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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마이크로 전자기계 기술 MEMS
분야 산업기술/기계
융합과학/기타
날짜 2011-04-05
세상을 바꿀 마이크로 전자기계 기술 MEMS
기계가 먼지 크기로 줄어든다
| 글 | 김용권/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ㆍyongkkim@chollain.net |


컴퓨터 옆 잉크젯 프린터, 거실의 대형 프로젝션 TV, 그리고 휴대전화 속에는 MEMS 기술이 숨어있다. MEMS는 전자기계 시스템을 마이크로 단위로 작게 만드는 기술이다. 미래 세상을 뒤바꿀 MEMS을 만나보자.

그리스 신화의 영웅하면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에 견줄만하게 용기있고 힘세며 의협심이 강하고 지모까지 겸비한 영웅으로는 누가를 꼽을 수 있을까. 바로 테세우스가 있다.

그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에서 자랐다. 청년이 됐을 때 부왕 아이게우스가 숨겨둔 왕가의 검과 샌들을 찾아내 그것을 갖고 아테네로 간다. 그리고 부왕 앞에 당도해 왕자로서 인정받는다. 이런 그의 진짜 영웅담은 크레타섬에서 벌어진다.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는 건축의 달인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해 빠져나오기 힘든 복잡한 미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뒀다. 그런 다음 미노스 왕은 아테네에 괴물에게 바칠 제물이 될 사람들을 보내도록 강요했다. 이때 제물로 섬에 보내지는 사람 가운데에 테세우스가 끼어 들어갔다. 테세우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될 운명에 놓인 것이었다.

하지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사랑해 그에게 검과 실을 주었다. 덕분에 테세우스는 검으로 괴물을 죽이고 실을 따라 미로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 얘기가 만약 마이크로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로를 개미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하고 테세우스도 작게 만들어서 ‘마이크로 테세우스’가 ‘마이크로 미로’를 빠져나오게 하면 어떨까?

마이크로 미로 속 마이크로 테세우스
 
   
 
 
먼저 마이크로 수준의 미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구현하려면 MEMS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MEMS 기술로 폭이 수mm에서 수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까지 가는 통로(또는 유체 통로)를 만들 수 있다. 통로 모양을 복잡하게 하면 미노스의 미로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다음 ‘마이크로 테세우스’가 마이크로 미로에 들어가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공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마이크로 테세우스’가 ‘마이크로 미로’에서 탈출할 방법에 대해 연구한 다음, 마이크로 미로를 설계하고 제작하며 마이크로 테세우스가 미로를 탈출하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이끄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마이크로머신 연구실에서 대학 4학년 실험프로젝트로 제공하는 주제 중 하나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MEMS 기술이란 대체 어떤 기술이기에 이처럼 허무맹랑한 얘기가 대학의 실험프로젝트로 다뤄지는지 자못 궁금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마크로 세계라고 한다. 반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가 있다. 30여년 전 파인만 교수가 이미 마이크로 세계가 있음을 예견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가 예견했던 마이크로 세계에서 여러가지 전자회로소자가 잘 동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마이크로 세계의 소자 덕택으로 책 크기의 컴퓨터가 탄생했고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휴대전화가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후반의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전기적으로 동작하는 회로소자들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런 회로소자와 함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MEMS 소자들이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놓을 전망이다.

MEMS는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의 약자다. 우리나라 말로 길게 표현하면 ‘마이크로 전자기계 시스템’이 된다. 이 기술은 말 그대로 전자기계 소자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 규모로 제작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MEMS 기술을 개략적으로 정의하면 아주 작은 기계 구조물을 제작하는 모든 분야에 응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MEMS 기술은 기존의 반도체 공정, 특히 집적회로 기술을 응용한 미세 가공 기술을 이용한다. 미세 가공 기술을 마이크로 단위의 초소형 센서나 구동기 및 전기 기계적 구조물을 제작하는데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세 가공 기술로 제작된 미세 기계는 mm 이하의 크기거나 μm 이하의 정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

이런 MEMS 기술은 1970년대에 출현했다. 당시 반도체 제작 기술로 주변회로를 내장한 집적화된 센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스프링, 외팔보(수영장의 스프링보드 같은 구조) 등의 미세 기계 요소들이 제작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마이크로 집게, 모터, 기어 등 기판에서 분리된 미세 구조물이 제작됐으며, 1990년대 이르러서는 센서, 논리회로 및 구동기가 집적된 형태로 발전됐다.

