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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한강이 들어왔네 - 서일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분야 산업기술/건축
환경기술.에너지/기타
날짜 2011-04-04
컴퓨터에 한강이 들어왔네
서일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 ㆍuneasy75@donga.com |

 
 
   
 
 
“서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팔당호에 페놀이 유출됐습니다. 팔당호 수질예보시스템을 가동해야겠습니다. 빨리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전화기 너머 담당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올 것이 왔구나. 서 교수는 양복 재킷을 집어 들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페놀 생각뿐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스쳐 지나간다. 1초라도 빨리 수질예보시스템을 돌려 페놀이 어떻게 확산될지 예측해야 한다. 그래야 페놀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2차원 하천 해석 프로그램, 램스

위 상황은 가상이다. 하지만 서일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하루빨리 수질예보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가 팔당호에서 직접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페놀이 유입됐을 때 자연적으로 페놀이 빠져나가는 데는 꼬박 1주일이 걸린다. 팔당호가 책임지고 있는 수도권 2400만 가구에 1주일 내내 물이 안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단 뜻이다.

서 교수는 이를 위해 2006년 ‘램스’(RAMS, River Analysis and Modeling System)라는 하천 해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하천에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램스를 이용해 컴퓨터에서 시간에 따라 오염물질의 이동상황과 확산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에는 정확도와 사용자 편의성을 높여 해외판도 출시했다.

현재 램스의 최대 라이벌은 미국에서 개발된 SMS와 덴마크에서 개발된 MIKE. SMS는 1990년대 초 개발된 뒤 20여년 가까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하천 해석 프로그램이다. 사용자가 쓰기 쉽게 설계됐지만 모델 해석 능력은 조금 뒤처진다. 반면 MIKE는 물의 운동을 해석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하천보다는 바닷물을 분석하는 데만 주로 사용된다.

램스는 이 둘의 장점만 모았다. 사용자가 쉽게 활용할 수 있으면서 해석 능력도 뛰어난 하천 해석 프로그램. 그런데 이게 사실 기술적으로 만만치가 않다. 하천이나 연안에 흐르는 물의 운동은 상당히 복잡하다. 이를 실제에 가까운 수치모델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까다로운 편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컴퓨터에서 가상하천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편미분방정식을 풀어 나온 수식을 컴퓨터 언어로 바꿔주는 절차도 거쳐야 한다.

서 교수는 지난 2001년 램스 개발에 뛰어든 지 5년 만에 첫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정도면 상당히 빠르다. 게다가 여기에 들어간 모든 기술은 순수 국산이다. 서 교수는 “국내판과 해외판 모두 베타버전이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램스의 기능은 크게 3가지다. 하천에 물이 흐를 때 유속과 수위를 계산하고, 물의 흐름에 따라 하천의 어느 부분에서 침식이 일어나고 퇴적이 생기는지 알려주며, 하천에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어떻게 확산되는지 시뮬레이션한다.

가령 지난해 서 교수팀은 램스를 한강에 적용해 탄천과 중랑천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돼 한강으로 흘러들어올 경우 탄천에서는 오염물질의 농도변화가 빠른 반면 중랑천에서는 천천히 일어나 4일이 지난 뒤에야 노들섬 부근을 지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서 교수는 “조수 간만의 차로 한강 하구에서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오는 현상이 강물의 유속에 영향을 미쳐 오염물질의 이동과 농도변화가 달라졌다”고 풀이했다.

벌써부터 해외에서는 램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초 스페인에서 열린 ‘2008 사라고사 엑스포’에 참가한 서 교수는 학술행사인 ‘워터 트리뷴’에 초청돼 램스를 발표했고 참석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 지역 방송국은 서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램스의 장점과 활용방법을 찍어가기도 했다.

20년 넘게 한 우물 판 하천 해석 전문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요즘 이렇게 한 분야만 오랫동안 연구하는 학자가 드물죠.”
18년 전 발표한 서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하천 해석 모델에 관한 연구다. 다만 그 때는 해석 방식이 선(1차원)과 면(2차원)을 적절히 섞은 1.5차원이었다. 최근 개발한 램스는 2차원 모델이다. 1.5차원 연구에 있어서 그는 이미 세계적인 권위자다. 1998~2004년 국제 저널에 발표한 논문 4편은 해외 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논문 한 편당 평균 20회씩 인용됐고, 그 중에는 40회를 넘긴 논문도 있다.

보통 한 연구가 짧아도 3년은 걸리는 이 분야의 속성상 논문을 자주 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가 지금까지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저널에 25편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기록이다. 미국 상위 5개 대학에서도 토목 분야에서는 연간 평균 0.8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서 교수는 연간 평균 1편 이상 논문을 발표한 셈이다.

‘이름값’ 때문에 국제학술대회에도 종종 초청된다. 중국 난징에서 열린 국제수리학회를 비롯해 올해만 벌써 두 번이나 초청강연을 했다. 서 교수에게 램스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1.5차원 하천 해석 연구가 주를 이루던 학계 분위기도 최근 2차원 연구로 옮겨가고 있다. 서 교수는 이 분야에서도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애초 램스 개발 목표로 삼았던 2011년까지 3년이나 남았지만 서 교수는 마음이 급하다. 현재 베타버전인 램스를 가능한 빨리 상용 버전으로 바꾸고 싶다. 해석 능력은 95% 완성됐지만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좀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램스의 성능도 테스트할 계획이다. 한강을 비롯한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에서 직접 램스를 이용해 오염물질이 어떻게 거동하는지 시뮬레이션할 생각이다. 이 작업이 완료돼야 4대강 수질예보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연말까지 4대강에서 램스 테스트를 마치고 내년 1월 중 수질예보시스템을 시범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하천 해석 연구에만 매달리는 이유가 있을까. 서 교수는 “딸이 지구환경시스템학부에 입학했는데 아빠가 하는 연구는 어렵고 재미가 없다며 전공을 바꾸더라”면서도 “IT나 나노기술처럼 연구 내용이 화려하진 않지만 국가에 꼭 필요한 기반기술이란 점에서 사명감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대에 6개월 동안 교환교수로 지내면서 한국보다 물이 부족한 캘리포니아 주가 한국보다 물을 훨씬 풍족하게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애쿼덕트(도수로)가 수백km에 걸쳐 캘리포니아 주를 가로지르며 물을 공급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세계적인 전문가이지만 새로운 배움 앞에서는 항상 겸손하고 열심인 서 교수. 머지않아 ‘램스의 아버지’로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지 않을까.

고수의 비법 전수
전공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라. 국내 여건상 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하는 일이 쉽진 않다. 하지만 선진국의 연구자들을 봐도 미련하다싶을 정도로 한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이 결국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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