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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공학 - 첨단기술의 결정체
분야 산업기술/토목
환경기술.에너지/기타
날짜 2011-04-07
첨단기술의 결정체 - 교량공학

| 글 | 고현무/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ㆍhmkoh@snu.ac.kr |

다리는 그냥 건너기만 하는 구조물이 아니다. 언제나 그 지역의 경제와 역사를 바꿨고 당시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를 대표하고 반영해 왔다. 200년 남짓한 역사의 교량공학은 이제는 대륙과 대륙을 이을 초장대교량을 꿈꾸고 있다.

 
최근에 개통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웅장한 교탑과 긴 케이블, 그리고 케이블에 매달린 날렵한 상판을 가진 다리들이 나타나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해안의 광안대교를 지날 때에는 마치 하늘에 매달려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느낌을 받고, 서해안 고속도로의 서해대교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또한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현수교를 만난다. 2000년 말에 개통된 영종대교로 우리 고유의 처마선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케이블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철과 콘크리트, 그리고 케이블로 이뤄진 이런 거대한 교량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1801년 최초의 근대 현수교 등장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지구와 맨해튼 섬을 잇는 브루클린교. 1883년 지어진 현수교로 뉴욕의 명물이다.
케이블 교량의 기원은 현수교로서 산악의 원시민족들이 덩굴을 나무에 매달아 계곡을 건너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현수교는 서기 400년경 인더스 강 상류에 건설된 밧줄 다리다. 이와 같이 케이블 교량의 역사는 매우 깊지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말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차가 물자수송과 대중교통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무거운 열차가 빠른 속도로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강과 계곡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높은 강도를 가진 새로운 재료로 다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춰 교량의 건설재료로 철강을 도입하면서 기술적 혁신이 이뤄졌다. 철을 사용하면서 다리는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됐고, 그와 함께 점점 장대화될 수 있었다. 그 결과 강철 케이블을 이용한 현수교가 개발됐고, 비로소 근대적 모습의 장대교량이 역사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장대교량이라 하면 흔히 전체 길이가 긴 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장대교량이란 교각의 지지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상판의 길이가 긴 다리를 의미한다. 케이블 지지교량인 현수교나 사장교가 대표적인 장대교량이다. 교량을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상부구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교량을 건설할 때에는 상부구조공사 못지 않게 수면 아랫부분의 기초공사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량공학의 기술적 난이도는 경간, 즉 교각 사이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밑의 수심이 깊어질수록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근대 현수교의 원형은 1801년에 제임스 핀리가 미국에 건설한 자콥스 크릭(Jacob’s Creek)교다. 이 교량은 교탑과 상판이 목재로 만들어졌지만 케이블로는 쇠사슬을 이용해, 근대 현수교로의 요소를 원시적인 면에서 갖췄다. 그 뒤로 제철기술 발전에 힘입어 많은 근대식 현수교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883년에는 뉴욕의 중심 맨해튼과 브루클린 지구를 이어주는 브루클린교(경간 길이 486m)가 건설됐다. 브루클린교는 배로만 왕래할 수밖에 없던 맨해튼 섬을 처음으로 육지와 연결시켜 준 당시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꿈의 다리’였다. 지금도 많은 차량이 다니고 있어서 그 역사적 의의가 더 깊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교를 뉴욕의 상징으로 꼽을 만큼 이 교량은 뉴욕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영화에 등장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브루클린교의 건설로 맨해튼 섬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했고, 오늘날 뉴욕의 경제, 사회, 문화적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현수교라는 인류의 발명품이 한 도시의 성장을 촉진시킨 셈이다.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긴 경간을 필요로 하는 곳에 많은 현수교가 지어졌고, 이들은 지역과 국가의 효율적인 도로망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장대교 기술의 거듭된 혁신 속에 1937년 마침내 저 유명한 금문교(경간 길이 1280m)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 만에 위치하고 있는데, 독특한 계단 모양으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붉은색 교탑(높이 227m)과 주변 경관과의 뛰어난 조화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기념비적인 현수교들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과 교량 기술자들은 이제 자연의 어떤 장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오만함이었을까. 1940년에 건설된 미국의 타코마 내로우스(Tacoma Narrows)교(경간 길이 853m)는 불과 초속 19m의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의 붕괴 장면은 필름에 생생히 담겨 전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줬다.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현수교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바람에도 엿가락처럼 뒤틀려 무너진 이유를 당시로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교량 기술자들은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공기역학적 요인이 현수교와 같은 장대교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붕괴사고로 현수교와 같은 장대교량은 바람에 의한 진동 등 동적인 거동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됐으며 기존의 설계 기술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통해 마침내 1998년 경간 길이 1990m로 세계 최장대교인 일본의 아카시대교가 건설됐다.
우리나라의 현수교 역사를 살펴보면, 1973년 경간 길이 404m인 남해대교의 건설을 시작으로 2000년 영종대교, 2002년 광안대교(경간 길이 500m)에 이르기까지 불과 30여년 동안 비교적 빠른 성장을 이뤘다. 특히 영종대교는 학술적으로만 연구되던 3차원 자정식 현수교를 세계 최초로 실현해 보임으로써 국내 현수교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극적인 계기가 됐다.

