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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도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 물을 닮은 엔지니어 명지대 석좌교수 선우중호
분야 산업기술/토목 날짜 2011-04-04
연구도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물을 닮은 엔지니어 명지대 석좌교수 선우중호
| 글 | 장경애 기자ㆍkajang@donga.com |

만물의 근원으로 불리는 물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면서 흐른다.

 
   
 
 
‘바위도 뚫는 힘을 가졌으면서 한결같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겸허를 가르쳐주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양이 되고 네모난 곳에 담기면 네모난 모양이 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지혜를 보여준다. 또 장애물이 나타나도 포기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돌아가거나 흘러넘치기를 기다릴 줄 아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며 물을 최고의 선으로 꼽은 노자의 말이다.

여기 노자가 예찬한 물을 닮은 엔지니어가 있다. 명지대 토목공학과 선우중호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 선우 교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서울대 총장, 명지대 총장 시절 보여준 카리스마와 더불어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와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떠올린다. 이렇듯 따뜻한 품성을 지닌 선우 교수의 전공이 물과 관련된 수문학(水文學)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예로부터 어진 임금은 치수(治水) 정책을 중요하게 다뤘다. 21세기인 현재도 물 자원 관리는 국가의 근간이다. 우리나라에 비가 얼마나 오는지 파악하고, 강우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계획하며, 강의 상류, 중류, 하류에서 물의 흐름을 어떻게 조정해야 홍수가 나지 않을지 대비하면서, 장기적으로 국가 물 자원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 수문학이다. 

토목공학의 한 분야인 수문학을 전공한 선우 교수는 자신을 확률적으로 접근하는 엔지니어로 소개한다.

“공학자는 정확해야하는데 수문학은 정확하기 어려워요.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간이 자연현상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요”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한반도 연평균 강우량은 약 1270mm. 전체 강우량의 3분의 2가 6~9월에 집중. 전 국토가 산지와 급경사로 하류로 유량이 빠르게 모인다는 기초적인 정보와 지리적인 여건을 조사해 전국 각지에 댐을 건설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저수 공간을 확보하고, 지역 개발을 조정해도 자연의 갑작스런 변덕 앞에서 인간의 예측은 나약하게 무너진다. 지난 여름 장마에 무너진 안성천 제방을 비롯해 2002년 태풍 루사로 잠긴 강릉, 1996년 범람한 임진강이 그 예다. 


 
   
 
 
01_5남 1녀 중 둘째인 선우중호 교수는 어려서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일은 그의 몫이다. 02_강원도 영월 주천강 요선정 근처에서 찍은 선우 교수의 작품. 제목은 없지만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서 이렇게 아름답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물 , 돌 , 바람

 
   
 
 
선우 교수는 자신을 “지구과학과 토목공학의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한다. 대기에서 일어나는 물의 순환을 이해한 뒤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학자인 선우 교수의 실험실은 거대한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공대 2학년 시절 산악회에 가입한 덕에 요즘도 산을 자주 오르는 선우 교수는 사진과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최근 전문기관에서 2년간의 사진수업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막혔던 물꼬가 터지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습이 의아할 정도다. 사진이 그의 행복비타민이란 생각이 문득 스칠 정도니 말이다. 수문학자인 그가 사진에 담으려는 것은 물, 돌, 바람.

“물, 돌, 바람은 아주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평소엔 눈길 하나 주지 않던 평범한 것들인데 내 카메라 속으로 들어오면 너무 아름답게 보이거든요”라며 목소리가 높아진다. 선우 교수는 이렇게 카메라 속에 담긴 물, 돌, 바람이 현상, 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거듭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흑백 필름 카메라를 고집한다. “흑백 이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만들어줘요. 화려하지 않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좋아요”라며 35mm 라이카 카메라와 120mm 중형카메라인 하셀블라드를 애정어린 손길로 매만진다.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우 교수는 최근 뿌듯한 작업 하나를 마무리 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와 한국공학한림원 주최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선정위원장을 맡아 대한민국 산업현장에 종사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끈 엔지니어를 선정하는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해방 뒤 우리나라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한 엔지니어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배 엔지니어들이 국제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21세기 비전을 만들었는지 후배 엔지니어에게 말해줄 시간이 됐다고 봅니다”라며 전자, 기계, 건설 등 9개 분야의 산업현장에서 활동한 엔지니어 60인을 선정해 그들의 땀과 노력을 알릴 것이라고 설명한다.

선배 엔지니어로서 선우 교수는 “사회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엔지니어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라며 우리나라 내부 경쟁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세계를 무대로 경쟁 상대를 넓히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당신이 1등이면 대한민국이 1등인 세상을 만들라”고 덧붙였다.

i n t e r v i e w

파리 로댕갤러리에서 만난 작품 ‘깔레의 시민’이 요즘 그의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이 프랑스의 도시 깔레를 점령했을 때 에드워드 3세는 깔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깔레에 살고 있던 프랑스 귀족 6명을 죽였다. 로댕은 깔레의 용감한 시민 6명을 모티브로 ‘깔레의 시민’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수문학자로서 연구도,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순리에 몸을 맡겨왔던 선우 교수가 젊은 세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깔레의 시민’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왜일까.




P r o f i l e


1940 출생 / 1963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 1969 캐나다 사스카체완대 석사 / 1973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박사 / 1974~1998 서울대 토목공학과 교수 / 1995. 3~1996. 2 서울대 부총장 / 1996. 2~1998. 8 서울대 총장 / 2000~2004 명지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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