벌레보다 작은 MEMS 소자
그렇다면 MEMS 기술이 최근에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사진은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에서 제작한 마이크로 톱니바퀴로 그 위에 진드기가 올라간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의 톱니바퀴의 크기는 1백-2백μm. 이는 사람 머리카락 하나 또는 두개의 굵기에 해당한다. 이 정도로 작은 구조물을 자유로이 제작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기기들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MEMS 기술의 장점은 초정밀 미세 가공을 통해 소형화, 고성능화, 다기능화, 집적화가 가능하며 안전성 및 신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체화된 집적 시스템의 구현 가능으로 조립 필요성이 감소되며 한꺼번에 제작되므로 값싸게 양산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MEMS 기술은 정보통신, 자동차, 항공, 방위, 의료, 생명공학 등 다양한 산업 제품의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MEMS 기술로만 제작돼 응용되는 제품은 극히 일부이다.

하지만 MEMS 기술을 이용해서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제품을 창출한 예는 많다. MEMS 기술은 다른 분야의 기술과 접목해 큰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핵심기술인 셈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가전기기 중에도 MEMS 기술로 제작한 소자를 사용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MEMS 기술을 활용한 제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책상 위의 잉크젯 프린터 헤드
책상 위 프린터가 잉크젯 방식인지 확인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그 프린터는 MEMS 소자를 이용한 대표적인 기기다. 잉크젯 프린터는 가격이 싸고 소형이며 유지가 간단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잉크젯 프린터는 컴퓨터 기기를 개인용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했고 가정으로 컴퓨터를 보급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잉크젯 프린터의 핵심기술은 잉크를 뿜어내는 헤드에 있다. 헤드에는 여러개의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을 통해 잉크를 뿜어낸다. 어떤 구멍에서는 잉크를 뿜어내고 어떤 구멍에서는 뿜어내지 않는 방식으로 글씨를 점으로 구성한다. 따라서 작은 구멍으로 미세한 잉크방울을 신호에 따라 가능한 빨리 그러면서도 번지지 않게 뿜어내야 하는 것이 헤드기술의 핵심이다. 이에 적합한 헤드를 만드는데 MEMS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헤드는 잉크를 뿜어내는 작은 구멍, 그 뒤에 있는 작은 잉크 보관방, 그리고 그 방에 장착돼 있는 작은 히터나 구동기로 구성돼 있다. 이 각각이 미세한 양의 잉크방울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마이크로 단위로 기계전자 구조물을 제작하는 MEMS 기술이 필요하다.

TV 속 마이크로 거울
거실에 있는 대형 TV가 어떤 방식인지 확인해보자. 프로젝션 방식이라면 다시 한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로젝션 방식의 대형 TV 속 핵심소자가 MEMS 기술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로젝션 방식의 대형 TV에는 수백만개의 마이크로 거울들을 사용한다. 이 거울도 MEMS 기술로 만든다.

MEMS 기술로 너비가 16μm인 마이크로 거울을 줄을 맞춰 2백만개를 제작한다. 이 거울들을 TV 화상 신호에 따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왼쪽으로 기울이면 빛이 화면으로 반사돼 밝게 보이고,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빛이 화면 밖으로 반사돼 어둡게 보인다. 그러면 흑백의 점이 만들어지고 이를 멀리서 보면 화상이 된다. 만약 거울에 비추는 빛을 빨간빛, 파란빛, 녹색빛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 빛을 적당한 시간차를 두면서 달리 비춘다면 천연색 화면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마이크로 거울들을 이용하면 너비 2m 이상의 큰 화면을 만들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영화관의 영사기가 이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서울대가 제작한 단결정 실리콘 MEMS 스위치. 휴대전화의 주파수가 높아지면 현재의 반도체 스위치 대신 MEMS 스위치가 사용될 전망이다.
휴대전화의 MEMS 스위치
한편 앞으로는 여러 제품에서 MEMS 기술이 좀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가 휴대전화에서다. 휴대전화에는 수많은 스위치가 사용되고 있다. 이들 스위치도 향후 MEMS 기술로 제작한 스위치로 바뀔 것이다. 우리가 불을 켜고 끌 때 사용하는 전등 스위치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에 쓰이는 수많은 스위치는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선을 끊어놓고 있다가 원할 때 신호선이 연결되도록 도체를 이어서 전기 신호를 통과시킨다. 이런 스위치를 MEMS 기술로 제작하는 것이다.

