이 있다. 청소해야 하는 대상물도 유리창이 있는가 하면 벽면도 있다. 빌딩마다 벽면 재질도 매우 다양하다. 빌딩 청소 로봇은 중력을 이기고 여기에 붙어 다니며 다양한 재질과 형상의 벽면에 붙은 오물을 분리해야 한다.

어떤 고층 빌딩 청소 로봇을 설계할 것인가? 휴머노이드가 위아래로 이동하는 곤돌라를 타고 청소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휴머노이드가 아니라도 빌딩 위에 연결된 줄을 타고 상하로 움직이면서 물과 세척제를 사용해서 청소하는 곤돌라와 비슷한 로봇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청소 로봇은 이미 발명됐다. 그러나 무게도 무겁고 이동도 느리며 좌우로 움직이기 위해 빌딩 옥상 둘레에 레일을 설치하고 자동으로 이동시키는 장치들이 있어야 하므로 가격이 너무 비싸다. 물과 세척제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마이크로-나노 기술의 시대다. 빌딩 크기에 비해 훨씬 작은 지름 50cm 미만의 거미처럼 생긴 로봇 여러 대가 고층빌딩 벽면에 붙어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작게 만들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가격이 싸진다. 고층 빌딩에서는 여러 대를 사용하지만 상가 건물이라면 한 대로도 충분하다.

그럼 어떻게 빌딩 표면에 붙어 다닐까. 우선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현재로서는 진공 흡착을 응용할 수밖에 없다. 하나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도롱뇽 발바닥처럼 흡착력을 이용한 방식이다. 도롱뇽의 발바닥을 관찰하면 매우 미세한 돌기가 돋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돌기들은 반데르발스힘을 형성하기 때문에 도롱뇽은 벽면에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실용화되지 않아 당장 사용하기는 어렵다.

빌딩 표면의 다양한 요철을 자유자재로 넘어 다니기 위해 빌딩 청소 로봇은 본체가 지네처럼 매우 유연해야 한다. 즉 여러 개의 매듭들을 유연하게 연결해야 한다. 지금까지 평평한 수직 벽면을 이동하는 로봇 플랫폼은 많이 나왔으나 다양한 요철을 타고 넘어 다니는 ‘climbing-over-the-wall’(벽 위를 기어오르는) 로봇 플랫폼은 아직 발표된 것이 없다. 그리고 유연한 본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흡착판이 붙어 있는 여러 개의 다리를 움직여 지네처럼 기어 다닐 것인지, 아니면 흡착판이 붙어 있는 캐터필러 형태로 만들어서 벽면 위를 굴러다니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굴러다니면 속도가 빠른 대신 제작하기 까다롭다.

다음으로 큰 문제는 청소다. 인간이 빌딩을 청소하는 것처럼 물과 세척제를 사용한다면 작은 로봇으로는 불가능하다. 물과 세척제를 갖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물과 세척제를 사용하지 않고 빌딩의 오물을 떼어내는 신개념 청소 원리도 같이 개발해야 한다. 빌딩의 오물은 빌딩 벽면에 화학적 결합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물리적 결합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청소 원리를 고안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물과 세척제를 쓰지 않고 오물을 떼어낼까. 아직 이에 대한 최적 해결책은 없다. 현재 서울대 연구팀은 16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있다. 물과 세척제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은 친환경적이므로 미래에 매우 유망한 선행기술이며 다른 분야에도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고층 빌딩 청소용 필드 로봇 하나를 설계하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며 얼마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을 창조하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같이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무인 정찰 로봇을 설계한다면 어떤 형태의 로봇을 설계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정찰기를 생각하고 정찰기 본체는 그대로 놔둔 채 조종만 무인으로 할 수 있도록 바꾸는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의 정찰기는 사람을 태우고 다녀야 하므로 그 정도 크기로 설계된 것이다. 사람이 탈 필요가 없는 이상 정찰이라는 기능만 충족시키면 되므로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로봇 본체를 그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발상 전환이 경쟁력

