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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LCD의 아버지’로 임명합니다 - 서울대 전기공학부 이신두 교수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디스플레이 날짜 2011-04-04
당신을 ‘LCD의 아버지’로 임명합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이신두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ㆍuneasy75@donga.com |

 
 
   
 
 
미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피직스 투데이’ 1982년 5월호. 그 잡지 한 권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당시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고체물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유학을 떠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연구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참이었다.

우연히 들쳐본 잡지는 액정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액정이 뭐지?’ 용어조차 생소했지만 너무 재미있어 앉은 자리에서 기사를 모두 읽어버렸다. 그 기사의 등장인물 중 한명이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명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그는 미국 브랜다이스대로 건너가 액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27년 전 얘기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반한 박사학위 논문
“물리학과에 들어갈 땐 아인슈타인처럼 되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막상 공부하다 보니 ‘천재’들이 너무 많더라구요(웃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차원 층 구조에 흥미가 있어서 그랬는지 액정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서울대 전기공학부 이신두 교수가 기억을 더듬었다. 액정이란 액체상의 분자들이 질서 있게 배열된 상태를 통칭하는 물질이다. 물리학도답게 자연의 질서, 대칭성 같은 주제에 끌렸던 그에게 액정의 다양한 층 구조는 매력적이었다.

브랜다이스대에서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일단 닥치는 대로 읽었다. 논문 수 백편은 기본, 액정의 대가로 알려진 프랑스 물리학자 삐에르-길레 드진이 쓴 책 ‘액정 물리학’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틀린 식을 고쳐가며 정독했다. 사실 드진 교수가 바로 ‘피직스 투데이’가 다룬 주인공이자 199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박사과정 중이던 1987년 그는 ‘화학물리학저널’에 액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지도교수는 저자 이름에서 자신을 빼고 ‘이신두’라는 이름 석 자만 넣도록 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완성하는 일까지 혼자 했으니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설명이었다.

박사학위 논문도 ‘히트’를 쳤다. “나중에 들었는데, 드진 교수 연구실에서 제 박사학위 논문을 80부쯤 복사해 연구원들 사이에 돌렸다더군요. 액정 연구의 메카인 그곳에서 제 논문이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분이 좋았죠.”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그는 미국 벨통신연구소(벨코어)에 취직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요즘 흔히 LCD라고 부르는 액정 디스플레이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였다. 겨우 ‘벨코어’라는 단어를 새기는 정도였다. 순수 물리학만 연구해온 그는 벨통신연구소에서 디스플레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4년간 벨통신연구소에서 디스플레이를 연구한 뒤 그는 1992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 당시 언론에서는 이 교수를 ‘국내 최초의 디스플레이 전문가’라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 그의 손에는 80MB짜리 하드디스크가 내장된 386 SX 컴퓨터가 들려 있었다. 운영체제는 윈도우 3.1. 지금 기준에서야 구식 컴퓨터지만 당시로선 최고급 사양이었다.

1996년 5월 13일자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에 실린 논문은 그가 한국 LCD 연구의 1인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 논문이 토대가 돼 삼성전자는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개발할 수 있었다. 그는 “디스플레이 연구 20년 동안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듬해 서울대로 옮긴 이 교수는 최근 관심 분야가 넓어졌다. 그의 연구실 책장엔 생물 관련 서적들이 잔뜩 꽂혀있다. “앞으로는 반도체 기술과 생명공학이 융합될 겁니다. 물리학을 통해 생체 모방 시스템을 구현하고 생체현상을 예측하는 셈이죠.”

실제로 2006년 3월 이 교수는 세포에 인위적으로 신호를 보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세포막의 구조를 변형시켜 세포 내부로 원하는 신호를 보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처럼 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이 잘못돼 생기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

인쇄전자기술도 요즘 이 교수가 부쩍 관심을 쏟는 분야다. 지금처럼 웨이퍼를 깎아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엔 한계가 있다. 반도체가 작아질수록 비용은 더욱 비싸질 터. 만약 프린터가 반도체를 찍어낼 수만 있다면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

디스플레이에서 세포 연구까지
지난해 이 교수는 반도체 기판 표면에서 젖음 현상을 선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 기술의 근간을 마련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11월 24일자 온라인판에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고, 조만간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구논문 중 하이라이트로 소개될 예정이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모두 원천기술과 거기서 파생한 핵심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원천기술에서 파생된 핵심기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령 벨연구소에서 개발한 트랜지스터가 원천기술이라면 트랜지스터를 토대로 개발한 메모리 소자는 핵심기술이다.

그는 “앞으로 남아 있는 연구 인생에서는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살아있는 세포는 이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밝혔다.
5년 뒤 그의 목표는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과 세포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물질 전달 문제를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질병 연구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최근 중국과학원과 소주대 의대에서는 2006년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게재된 이 교수의 논문을 본 뒤 소주대로 초청해 공동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세계 디스플레이 학계에서도 거목으로 꼽힌다. 지난 8월 그는 ‘네이처 포토닉스’가 주관하는 ‘광제어 액정성 복합신소재 국제 워크숍’에서 액정의 미래 활용 가능성에 대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유능한 제자들을 키워내는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중요한 일 중 하납니다.”

지금까지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는 80명이 넘는다. 요즘 연애는 잘 되는지, 안색이 안 좋은데 건강은 괜찮은지, 그는 제자들의 개인사도 챙긴다. 논문지도는 일대일로 마주 앉아 쉼표 하나까지 고치느라 4시간씩 걸릴 정도.
“나는 스승이고 싶다”는 이 교수의 말 한마디에 학자로서, 또 교육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열정이 묻어난다.

박사학위 논문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액정 연구의 대가에게서 인정받고, ‘국내 최초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개발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내놓은 이신두 교수. 당신을 진정한 LCD의 대가로 인정합니다.

고수의 비법 전수
기초부터 확실히 닦아라. 한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야 다른 분야로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라.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할수록 원천기술과 거기서 파생한 핵심기술을 개발하는데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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