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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불협화음을 조화로운 선율로 만든다 -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
분야 기타/기타 날짜 2011-04-04
정책 불협화음을 조화로운 선율로 만든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
| 글 | 장경애 기자 ㆍ kajang@donga.com |

 
 
   
 
 
2005년 11월 2일은 최장기 미결 국책과제가 해결된 역사적인 날이다. 19년간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부지가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로 확정됐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만든 이가 바로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57)이다.

정부는 2003년 12월, 당시 서울산업대 총장이던 이 회장을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대한민국 최대의 ‘뜨거운 감자’를 맡겼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 논란되던 전북 부안은 당시 이 문제로 치안부재 상태까지 이르렀다.

“사실 성공의 열쇠는 과거의 실패였습니다”라며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란 흔한 말을 던진다.

하지만 이 말은 진실이다. 이 회장은 정부가 19년 동안 방폐장 부지 선정을 추진할 때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분석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직원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정책 실패 사례를 분석한 것이 1년을 넘었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지자체나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힌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요. 주민들의 신뢰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거나, 추진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지요.”

이 회장은 실패를 분석한 뒤 성공의 키워드를 4개로 압축했다. 바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안전성 확보, 정책의 투명성, 민주적 절차, 경제적 보상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내가 사는 곳에는 안 된다’(Nimby)고 밀어내던 방폐장 부지를 4개의 지자체가 서로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인 것이다. 이로써 미제로 남을 뻔했던 국책과제가 마무리됐다.

사실 이 회장은 산업자원부에서 갈등 조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1999년 차관보 시절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 알짜산업인 조선업계에 무역장벽을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양측은 협상을 거듭했지만 결론을 얻지 못한 채 EU측 수석대표는 회의장을 떠났다. 이 회장은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EU측 수석대표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입장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회의가 연장되면서 양측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나는 성실 노력형

사실 모든 정책은 갈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이 갈등의 고리를 풀어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역지사지(易地思之)죠”라며 한마디로 답한다. 이 회장은 정책을 추진하는데 갈등이 생기면 본인 스스로에게는 물론 정책에 반대하는 쪽에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2000년 한국전력공사에서 발전부문을 6개의 자회사로 분리하는 시점에서 전력노조와 대립할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정전사태가 났다. 그때 노사가 함께 시찰하면서 우리나라에 전기가 중단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갈등의 실마리를 풀었다.

 
   
 
 
이희범 회장은 늘 어른스럽게 친구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야기해 이름 ‘희범’ 대신 ‘아범’이란 별명을 달고 지냈다. 사진은 서울대 졸업식 때(위)와 중학교 시절(아래)의 이 회장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던 이 회장의 꿈은 과학자였다. 과학자가 나라를 잘 살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갈 때까지도 과학자의 꿈을 간직했다. 하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외아들인 이 회장은 유학길에 오를 처지가 아니었다. 행정대학원에 진학해서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뒤 산업자원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그는 꿈을 접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공학도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껏 해온 많은 일의 해결 방법을 ‘공학적인 사고’에서 얻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들거나 진행할 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 문제해결 마스터키가 돼 준 것이 바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배우면서 뼛속까지 스며든 엔지니어 마인드다.

“사무관 시절부터 영어를 완벽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죠. 보고서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쓰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일까. 이 회장은 사무관 시절부터 차관까지는 무난하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차관은 물론 장관까지 지낸 것에 대해 그는 “저는 노력형입니다. 직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고 말하면서 후배들에게 “기회를 좇지 말고 실력을 갖추라”고 당부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미래사회를 읽는 힘이 필요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다음 세상(next society)의 진정한 자본은 돈이 아니라 지식이라고 전제하고 지식근로자의 출현을 예언했다. 이 회장도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를 세계 속에 우뚝 세울 자원 역시 지식근로자인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이공계인력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덧붙여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시장을 읽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2015년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야 합니다. 특히 국제 무역 환경의 변화를 읽어 준비해야 낙오되지 않죠.” 2008년 국민소득 2만불, 2012년 무역 1조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무역협회는 국내무역환경을 전자무역환경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정보기술 선진국인 국내 기술력으로 세계 무역환경의 변화를 주도하는 과업이 현재 그의 숙제인 셈이다.

“과거보다 나은 오늘을 물려받은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을 읽는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공계가 그 답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회장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Profile

1949 경북 안동 출생 / 1971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72 제12회 행정고시 수석 합격
1972-2002. 2 주유럽연합 한국대표부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산업자원부 차관
2003. 4 서울산업대 총장 취임 / 2003. 12-2006. 2 산업자원부 장관 / 2006. 2-현재 한국무역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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