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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메모리’를 찾아서 -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철성 교수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기타
산업기술/재료
날짜 2011-04-04
‘궁극의 메모리’를 찾아서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철성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 ㆍuneasy75@donga.com

 
요즘 메모리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 ‘디지털 혁명의 법칙’ 중 하나로 점찍었던 ‘황(창규)의 법칙’은 트랜지스터 개수를 1년에 2배씩 늘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세계적인 메모리 전문가인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철성 교수는 “트랜지스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골칫거리 트랜지스터

간단히 생각해보자.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을 늘리려면 트랜지스터 수를 늘리면 된다. 여기에 트랜지스터 수는 늘리면서 메모리 크기는 줄이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지금까지 반도체 메모리의 집적도가 증가할수록 칩의 크기는 더 작아지고, 가격은 더 내렸으며, 생산량은 더 늘었다. 이것이 ‘고집적’의 힘이다.

반도체 칩에 트랜지스터 10억 개를 집적시키려면 지름이 1mm도 안되는 면적에 트랜지스터를 최소 2억 개는 넣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트랜지스터를 좁은 공간에 밀어 넣다보니 트랜지스터가 자신의 고유 기능인 ‘스위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트랜지스터가 너무 작아지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 하나에는 전자가 나오는 소스(source), 전자가 흘러들어가는 드레인(drain)

그리고 둘 사이의 전자의 흐름을 조종하는 게이트(gate)와 게이트 산화막이 있다. 컴퓨터는 전자가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흐르면 1로, 흐르지 않으면 0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계속 줄이면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간격도 같이 줄어들고, 이 때 간격이 너무 좁으면 터널링 현상이 일어난다. 게이트에 전압을 걸지 않았는데도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전자가 스스로 건너 뛰어버리는 것. 그래서 데이터가 제멋대로 흘러나와 오염되거나 사라진다. 황 교수는 “현재 D램에 사용하는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40nm가 한계”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요즘 업계에서는 트랜지스터의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3차원 가공 기술이나 아예 트랜지스터를 3차원으로 쌓는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랜지스터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크기로 유지하면서 메모리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위로 쌓을 수밖에 없다. 이미 경제성도 확보했다. 황 교수는 “트랜지스터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쌓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비용이 더 싸다”고 말했다.

물론 트랜지스터를 높이 쌓을 때도 해결할 문제는 남아 있다. D램의 경우 트랜지스터를 위로 쌓다 보니 데이터를 저장하는 축전기(커패시터, capacitor)가 덩달아 세로로 길어진 것. 단면이 넓어야 유리한 축전기가 정작 단면은 줄어들고 높아지기만 한 셈이다.

황 교수는 “트랜지스터가 50nm일 때 축전기는 1500nm쯤 된다”고 말했다. 트랜지스터보다 축전기가 30배나 높아지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축전기의 높이는 줄이고 기능은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저항 크기로 데이터 저장하는 R램

황 교수는 “유전율이 큰 물질을 쓰면 된다”고 말했다. 축전기를 만들 때 부도체인 유전체로 박막을 만들어 데이터를 나타내는 전하를 저장한다. 이때 유전율이 높은 물질로 박막을 만들면 전자가 제멋대로 새는 현상을 막을 뿐 아니라 전하를 저장하는 능력까지 높일 수 있다.

지난해 황 교수팀은 덩어리 유전체로 많이 사용되는 티타늄산화물(TiO2)의 구조를 개량해 메모리 크기는 절반으로 줄이고 전하 저장 능력은 2배 이상 높이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동안 유전율이 40정도인 지르코늄산화물
(ZrO2)이 유전체 박막 재료로 많이 사용됐다. 유전율만 보면 티타늄산화물(100)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존 방법으로는 티타늄산화물을 유전체로 만들었을 때 유전율이 30~40밖에 안나오는 어려움이 있었다. 황 교수팀은 티타늄산화물 유전막이 형성되는 전극의 결정 구조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유전율을 100%까지 끌어올렸다.

최근 황 교수팀은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 메모리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플래시메모리와 함께 각종 전자기기에 가장 많이 쓰이는 D램은 필요한 곳에 있는 데이터를 무작위(random)로 뽑아 처리하기 때문에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다. 읽고 쓰기도 자유롭다.

단 하나 단점이라면, 전원을 끊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누설 전류가 생겨 데이터가 손실(휘발성)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D램에는 지속적으로 전원을 공급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만약 전원이 나간 뒤에도 D램에 기록된 정보가 남을 수만 있다면 차세대 메모리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R램이다. 여기서 R은 저항(resistance)을 뜻한다. D램이 전하 저장형 메모리라면 R램은 저항 변화형 메모리다. 즉 D램이 전하의 양에 따라 0과 1로 구분해 데이터를 저장한다면 R램은 저항의 크기에 따라 0과 1로 구분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지난 2005년 황 교수팀은 ‘응용물리학회지’에 관련 연구를 발표했고, 이 논문은 지금까지 100회가량 인용되면서 R램 연구의 고전(古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 메모리 vs. 인간의 뇌

황 교수가 이끄는 유전박막실험실은 올해로 문을 연지 10년째다. 그 동안 유전박막실험실에서 발표한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만 223편이다. 유전박막실험실이 이렇게 왕성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실제 응용을 강조하는 황 교수의 지도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황 교수는 서울대에 부임하기 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D램 기술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기업에서 실제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버릇이 몸에 밴 그는 학생들에게도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차세대 메모리도 이런 연구에서 탄생할 것이라 믿는다. 현재 그가 ‘궁극의 메모리’로 삼은 모델은 인간의 뇌. 뇌는 메모리보다 크기가 훨씬 작지만 용량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다. 가장 큰 차이점은 뇌가 3차원이라는 것. 게다가 뇌는 기억에 의존해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컴퓨터 메모리는 연산에 따라 움직인다.
어떻게 하면 뇌처럼 계산하는 메모리를 만들 수 있을까? 머지않아 황 교수가 해답의 실마리를 내놓길 기대한다.

고수의 비법 전수
산업화 개념을 가져라. 현재 연구하고 있는 주제가 실제 제품에 활용될 수 있는지 따져보는 습관을 갖자.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최신 동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자들은 ‘내 연구가 최고’라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데, 이를 예방하는 데도 기업의 연구 방향과 개발 계획을 염두에 두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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