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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전자공학의 ‘행복한 만남’ 서울대 전기공학부 김성준 교수
분야 건강의료/의학
산업기술/전기
날짜 2011-04-04
의학과 전자공학의 ‘행복한 만남’
서울대 전기공학부 김성준 교수
| 글 | 김윤미 기자ㆍymkim@donga.com |

 
 
   
 
 
“사람의 몸을 치유함으로써 행복을 주는 의학, 안전하고 편리한 기술로 사회에 공헌하는 공학, 전자공학과 의학이 융합한 생체전자공학이야말로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분야가 아닐까요.”


19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미국 사회에서 신경보철(Neural Prosthesis)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등재되지도 않을 만큼 낯선 분야였다. 1978년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학사를 마치고 생체전자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던 서울대 전기공학부 김성준 교수도 신경보철에 대해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6백만 달러의 사나이 꿈 꾼 전자공학자

김 교수는 1983년 미국 코넬대에서 생체전자공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에서 1989년까지 6년간 반도체공학을 연구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는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반도체기술을 이용한 생체전자시스템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장학금을 지원받는다는 조건으로 유학을 갔어요. 전자공학을 의학에 응용한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죠. 하지만 지도교수를 만나고 연구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신경보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 나를 뭘 믿고 뽑아 준 건지 아직도 모르겠네요(웃음).”

김 교수는 자신의 유학과정을 소개하면서 생체공학의 큰 줄기인 신경보철에 대한 당시 미국 사회의 인식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신경보철은 뭘까.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했던 TV 외화시리즈 ‘6백만 달러의 사나이’ 알죠? 그 ‘6백만 달러의 사나이’, 즉 ‘바이오닉 휴먼’을 떠올리면 쉬울 겁니다.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거나 기계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죠. 신경보철은 손상된 신경 때문에 감각과 운동 기능에 장애가 온 신체기관을 정상인의 것처럼 회복시키는 장치를 말합니다.”

미국 TV의 시리즈물이었던 ‘6백만 달러의 사나이’에는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에 최첨단 생체공학 기술로 만든 신경보철 장치를 장착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기계를 장착한 그의 몸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고, 더 강했다. 비록 사고로 장애를 입었지만 기계의 도움을 얻어 더 강하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대중의 상상력은 이처럼 과학기술 문명을 먼저 이끌기도 한다. ‘6백만 달러의 사나이’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국내 생체공학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 서울대 전기공학부의 김성준 교수를 찾았다.

인공와우로 청각장애우의 희망을 쏜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탁자 위에 놓인 동그랗고 반짝이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판 아래 곱게 놓여 있는 이 장비들이 바로 인공와우(달팽이관)다. 최근에 김 교수의 생체전자시스템연구실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인공와우를 개발했다.

“헷갈리지 마세요. 인공와우는 보청기가 아닙니다. 보청기는 청력은 살아있는데 매우 약할 때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에요. 이와 달리 인공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이 손상된 사람에게 장착하는 장비죠.”

달팽이관에는 소리 자극을 전기 자극으로 바꿔서 청신경으로 전달하는 감각세포들이 있다. 이 세포들이 손상되면 뇌로 소리 자극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인공와우는 감각세포가 손상된 달팽이관의 기능을 대신한다. 인공와우의 일부는 귀 뒤의 두피 밑에 장착하고 나머지는 달팽이관 속에 삽입한다. 물론 장비를 몸에 장착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수술 과정이 필요하다.

“신경보철은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간편하지만 환자의 수술이 불가피하죠. 따라서 수술을 무릅쓰고서라도 기술의 혜택을 받는 이 과정까지를 신경보철에 대한 정의로 봐야 합니다.”

인공와우는 선진국의 경우 1970년대 초부터 개발하기 시작해서 1990년대 중반에는 제품화에 성공했고 1997년부터는 실제 시술에 들어갔다. 인공와우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호주의 ‘코클리어’(Cochlear)가 있다. 이 기업은 설립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더니 얼마 전에는 연간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수술의 혜택을 받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그마치 전 인구의 0.2%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구 10만 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국에서 인공와우 시술을 받을 경우 약 2만 5000달러가 들어요. 그런데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합니다. 청력을 회복한 사람들이 경제활동 인구가 되면 국가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신경보철 산업의 발전은 곧 사회적·경제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데서 많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인공와우에서 인공망막까지

인공와우는 현재 임상실험에 들어갔고 이 연구실을 기반으로 문을 연 벤처기업에서 제품화를 진행 중이다. 선진국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룬 결과를 지금 쫓고 있다면 다소 늦은 건 아닐까. 김 교수의 경쟁력이 궁금해졌다.

“저렴하지만 성능과 효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연구의 목표입니다.”

인공와우의 값이 비싼 이유는 부속품을 만들고 조립하는 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 자동생산 라인을 갖추고 공정을 단축해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외에도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 환자의 뇌에 전기 자극을 줘 운동장애를 회복시키는 심부뇌자극기를 비롯해 인공 망막, 치과용 전기 자극 임플란트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또 전자공학을 해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전자공학과 의학이 융합한 생체전자공학이야말로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분야가 아닌가 싶네요. 제가 개발한 기술로 잃어버린 신체 기능을 되찾은 환자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이 일의 최고 보람입니다.”

김성준 교수는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어려운 전문 용어에 대해서는 기자가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두 번씩 천천히 설명했고, 좀 더 세밀한 정밀공정에 대해서는 실무를 맡고 있는 연구원에게 답변을 확인받게 할 정도로 신중했다.

하지만 2000년 개소해 국내 생체공학 연구를 이끌고 있는 초미세 생체전자시스템 연구센터의 초대 소장으로서, 여려 기관들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조율하는 관리자로서 이 정도의 엄격함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연구실 홈페이지는 일반인들도 방문해서 연구 성과를 쉽게 익히고 자료를 얻을 수 있도록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잘 정리돼 있다. 최신 기술의 선두에 있는 과학자로서 연구의 진행상황과 방향을 대중에게 알리는 그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인공와우에서 인공망막까지 김 교수의 도전의 끝은 어딜까. 국내 생체전자공학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해본다.
 
고수의 비법전수
급하게 걸으면 중요한 것을 지나친다. 매사에 서두르기보다는 급할수록 한 번 더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이것이 몸에 베이면 실수도 줄어들고, 인간관계도 향상될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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