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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조립의 꿈 - 서울대 전기 컴퓨터공학부 교수 권성훈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기타 날짜 2011-04-04
자기조립의 꿈
서울대 전기 컴퓨터공학부 교수 권성훈
| 글 | 이현경 기자ㆍuneasy75@donga.com |
 
 
 
   
 
 
이름 권성훈! 나이 서른 넷! 한국 나이 이제 겨우 서른 넷! 그런데 벌써 명문대 교수! 2006년 서울대 전기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부임. 그때 나이 서른 둘! 2년 만에 ‘네이처 머티리얼스’ 표지 논문 게재! 토끼 같은 두 딸을 둔 아빠! 모든 것을 다 가진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마이크로트레인으로 자기조립
아마도 권성훈 교수가 MBC 오락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한다면 ‘건도’(건방진 도사)에게서 이런 식의 소개를 받지 않을까.
지난 6월 중순 권 교수는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권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네이처 머티리얼스’ 7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렸기 때문이다. 기판 바닥에 선로처럼 미세한 홈을 만든 뒤 여기에 수십~수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 초소형 부품들이 들어 있는 액체를 부어 부품들이 스스로 조립되는 기술을 개발한 것. 이 방법은 자기조립(self-assembly) 기술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반도체 칩처럼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 때 로봇으로 부품을 집어서 맞추는 방식을 사용했다. 즉 로봇 팔이 반도체 칩이나 디바이스를 집어 배치하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픽앤플레이스’(pick-and-place)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로봇 팔이 집어야하는 칩이나 디바이스의 크기가 작을 때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칩 크기가 먼지 정도로 작은 초소형 부품을 조립할 때는 픽앤플레이스 방법이 소위 수지가 안맞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자기조립이다. 자기조립은 말 그대로 스스로 조립한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다. 원자는 그들 사이의 공유결합을 통해 분자를 이룬다. 외부에서 인위적인 힘을 가해 원자들이 분자를 이룬 것이 아니라 공유결합이라는 자발적인 반응을 통해 분자가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자기조립이라고 부른다.

자기조립을 초소형 부품을 조립하는 데 응용하면 어떨까. 실제로 국내외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됐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자기조립 방법은 부품의 조립 효율이 너무 낮다는 단점이 있었다. 권 교수팀은 로봇이 직접 부품을 이동시키는 기존 방법과 액체에 든 부품을 이용한 자기조립 기술의 장점을 결합시켰다. 로봇이 기차 레일(마이크로트레인)과 같은 홈에 액체를 부으면 부품이 홈을 따라 이동해 제자리를 찾도록 한 것.

권 교수팀은 이 방법으로 수백μm 크기의 그리스신전, 컴퓨터 키보드, 에펠탑, 해골 등을 만들었다. 이 중 붉은색 에펠탑이 ‘네이처 머티리얼스’ 7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권 교수는 “이 기술은 LED 조립이나 실리콘 반도체 칩 조립에 응용할 수 있다”며 “살아 있는 세포나 조직을 특정한 패턴으로 만드는 조직공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MIT 라이벌 그룹에 거둔 소중한 1승
권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즉각 반응이 왔다. 미국 MIT의 패트릭 도일 교수가 권 교수에게 e메일을 보냈다. 도일 교수는 유체관 안에서 미세 입자 합성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다. 이미 ‘네이처 머티리얼스’ ‘사이언스’ 같은 유명한 저널에 관련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권 교수에게 “권 교수팀의 ‘네이처 머티리얼스’ 논문이 우리가 발표한 연구의 특허를 인용하지 않았다”며 의문을 표했다.

도일 교수팀이 지난해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한 논문은 흐르는 유체 안에서 같은 종류의 미세 입자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권 교수는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종류에 상관없이 원하는 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고, 이들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자기조립했다. 이 연구 결과가 ‘네이처 머티리얼스’ 7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사실 도일 교수가 권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낸 이유도 자신이 진행하던 연구가 권 교수팀의 이번 논문의 연구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응용물리학 저널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APL)에 발표한 논문 등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시점이 도일 교수팀의 특허 공개일보다 하루 빠르다는 사실을 알려 오해를 풀었다. 권 교수는 “MIT 그룹에 2번이나 ‘우선권’을 뺏겼는데 이번에 소중한 1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내 꿈부터 찾는 일이 우선
그가 ‘어린’ 나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는 학부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뒤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CT) 촬영을 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전자공학이 의료기술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인상을 받았다. 퇴원하는 길에 병원에 있는 의공학과를 무작정 찾아갔다. 마침 그곳에 있던 학부 선배가 친절하게도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의용생체공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석사과정에서 의용생체공학을 공부한 뒤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버클리 소재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연구 내용을 또 한 번 바꿨다. 석사과정에서 전자기기에 집중하다 보니 기초연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오멤스로 연구 방향을 틀면서 나노 수준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멤스(MEMS,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 기술을 이용해 레이저 스캐닝 현미경을 만드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기공학에서 멤스, 나노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해서일까. 그는 2006년 8월 서울대에 부임한 뒤 연구실 이름을 ‘생체공학 및 나노공학연구실’로 짓고 광학, 바이오멤스, 그리고 나노의 세 분야에서 융합 연구를 시작했다.

사실 이 길은 평탄치 않다. 그래서 그는 연구실 제자들을 강하게 훈련시킨다. 교수의 평가보다 무서운 것이 동료의 평가라고 생각해 연구원들에게 서로의 연구를 성가실 만큼 참견하고 평가하도록 한다.

그리고 ‘꿈’을 강조한다. 권 교수는 “똑같은 일을 남들보다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내가 하고 싶고, 해서 행복한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 꿈부터 찾는 일이 필요하다.

현재 권 교수의 꿈은 뭘까. 그는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그날을 꿈꾼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언젠간 사람들의 일상이 권 교수의 연구로 확 바뀌어 있을 그날을 기다려보자.

분야를 넘나 드는 융합 연구의 매력에 빠진 연구실이 있다. 2년 밖에 안된 신생 연구실이지만 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있기에.

고수의 비법 전수
야구에서는 3할 대면 훌륭한 타자지만 연구에서는 1할만 돼도 정말 우수한 연구자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태도다. 연구에서 안될 수 있는 이유 100가지를 찾는 일이,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찾는 일보다 쉽다. 연구는 실패의 연속이지만 이를 견디며 끈기 있게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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