앞으로 휴대전화에는 현재보다 주파수가 높은 고주파가 사용될 전망이다. 그래야 동영상까지도 맘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존의 반도체 스위치보다 MEMS 스위치가 월등한 성능을 보이게 된다. 때문에 휴대전화에는 MEMS 스위치가 사용될 것이다.
스위치만이 아니라 다른 전기전자 부품도 MEMS 기술로 제작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휴대전화의 소형화와 다기능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칩 위 실험실
화학실험실하면 책상 위에 플라스크나 비커 등이 있고 이것을 어지럽게 연결하는 유리관이 있으며 알코올 램프로 가열해 김이 나고 반응을 일으켜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런데 MEMS 소자를 사용한다면 이렇게 복잡할 필요가 없다.

MEMS 기술은 동전 크기의 실리콘 칩에 마이크로 밸브, 펌프, 유체 통로, 히터, 혼합기, 분리기 등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 칩에서는 화학 반응, 분리, 정제, 분석, 측정 등 복잡한 화학반응을 할 수 있다. 통째로 화학실험실을 칩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MEMS 기술은 화학이나 의학 실험실을 동전 크기의 칩 위에 구현해줄 전망이다. 그러면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성능이 좋아지고 반응 시간이 줄어들며 실험의 재현성과 편이성이 좋아져서 초보자도 쉽게 실험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서 제작한 화학실험실 칩과 컴퓨터를 연결한 시스템으로 실험을 했더니 종래의 방법으로 일주일 걸리는 실험시간이 반나절로 줄었다. 그 반나절도 기계가 한 시간이고, 실험자는 실험 전에 실험 방법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실행키를 누르는 것으로 할 일이 끝났다.

그 이후는 주어진 명령의 순서대로 펌프를 작동시키고 밸브를 여닫고 빛을 쪼이고 가열하는 등 컴퓨터와 화학실험실 칩이 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한다.
그야말로 실험자는 만만세다. 실험을 위한 노동시간이 줄었으니 그동안 관련 정보를 더 모으고 다음 연구 계획을 짜고 하는 등 연구의 효율성이 올라가게 된다.

새로운 것만이 세상을 바꾼다
이처럼 MEMS 기술은 미래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여러 예에서 보았듯이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컬러 프린터를 20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고 2m도 넘는 화면을 밝은 방에서 볼 수 있으며 화학실험실이 동전 크기의 칩 위로 옮겨가고 비행기에나 채용됐던 각속도 센서를 장난감에 장착할 수 있다. 이 모두는 MEMS 기술 덕택이다.
뿐만아니라 MEMS 기술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이 새로운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공학자에게 이처럼 가슴이 벅차오르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필자가 연구한 기술로 못 걷던 사람이 걷게 되고 안 들리던 사람이 듣게 되며 자동차가 눈길에도 미끄러지지 않고 굴러가고 자동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으며 어두운 밤에도 적외선 영상으로 길을 횡단하는 사람을 볼 수 있어 사고를 방지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멀리 우주에서 오는 별을 깨끗이 볼 수 있어서 새로운 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는가. 이런 일이 MEMS 기술로 가능해진다.

이처럼 눈부신 미래를 선사해줄 21세기 초소형 전자기계 시스템 제조기술인 MEMS는 아직 프론티어 산업에 속한다. 기업에서도 최근에서야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아직은 개척되지 않아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높은 분야다. 도전 가치가 높은 만큼 성공한다면 보상도 크다.

미래의 주역인 여러분이 MEMS 기술을 굳건하게 다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는데 동참하는 것은 어떨지….


김용권 교수는 1983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 일본 도쿄대 전기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일본 히타치제작소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고, 1992년부터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MEMS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특히 디스플레이, 자동차, 무선통신, 바이오 분야에 응용하는 MEMS 소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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