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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학은 첨단 기술의 교차로 -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수원
분야 건강의료/의학
생명공학기술/생명공학
융합과학/의공학
날짜 2011-03-31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수원
의료공학은 첨단 기술의 교차로
| 글 | 이상엽 기자ㆍnarciso@donga.com |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논문 발표 대회에 참가한 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산골짜기를 누비고 공장과 도살장, 병원을 오가며 전공도 여러 번 바꿨다.
팔색조 같은 그의 재능은 마침내 의료공학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눈 쌓인 아침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에 찾아갔다가 약속 장소를 급히 바꿨다. “전시회를 보러 갔다”는 성균관대 생명의공학과 서수원 교수를 찾아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으로 갔다. 서 교수는 나노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의료공학자다. 자리에 앉자마자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말투며 인상에서 섬세한 손길로 생명을 다루는 의료공학자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엔 별 관심이 없던’ 학생이 촉망받는 교수로 탈바꿈한 그의 이야기는 한 편의 무용담에 가까웠다.


장학금에 끌려 시작한 논문이 최우수상

 
   
 
 
서수원 교수는 1989년 서울대 천연섬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1994년 서울대 의용생체공학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해 2000년부터 지금까지 성균관대 의대 생명의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료공학 분야에서 고분자와 스텐트, 신물질 등에 관한 15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노기술을 응용한 의료공학에 관심이 많다.
“원래는 졸업하고 사업이나 할까 했었죠. 교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1984년 서울대 천연섬유학과에 입학한 그는 “수석할 것도 아니고, B학점 정도 받으면 졸업은 하니까” 학업을 계속하는 데는 별 뜻이 없었다. 그러다 병역을 마치고 복학한 그에게 한 선배가 당시 문교부에서 주최하던 전국 대학생 학술연구논문 발표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

“1등은 15일간 국비 해외연수에다 장학금 200만원 이라는 말에 혹해서 지원했죠. 당시 등록금이 30만원이었어요.”

천연섬유학과 고(故) 강석권 교수의 실험실에 찾아가 논문 주제로 곤충에서 병을 일으키는 ‘폴리헤드로시스바이러스’를 연구했다. 송충이(솔나방)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송충이를 잡으러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다.

“송충이 직접 보신 적 있어요? 손가락보다 더 커요.”

송충이를 잡다가 가시에 찔린 적도 여러 번이었고, 학교로 돌아와 텐트를 치고 잡아온 송충이를 키웠지만 배양실에 쥐가 들어와 송충이를 다 잡아먹기도 했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얻은 성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회 ‘최우수상’이었다.

논문 발표대회를 계기로 공부에 흥미와 자신감이 붙었다. 졸업을 앞두고 같은 과 석사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1989년 복합신소재를 전공한 박종신 교수가 새로 연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실 문을 열었더니 아무 것도 없고 제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거예요. 실험이요? 막막했죠.”

실험은 둘째 치고 연구비부터 해결해야 할 판이었다. 마침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복합재료를 이용해 미사일 발사대를 개발하고 있던 한 선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복합재료의 노화특성을 연구하기로 하고 연구비를 따왔다. 사실 석사과정 학생이 연구비를 구해 온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구비가 해결돼도 이번엔 실험할 곳이 없었다. 생각 끝에 나일론 공장에서 근무하는 5촌 당숙에게 부탁해 직원들이 퇴근한 뒤 밤에 실험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다.

“정말 힘들게 실험했습니다. 이게 내 갈 길인가 싶기도 했죠. 고민 끝에 언론사 입사시험을 쳐보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서울대 의대 의공학교실 민병구 교수의 인공심장 강의를 듣게 됐다. 그 순간 ‘이거다’란 느낌이 왔다.

“생물학과 고분자 복합재료를 모두 전공한 저에게 딱 맞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교수님을 찾아가 ‘해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죠. 다행히 교수님도 흔쾌히 승낙해 주시더군요.”

도살장에서 나노기술까지

1991년 서 교수는 생긴지 2년째를 맞은 서울공대 의용생체공학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연구 주제를 찾던 중 ‘칼슘화’라는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인공혈관과 인공심장판막에 칼슘이 쌓이는 것으로 방치하면 딱딱해지며 손상 위험이 커진다. 그는 ‘고분자로 인공심장판막을 만들면 기존 금속이나 생물소재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에 나섰다. 혈관 연구를 위해선 혈액부터 필요했다.

“피를 모으려고 매주 마장동 도살장에 갔습니다. 20리터들이 통 4개를 양손에 들고 피를 받았죠. 거기선 ‘소들의 침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안 울거든요. 그곳 고수들이 커다란 망치로 정수리를 내리치면 한 방에 죽어요. ‘1타 1살’, 충격적이었죠.”

혈액을 받아다 분리하려면 대형 원심분리기가 필요한데 학교엔 없었다. 한 병원의 협조를 얻어 밤중에 찾아가서 실험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성균관대 의대 삼성의료원으로 옮긴 서 교수는 계속 인공심장을 연구했다. 혈관에 삽입해 막힌 부위를 넓혀주는 도구인 스텐트를 개선해 특허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진 기초 기술만 개발했었는데 병원에서는 기술을 임상까지 적용해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말한다. 흉부외과 교수들과 함께 인공기도를 만들기도 했다.

“기도를 이식할 때 면역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항상 외부 공기의 오염물질과 접촉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면역 활성화도 필요합니다. ‘양날의 검’이죠.”

그는 고민 끝에 공기를 빨아들일 때의 음압을 견딜 수 있도록 딱딱한 고분자로 기도 구조를 만든 다음 그 내부를 환자의 구강 상피세포로 둘러싸 면역 거부반응을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논문은 지난해 미국 흉부외과학회지 표지로 실릴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다양한 전공 이력도 창의적 발상에 큰 보탬이 됐다.

서 교수는 “의료공학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학문이기 때문에 병원에선 유망한 신기술이라도 반드시 안전하다는 검증을 거쳐야 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주제만 연구하기 보다는 여러 연구결과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질병 진단과 치료에 응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의료공학이란 설명이다.

현재 서 교수는 나노기술을 응용한 질병 조기진단과 치료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질병 여부를 알기 위해선 질병의 징조를 알려주는 표적물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표적물질은 혈액 내에 적은 양만 존재하기 때문에 감도 높은 검출 방법이 필요하다.

서 교수는 양자점(quantum dot)을 이용해 이 문제를 풀고 있다. 금이나 셀레늄 같은 화합물 반도체 결정을 5~10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로 만들면 특정한 색을 띠는 형광물질처럼 변한다. 이를 양자점이라고 하며 기존 화학 염료보다 수천배나 더 밝은 빛을 내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의 원소도 분석할 수 있는 유망 기술로 손꼽힌다.

뽕나무, 뽕잎이나 이를 먹는 누에에 많이 들어있는 디옥시노지리마이신이란 물질을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포도당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 물질은 혈당 강하 기능에다 바이러스의 감염을 억제하는 능력까지 갖춰 에이즈 치료제로도 연구되고 있으며, 비만에도 좋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이 물질을 분리해 특허를 출원하는 등 이미 연구 관련 특허 4~5건을 갖고 있다.

서 교수는 “제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변신을 거듭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곤충병리학에서 고분자소재, 다시 복합학문인 의료공학으로 전공을 바꿔 왔기 때문이다.

“여러 전공을 거쳤기 때문에 물리, 화학공학, 생물공학 등 타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는데 유리하다”는 그는 “당시엔 고생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이젠 어떤 연구과제가 와도 두려움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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