사장교는 현수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 형식의 교량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개발돼 유럽을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됐다. 사장교는 곡선형태의 현수교 케이블 대신 직선형태의 케이블을 이용해 상판과 교탑을 직접 결합시킨다. 사장교 또한 1970년대 이후 현수교와 마찬가지로 장대화되면서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교(경간 길이 856m)에 이어 경간 길이 890m로 최장을 자랑하는 일본의 타타라(Tatara)교까지 완성됐다. 머지않아 경간이 1000m를 넘는 사장교가 가설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진도대교(344m)와 돌산대교(280m)를 시작으로 올림픽대교, 신행주대교, 삼천포대교(230m)와 서해대교(470m) 등이 시공되면서 방대한 교량기술 축적이 이뤄지고 있다.

오차 0.01%를 넘지 않아야
 
   
 
 
초속 19m의 바람에 엿가락처럼 붕괴된 미국의 타코마 내로우스교. 공기역학적 요인이 장대교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침을 인식하게 한 계기가 됐다.
장대교량은 바다나 깊은 계곡과 같이 자연조건상의 제약이 많은 곳에 건설되기 때문에 중앙경간이 매우 길고 교탑 또한 거대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인 아카시대교는 폭 4km에 달하는 아카시 해협을 건너는 현수교로서, 총 길이는 물론 경간 길이만 해도 세계 으뜸을 자랑한다.

아카시 해협은 가장 깊은 곳이 수심 110m에 이르고 조류의 속도도 무척 빠를 뿐만 아니라, 해마다 몰아치는 태풍의 경로상에 있는 등 현수교 건설에 최악의 자연조건이다. 이로 인해 타당성 조사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무려 30여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아카시대교 교탑의 높이는 283m로서 63빌딩(250m)보다 33m나 더 높다. 이 교량에 쓰기 위해 개발된 고강도 강선의 총 길이는 30만km로서, 이는 지구 둘레의 7.5배에 달한다. 또한 초속 80m의 바람과 리히터 규모 8.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와 같이 장대교의 건설은 인류가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한 첨단기술이 집약된 동시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인내가 요구된다. 수백명의 기술자들이 수년간 참여해 그들의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열정을 바쳐야 비로소 장대교량이란 작품이 탄생한다.
따라서 장대교량은 계획, 조사 단계에서부터 설계, 제작, 가설,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과정으로 건설된다. 계획과 조사 단계에서는 장대교량이 들어설 곳의 지리적 특성, 인접지역에 대한 연결성 향상과 교통수요 분담, 지역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 및 상징성 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가 이뤄진다. 그 결과 장대교량 건설에 대한 타당성과 경제성이 확보되면 교탑 위치와 높이, 케이블 형식과 바닥판 단면 등의 전반적인 구조 형식을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 경간장, 교탑 형상, 케이블 배치, 바닥판의 치수 결정과 가설방법 선정 등의 상세설계가 이뤄진다.

장대교량은 특성상 일반 교량과 달리 한 지역에 접근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장대교량의 보수는 가장 짧은 기간 내로 해야 하고 특히 장대교의 교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설계시 교량의 수명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2004년말 개통된 프랑스의 미요(Millau)교는 에펠탑보다 약 20m 더 높은 343m 공중에 7개의 연속 사장교로 건설됐으며, 최소 120년 동안 유지되도록 계획됐다. 오랜 수명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은 모든 분야의 최첨단 공학기술의 조합과 응용으로 이뤄진다. 장기간 동안 빠른 해류, 강한 바람, 차량 증가 등과 같은 교량에 작용할 다양한 하중조건과 재해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내진과 내풍 설계, 교량 거동의 정밀 측정과 제어기법의 도입, 내구성을 위한 고성능 콘크리트와 강재, 섬유보강 복합재료의 적용, 지속적인 건전성 평가를 위한 유지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장대교는 교탑이 매우 높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로 인한 진동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설계단계부터 교량과 바람과의 상호작용을 수치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3차원의 복잡한 공기역학적 움직임은 슈퍼컴퓨터로도 완벽하게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축소모형을 제작해 풍동실험을 실시한다. 실험결과로부터 바람으로 인한 진동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형태를 변경하고 부가적인 장치의 장착 여부를 결정한다.