정찰 로봇은 크기가 작아야 한다. 더 이상 큰 정찰기는 필요 없다. 아예 마이크로 크기로 내려가 보자. 최근 손바닥 크기의 비행체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이것을 ‘초소형비행체’(MAV, Micro Air Vehicle)라고 한다. 더 작은 정찰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손바닥보다도 더 작아야 한다면 잠자리부터 시작해서 나비, 벌, 파리 크기를 지나 모기 크기까지 줄어든다. 이런 크기의 플랫폼을 가진 마이크로 로봇에 영상·음성 인식 장치를 장착해 정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대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적진에 날아가서 흩어져 정찰 기능을 수행한다. 싸게 대량생산된 수백 마리의 마이크로 정찰 로봇이 적진에 침투해서 그 가운데 50%가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은 귀환할 필요도 없다. 그럼 이런 마이크로 정찰 로봇들과 맞서서 물리치는 또 다른 정찰기 킬러용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해 대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응용 범위를 확대하면 고속도로나 국도에 설치된 과속 감시 카메라 대신에 마이크로 단속 로봇이 도로 위를 날아다닐 수도 있다. 과속 차량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날아가 번호판을 촬영하고 현재 속도, 위치 정보를 무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할 것이다. 과속 단속은 확실하겠지만 조금 섬뜩하다.

그러나 이런 마이크로 정찰 로봇은 설계하기 쉽지 않다.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비행기가 나는 원리는 잘 알고 있다. 비행기 본체가 공기 속을 가르면 비행기 위아래로 공기가 시루떡처럼 여러 층을 형성하며 평행하게 지나간다. 그 층간의 압력 차이가 비행기 본체를 밀어 올린다. ‘베르누이의 원리’다. 넓게 날개를 펴고 활강하는 큰 독수리도 이 원리로 날아다닌다.

그런데 크기가 작은 나비나 벌은 날갯짓을 통해서 날아다니는데 이 원리는 아직도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날개 바로 앞에 약한 소용돌이가 생기고 압력이 잠시 조금 떨어지게 된다. 그럼 나비는 그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서 앞으로 이동하게 된다. 물속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그 앞에 또 다른 소용돌이가 생겨 날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두 다리로 걷는 것처럼 나비는 본능적으로 이 비행원리를 이용한다. 이런 나비의 비행원리를 이해해야 비로소 나비 크기의 무인 정찰 로봇 플랫폼을 설계할 수 있다.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갑자기 자동차 수가 증가한 것처럼 실내에서 쓰이는 서비스 로봇이나 실외에서 쓰이는 필드 로봇도 우리 주위에 갑자기 다가올 것이다. 극한 환경에서 사람이 수행하던 위험한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정책정보단은 2007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800만대의 서비스 로봇(필드 로봇 포함)들이 보급될 것으로 예측했다. 액수로 약 134억달러(약 13조5700억원)의 규모다. 그리고 이런 예측 값이 앞으로 10년에서 20년 뒤에는 얼마나 증가할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2020년에 로봇 시장이 1조4000억달러(약 14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2003년 PC 세계 시장 규모가 1억6000만대에 2750억달러(약 278조원)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과장된 것은 아니다. 로봇이 왜 미래의 성장 동력 산업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인간이 할 일을 로봇이 다 해준다면 일자리를 잃어버릴 사람이 많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극한적이고 위험한 일들은 로봇에 맡기고 사람은 로봇 명령자와 관리자가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로봇들을 개발·판매하는 직업은 물론 로봇의 작업 관리와 유지·보수를 하는 직업 등 로봇과 관련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로봇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은 안심하고 10년, 20년 뒤를 보며 큰 꿈과 확실한 비전을 세우고 정진하자.


김종원 교수는 1978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까지 대우중공업 공작기계사업본부 현장에서 근무하고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있다가 1993년부터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신개념 병렬기구 기계와 필드 로봇 개발 등 다양한 로봇 플랫폼의 창의적 설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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