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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함께 사는 지반공학 전문가 - 정충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분야 산업기술/토목
기초과학/지질
날짜 2011-04-04
정충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흙과 함께 사는 지반공학 전문가
| 글 | 이윤재 서울대 전기공학부 05학번ㆍkensiny@paran.com |

“나는 ‘사상누각’이라는 말에 반대해요. 왜냐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진흙 위에 지은 집보다 더 튼튼하기 때문이죠.” 사상누각에 대해 독특한 지론을 펼치는 사람을 만났다. 흙과 함께 살아가고 흙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정충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토목’(土木)은 ‘축토구목’(築土構木)의 토와 목자를 따서 만들었다. 흙을 쌓고 나무를 엮는다는 이 단어는 ‘건설’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은 도로, 교량, 항만, 댐, 공항 같은 각종 건설구조물로 이뤄져 있다. 이처럼 토목공학은 자연과 세상을 디자인해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한 매우 오래되고 방대한 규모의 학문이다.

정충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토목공학의 한 분야인 지반공학을 연구한다. 지반공학은 건설구조물의 토대인 지반(흙)의 역학적 성질을 이해하고 분석해 완성도 높은 구조물을 짓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 분야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지반공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

“우리는 흙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흙은 변화 폭이 매우 크고 불균질한 특성을 가진 재료이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자연을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지반공학은 다른 분야보다 학문적 성과가 적은 편이었는데, 오히려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반공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노스웨스턴대에서 지반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에게 흙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흙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연구 테마는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흙의 역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흙은 그 특성상 연구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연구를 해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동안 흙의 역학적 특성 규명, 이를 위한 실험방법과 각종 실험장비의 개발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앞으로도 연구할 계획입니다.”

지반조사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묻자 정 교수는 자세한 예를 들며 설명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그곳은 지반조사가 많이 이뤄져 있고 자료구축이 잘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료구축 면에서 많이 허술하더군요. 서울시에 지반을 조사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 1만개가 넘는데도 자료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정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모여 IT를 접목해 서울시 지반조사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인터넷의 ‘지도 찾기’ 같이 위치만 검색하면 그 지역의 지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는 건설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 정 교수는 지속적으로 자료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이외에도 인공 섬과 항만, 인천 공항 같은 각종 건설 현장에 지반공학 전문가로서 참여해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공현장의 입체적인 지반 특성을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지반 관련 시공관리 정보화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그는 연구 특성상 대부분 야외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얼굴이 하얘질 틈이 없다면서 웃었다.

현재 그는 서울대 공대 연구부학장, 공학연구소 소장, 한국지반공학회 이사를 겸임하며 대내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토목공학 발전하려면

 
   
 
 
“역설적이지만 건설 사고가 토목공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면이 참 많습니다.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논문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비책이 완성되기 때문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고를 빨리 덮는 데 급급해 원인규명에 소홀한 점이 아쉽습니다.”

정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진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도 사고의 원인 규명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미국은 원인 규명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자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전문가에게 현장은 물론 각종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지진으로 사고가 잦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토목공학의 발전이 더딘 만큼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 교수는 인터뷰 사이사이 연구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반공학을 비롯한 토목공학은 많이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경험이 중요한 학문입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분야죠. 사회적 수요가 많은 토목공학을 전공하면 진로가 매우 다양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 키우는 법

삶의 터전이자 한없이 베푸는 땅을 연구하는 성향 때문인지 정 교수는 인터뷰 내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했다. 평소 학생들에게도 항상 겸손해야 하며, 주변을 배려하는 포용력과 봉사정신을 갖추라고 말한다.

“내 얼굴의 주름과 흰머리에 관한 비밀을 알려줄까요? 나이에 비해 주름이 없는 이유는 항상 웃으면서 더불어 행복하려 하기 때문이고, 반면에 머리가 하얀 이유는 고지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구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소한 것까지 신경써주는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이라고 얘기했다는 말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 교수의 목표는 우리나라의 지반공학을 미국, 영국, 일본, 스웨덴과 견줄 만한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양성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관악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능선과 계곡마다 나무의 색깔이 다릅니다. 이는 뿌리가 내리는 지표면 아래 흙의 두께에 따라 나무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깊이 내릴수록 가지가 활기차게 뻗어나가 싱싱한 잎을 갖게 됩니다. 저는 흙이 두꺼운 땅이 돼 뿌리 깊은 나무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여유를 찾아내는 그는 인생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P r o f i l e

1983년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지반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설교통부 신기술심의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설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지반공학회 이사를 지냈다. 1992년부터 서울대 공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 공대 연구부학장 겸 연구지원소장 그리고 공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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