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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아름다움을 설계하다 -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교수
분야 산업기술/건축 날짜 2011-04-05
도시의 아름다움을 설계하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교수
| 글 | 이영혜ㆍyhlee@donga.com |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샹젤리제 거리. 1880m나 되는 직선도로 양쪽으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울창한 이 거리는 ‘오 샹젤리제’라는 노래를 탄생시킬 정도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거대한 규모 외에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왜 샹젤리제를 특히 더 아름답게 느끼는 걸까.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교수(도시설계 협동과정 겸임)는 “비밀은 건물의 ‘조화’에 있다”고 말한다.

도시 미관은 건물이 좌우

“아무리 멋진 건물이라도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샹젤리제 거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길 양옆에 늘어선 건물들이 높이가 모두 7~8층으로 비슷하고 지붕은 검은색의 천연 ‘점판암’, 외벽은 모두 ‘석회암’이라는 우윳빛 나는 돌로 통일성 있게 지어졌기 때문이죠. 도시설계란 이처럼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고 친근하게 보이도록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말합니다.”

흔히 ‘도시설계’라고 하면 상하수도 시설이나 교통 시설 같은 도시의 기반 시설을 설계하고 도시의 정책이나 경제를 계획하는 일을 생각하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도시계획’이다. 도시설계는 광범위한 도시계획 중에서 공공성 있는 외부 공간, 예를 들면 길거리나 광장, 공원 등을 아름답고 편하게 꾸미는 특화된 분야를 일컫는다.

“도시설계를 할 때는 특히 건물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건물은 수직으로 솟아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눈에 가장 잘 띄기 때문이죠. 그런데 건축설계와는 또 다릅니다. 건축은 한 건물의 내부와 외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만, 도시설계에서는 여러 건물들이 모였을 때 전체 분위기가 아름답고 조화롭도록 건물들의 크기와 높이, 재료, 색채를 고민합니다.”

안 교수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학로 문화지구를 예로 들었다. 대학로에는 마로니에 공원이나 샘터 극장처럼 역사와 전통이 깊은 장소가 많은데, 이것들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이 때문에 대학로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이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외벽의 재질이 벽돌로 제한돼 있다.

“요즘은 건물뿐만 아니라 조각을 세우거나 간판을 달거나 교량을 짓는 프로젝트에도 도시설계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청계천을 복원할 때도 수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도시설계가들이 참여했죠.”


에너지 절약형 도시를 디자인하다

국내 도시설계 분야 1세대인 안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임시행정수도부터 분당, 평촌, 일산, 동백, 고덕, 동탄에 이어 지금의 세종시까지 30년 가까이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는 데 참여해왔다. 그런데 그는 사실 대학 때 건축을 전공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건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돌연 하버드대로 건너가 다시 도시설계를 전공했다. 건물 한 개의 아름다움보다 도시 전체의 큰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도시설계는 건축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둘 다 공대에 속해 있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죠. 또한 도시설계 전문가와 건축설계 전문가는 ‘엔지니어(engineer)’가 아닌 ‘설계가(designer)’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건축설계를 예술 분야 전공으로 분류하기도 하고요. 도시설계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공학과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도시설계연구실의 분위기는 각종 기계와 실험 장비가 갖춰진 일반적인 공대 실험실과 사뭇 다르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합니다. 사람들이 도시의 어떤 장소에 많이 모이는지, 그 장소의 특성은 어떤지 분석해서 공간을 디자인할 때 활용하는 거예요.”

분석 결과 사람들은 기억에 오래 남는 장소에 모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곳은 여럿이 함께 모이는 약속 장소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건물이나 거리의 특징이 뚜렷하다. 또 대체로 접근이 편리하고 안정감이 있다.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설계하게 된다.

도시설계연구실에서는 최근 녹색 성장과 관련해 에너지 절약 도시설계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에너지를 절약하는 건물은 많이 연구됐지만 도시 전체 규모로 연구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답은 간단합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하는 곳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도록 백화점이나 학교, 직장을 주택가 인근에 배치하면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이 강해요. 그러므로 질 높은 교육을 균질하게 공급하는 것도 교통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도시설계연구실은 이외에 낙후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역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는 병원, 영화관, 식당, 상점 등 여러 가지가 들어 있는 복합적인 빌딩을 건설하고, 건물 안에서 밖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과 연결시키는 식이다. 이때 어떤 가게를 넣을지, 몇 층에 무엇을 배치해야 효율적일지도 모두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영화 주인공보다 배경에 주목하는 이유

“도시설계도 결국 다른 설계와 마찬가지로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적 감각은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것이지 개인의 천재성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교수는 도시설계연구실 학생들이 외국의 유명한 도시와 거리를 경험하고 올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04년에는 학생들 14명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는 것을 강조한다.

“디자인에서 미적 감각만큼 중요한 게 창의성이에요. 창의성은 평소 습관이 좌우합니다. 평소에 길을 걸을 때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공간이 아름다운가, 편한가, 안전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보세요. 거기서 좋은 점은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극복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상상해보는 겁니다. 창의성은 이런 경험이 수년간 축적된 결과입니다.”

안 교수는 아직도 영화를 보면 주인공보다 영화의 배경에 관심이 더 많다고 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우주 도시의 공간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 영화에서는 당시 도시의 모습에 주목한다.

“학생들은 저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때마다 어떤 분야에서든 10년만 최선을 다해 일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기회를 쫓지 말고 한 우물을 깊게 파라고 말합니다. 오늘부터 당장 나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 가는 길부터 유심히 살펴보세요. 그럼 나만의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고수의 비법전수
도시설계는 미적 감각과 창의성이 중요하다.
평소 아름다운 디자인을 많이 경험하고, 익숙한 공간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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