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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전쟁 벌이는 친환경 공학자 -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민수 교수
분야 항공우주기술/기타
환경기술.에너지/기타
날짜 2011-04-04
열과 전쟁 벌이는 친환경 공학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민수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 ㆍuneasy75@donga.com |

“에어컨처럼 ‘바보’ 같은 기계도 없어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민수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단 얘기다. 더운 공기는 많은 열을 갖고 있다. 그만큼 높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더운 공기를 차게 만드는 일은 높은 에너지를 낮은 영역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나온 에너지를 이용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에어컨은 오히려 전기에너지를 쓰면서 더운 공기를 찬 공기로 만드니 ‘바보 같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공기 중의 열을 자유자재로 분리해 이용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에어컨이 프레온가스 같은 기화하기 쉬운 냉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피부에 묻은 물이 증발할 때 피부의 열을 빼앗아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에어컨의 냉매는 기체가 되면서 실내공기의 열을 빼앗는다.


이산화탄소 에어컨과 입는 에어컨

 
   
 
 
김 교수가 에어컨 얘기를 꺼낸 이유는 냉매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냉매는 에어컨뿐만 아니라 냉장고에도 사용된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표적인 냉매인 프레온가스가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프레온가스는 일단 공기 중에 방출되면 400년 이상 분해되지 않고 열을 흡수해 오존층을 파괴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

김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던 1991년 프레온가스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수소불화탄소(HFC)를 혼합한 냉매가 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핫 이슈였다. 전기는 조금 쓰면서 냉각력은 큰 혼합냉매는 없을까.

박사과정 당시 에어컨의 효율을 향상시킬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방한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 데이빗 디디온 박사의 강연을 듣고 혼합냉매의 열역학적인 물성을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을 박사학위 주제로 잡았다. 혼합냉매 자체를 개발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에어컨에 혼합냉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냉매의 성분비를 정확히 계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NIST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7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혼합냉매의 성분비 변화를 예측하는 ‘REFLEAK’이라는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NIST에서 사용되고 있다.

1994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냉매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환경 지킴이’를 자처했다. 신냉매에 관한 국내 특허만 7건을 출원했다. 그중 그의 ‘히트작’은 이산화탄소를 냉매로 사용하는 에어컨이다. HFC를 사용한 혼합냉매도 영향력은 작지만 결국 온실가스 중 하나다. 그는 아예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를 에어컨의 냉매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산화탄소 냉매는 에어컨뿐만 아니라 열펌프에도 사용할 수 있다. 프레온가스를 냉매로 써서 물 온도를 50℃까지 올리는 일반 열펌프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냉매로 사용하면 90℃까지 데우는 이산화탄소 급탕기를 만들 수 있다. 그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의 차세대신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국내 굴지의 에어컨 제조업체와 함께 이 연구를 주도했다.

최근에는 멤스(MEMS) 기술을 이용해 ‘입는 에어컨’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입는 에어컨’은 손톱 크기의 에어컨 시스템을 만들어 옷에 단다는 개념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첨단 기술이다. ‘입는 에어컨’의 핵심은 열교환기, 압축기 등 에어컨에 들어가는 모든 장치를 마이크로 크기로 줄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 기체 냉매를 압축해 이송시키는 마이크로 압축기를 개발해 3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김 교수의 친환경에 대한 관심은 5년 전 연료전지 자동차로 옮겨갔다. 첫 연구 주제는 연료전지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그린 에어컨’ 시스템이었다. 기존 자동차의 에어컨은 프레온가스를 냉매로 사용한다. 자동차를 한 대 폐차시킬 때마다 평균 700g 정도의 프레온가스가 방출된다고 하니 기존 에어컨을 사용하는 연료전지 자동차에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무색하다. 2004년 그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이산화탄소 열펌프에서 열 흡수부의 저온 열원을 이용한 냉각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한국산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에 매진

이후 그는 연료전지 자동차의 운전 장치 전반에 관한 연구로 주제를 넓혔다. 연료전지차는 수소와 공기의 화학반응에서 나오는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전지 스택(수백 개의 전극판이 모여 있는 발전기)을 구동하기 위한 수소 공급 장치, 공기 공급 장치, 열 방출 시스템 같은 운전 장치가 중요하다.

가령 연료전지에서 전기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수소 이온이 전지 내부의 이온교환막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이온교환막 내에 수분이 적절히 존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연료전지 스택으로 공급되는 공기와 수소를 가습할 수 있는 가습장치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이 가습장치가 너무 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단점이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인젝터(injector)를 이용해 획기적으로 부피를 줄인 원통형 가습장치를 개발 중이다.

현재 연료전지 자동차 연구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특히 도요타는 1997년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에 뛰어들어 2002년 세계 최초로 연료전지 자동차 1호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2000년 캘리포니아 연료전지 시범사업(CaFCP)에 참여하면서 싼타페 시범모델을 개발했다.

일본에 비해 시작이 늦은 감은 있지만 김 교수는 “닛산이나 혼다 등에 기술적으로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개발된 현대차의 2세대 투싼 연료전지차는 ‘2007 미쉐린 챌린지 비벤덤’의 환경평가 전 부문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GM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제치고 최고등급을 받았다. 그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세계적인 수준의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긍지를 예비 공학도들에게 나눠주는 일에도 열심이다. 방학을 이용해 고등학생들에게 연료전지 시스템을 강의하는 것. 그의 ‘열강’을 들은 학생 수가 벌써 100명을 넘었다.

그의 강의는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 사이에도 유익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김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덕분에 학생들을 이해하고 교육하는 데 자신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19일 우수강의교수상을 수상했다.

고수의 비법 전수
기초 연구의 응용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라. 김 교수는 친환경이라는 목표를 갖고 기본적인 열 연구에서 시작해 냉매 연구로, 냉매 연구를 ‘친환경 에어컨’ 과 ‘입는 에어컨’ 연구로, 나아가 연료전지 자동차 연구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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