현수교 상판의 측면을 바람이 잘 통하는 트러스 형태로 만들거나 항공공학의 기술을 도입해 날개 모양으로 제작하는 것은 진동을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 최초의 3차원 자정식 현수교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종대교도 서울대 연구진과 함께 2차원과 3차원 풍동실험을 통해 초속 65m의 강풍에도 100년 이상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장대교량의 교탑은 엄청난 하중이 설계대로 적절히 분배될 수 있도록 매우 정밀하게 시공돼야 한다. 아카시대교는 이러한 정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공 단계에서부터 교탑 상부에 ‘동조질량장치’(TMD:Tuned Mass Damper)라는 진동제어장치를 도입해 교탑의 정확한 수직 형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장치는 바람뿐만 아니라 지진에 의한 진동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교탑이 완공되고 이후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95년에 리히터 규모 7.2의 고베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각변동으로 교탑 사이의 거리가 80cm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매우 높은 현수교나 사장교의 교탑을 정확히 수직으로 유지하고 막대한 힘을 정확히 분산시켜 지지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교탑 기초의 건설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교탑 기초의 시공에는 수중에 원통형의 물막이벽(케이슨)을 설치해 굴착하고 콘크리트를 채우는 케이슨공법을 적용한다. 아카시대교에 사용된 케이슨은 지름이 80m, 높이가 70m이고, 무게가 1만5000t에 달한다. 축구장 넓이와 30층 건물 높이의 엄청난 무게를 조류가 심한 해저 암반에 설치할 때 수평면에 대해 기울어지는 높이의 오차를 10cm 이내의 정밀도로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상판은 20m 내외로 분할된 각 부분을 조립해 설치됐는데, 설치 완료시 각 부분간의 간격은 신용카드 두께보다 작을 정도로 엄청난 정밀도가 요구됐다. 이는 약 0.01%의 오차로서 나노기술에 견줄 수 있을 수준이다.

대륙을 잇는 다리 계획
 
   
 
 
2000년 건설된 영종대교. 세계 최초의 3차원 자정식 현수교다.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장대교에는 어떠한 기술적 진보를 기대할 수 있는가? 원시적인 밧줄다리부터 경간 길이 1900m의 거대한 현수교 건설에까지 이르는 교량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미래에는 이보다 더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이어주는 초장대교량이 계획 중에 있다. 다리는 수심이 800m나 되는 14km의 망망대해를 건너야 한다. 또 이 해협은 거친 조류 때문에 초대형 선박의 조종이 어려워 교각과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거친 자연조건과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토목기술자들은 최첨단 공학기술을 융합해 초장대교량의 건설이 현실화되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엄청난 길이의 교량 상부구조를 지탱할 케이블 구조로서 현수교와 사장교 구간이 2:1의 비율로 혼합된 새로운 형태와 내구성이 뛰어나며 동시에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복합신소재, 초대형 선박의 충돌을 방지할 완충장치, 바람에 따라 변형되면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동제어장치, 그리고 다리의 모든 운동과 변형을 실시간으로 계측 분석할 수 있는 첨단 유지관리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지난 수억 년에 걸쳐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있던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대한해협을 지나는 세계 최장대교량과 국내 3000개 이상의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날렵한 모양의 미래형 장대교량의 설계와 건설을 상상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젊은이들의 창의적 도전정신과 끊임없는 기술혁신 노력으로 가능하리라고 낙관한다.


3차원 자정식 현수교 |
일반 현수교는 교탑이 직사각형 형태이고 주 케이블에서 내려온 보조 케이블도 수직인 2차원이다. 반면 영종대교의 교탑은 사다리꼴로 보조 케이블이 사선으로 상판에 연결된 3차원 구조다. 이런 아름다운 디자인이 구현되려면 공학적인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고현무 교수는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구조공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포스코석좌교수이며, 건설교통부 건설핵심기술연구개발사업의 일환인 교량설계핵심기술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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