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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콘크리트 길들이기 - 조재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분야 산업기술/토목 날짜 2011-04-04
‘깐깐한’ 콘크리트 길들이기
조재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ㆍ uneasy75@donga.com |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어민들에겐 삶의 터전을 약속하는 황금어장으로, 바다를 찾는 이에겐 에메랄드 빛 수려한 풍경으로, 학자들에겐 생태환경의 보고로 사시사철 바다는 아량을 베푼다. 땅덩이 좁은 한국인에게 바다는 금쪽같은 존재다. 그런데 유독 조재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눈에는 바다가 ‘삐딱하게’ 보인다.


 
예측 힘든 균열 잡는다

“철근의 가장 큰 적이 소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강모래가 없어 건물을 지을 때 주로 바닷모래를 쓴다. 바닷모래다보니 소금기가 있기 마련. 그래서 모래를 쓰기 전 물에 꼭 헹궈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건물의 뼈대가 되는 철근이 염분(Cl-) 때문에 빨리 부식된다. 건물의 재료(콘크리트)와 구조(철근)를 다루는 조 교수에게 ‘염분 제조기’인 바다가 곱게 보이지 않을 법도 하다.

조 교수의 전문 분야는 콘크리트. 그런데 콘크리트란 녀석도 다루기가 영 녹녹치 않다. 공사장을 들락거리는 레미콘 앞에는 “물 타면 부실공사 원인 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언뜻 당연하면서도 우습게 들리지만 사실 이 문장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함량 미달의 콘크리트 사용이 원인이었다. 콘크리트에 들어가야 할 비용이 뇌물로 둔갑해 시공업자와 공무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터. ‘기껏해야 콘크리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콘크리트는 물을 조금만 덜 타거나 더 타도 물성이 확 바뀌는 매우 ‘예민한’ 건축 재료다.

예를 들어 물 1000ml가 콘크리트에 섞여야 할 적정량이라고 할 때 5%인 50ml만 오차가 생겨도 나중에 건물에는 치명적인 영향이 미친다.
조 교수가 이끄는 콘크리트구조연구실은 이런 ‘깐깐한’ 콘크리트의 성질부터 건물의 구조까지 복합적으로 연구한다. 온도나 습도 같은 요인들은 건물이 완공된 뒤에도 콘크리트에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기 때문이다.

흔히 ‘금 갔다’고 얘기하는 콘크리트의 균열이 대표적인 예다. 젖어있던 콘크리트가 굳으면 건조수축이 일어나기 때문에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 오래된 아파트 외벽에 금이 간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이 균열은 건물의 안전성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예측할 수 있는 균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균열이다. 교량의 경우 교각과 교각 사이의 판 중앙은 물리적으로 하중을 제일 많이 받기 때문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교각 근처에 균열이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각 근처는 물리적으로 하중을 제일 적게 받는 곳이기 때문에 균열이 생길 확률이 낮다. 게다가 균열이 확장돼 교량이 무너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 교각 근처의 균열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안전을 위해 가급적이면 균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교량을 건설할 때 균열을 예측하는 내구성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항대교 수명 100년 되려면

지난 3월부터 조 교수팀은 현대산업개발의 의뢰를 받아 부산에 건설 중인 북항대교의 내구성을 설계하고 있다.
2011년 완공될 계획인 북항대교는 광안대교(2003년 완공)와 이어지며, 다시 남항대교, 명지대교, 가덕대교, 거가대교를 잇는 6개 교량 중 하나다. 이 다리들이 들어서면 부산 일대 섬들이 모두 육지와 연결된다.

특히 북항대교의 경우 국내 최초로 루프형 접속로를 만들어 해안에서 바다로 300m 지점까지 소규모 교량을 만든 뒤 달팽이관 모양으로 뱅뱅 돌면서 교량 상판까지 올라가도록 설계된다. 3.331km라는 긴 다리가 바다의 염분에 그대로 노출되는 셈. 북항대교의 목표 수명인 100년을 채우려면 내구성 설계가 중요하다.

내구성 설계에는 시시콜콜한 요소들까지 모두 포함된다. 콘크리트 재료는 어떻게 구성하고, 콘크리트 두께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이며, 염분이 철근에 침투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수학적으로 계산한다. 설계사와 시공사는 조 교수팀의 계산 결과에 따라 북항대교의 밑그림을 그린다. 조 교수는 “다리는 더 길게, 빌딩은 더 높게 짓는 최근 추세에 따라 구조물의 내구성을 설계하는 일이 ‘필수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조 교수는 철근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는 사람으로 치면 건물의 뼈대와 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취재 중 그에게 포스코의 관계자로부터 “고성능 철근을 콘크리트와 같이 쓰고 싶은데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겠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가 철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조물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평가하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이때 그가 주목한 요인이 철근의 겹침 이음부였다. 그의 평가 기법은 미국의 내진보강 설계기준에 반영되며 주목받았다.


논문 수 제일 많아

조 교수는 2007년 서울대에 부임했다. 젊은 만큼 연구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대단하다. 부임 첫 해인 지난해, 그는 5월 5일 어린이날 하루를 빼곤 364일 학교에 ‘출석’했다. “콘크리트구조연구실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콘크리트구조연구실은 콘크리트 연구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다.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툰다. 발표한 논문 수로 따지면 단연 으뜸이다. 내년에는 콘크리트 관련 국제학회도 주관할 예정이다. 선후배 연구원들은 콘크리트처럼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콘크리트구조연구실 ‘사단’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단’의 수장이지만 조 교수도 2006년까지는 그 ‘사단’ 중 한명이었다.

조 교수가 이런 ‘사단’을 이끌 적임자로 뽑힌 이유는 뭘까. 그는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23명 중 유일하게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콘크리트구조연구실에서 26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해외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유일하다’는 말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는 말도 된다.

조 교수는 “건설환경공학과 출신은 취직이 잘되는 편이라 타성에 젖어 안일해지기 쉽다”며 “그럴수록 새로운 세계와 연구에 눈을 돌리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며 미래의 공학도를 향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고수의 비법 전수
‘튀는’ 자가 살아남는다. 새로운 연구에 항상 눈을 돌려라. 독성 없는 친환경 콘크리트, 특정한 가루만 뿌리면 팽창하면서 균열을 없애는 자가 치유 콘크리트, 내부 구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똑똑한’ 콘크리트 등 최근 콘크리트 연구에도 첨단기술과의 융합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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