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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 성과 활용이 국가경쟁력 - 과학기술부 성과관리과장 이세준
분야 융합과학/기타 날짜 2011-03-31
연구개발 성과 활용이 국가경쟁력 - 과학기술부 성과관리과장 이세준
| 글 | 이상엽 기자ㆍnarciso@donga.com |


실험하고 논문 쓰는 것이 연구의 전부인 세상은 갔다. 과학기술 연구 성과가 곧 국가경쟁력인 오늘날엔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알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성과관리과장 이세준 박사(42)를 만나 그의 삶 속에 녹아든 기술정책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아침 과기부 평촌 청사에 위치한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국정감사 일정이 끝났다”는 이 박사는 여유 넘치는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편안한 인상과 몸에 밴 매너가 돋보이는 그는 “서비스 정신을 갖춘 공무원이 되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다.

일반인에겐 조금 생소한 전공인 기술정책은 국가의 연구개발(R&D)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기획·조정하는 분야다. 그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과학기술혁신정책을 기획, 조정, 평가하고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배분하는 조직입니다. 제 업무는 여기서 국가연구개발 성과의 관리·활용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일입니다. 과학기술 혁신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진단하고 이를 보완하는 것도 제 과제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술정책은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 필요한 배경지식도 필요한 분야라고 한다.“전공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기본 소양을 쌓으려고 했어요. 기술정책은 공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지금은 보령시가 된 충남 대천에서 태어난 이 박사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 탱크 등 플라스틱 모델을 조립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공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의사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재수 끝에 의대로 진학하려던 생각을 접고 1984년 서울대 자원공학과에 입학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해양 자원을 개발하고 싶었죠. 그런데 입학해서 보니까 배우는 게 지하자원 일색인 거예요. 조금 실망했죠.”당시 자원공학과의 전신이 광산공학과였기 때문이었다. 전공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있기 싫었던 그는 경제학원론, 자원경제학 등 사회과학 강의를 집중적으로 골라 들었다. 이 박사는 “학부생 시절 경제, 경영, 행정 쪽으로 관심분야를 다양하게 넓혔던 것이 기술정책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공학자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금방 풀어내면 그만이죠. 그런데 미시경제학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수요공급곡선 하나를 그려놓고 3시간 동안 강의를 하시더군요. 그때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사회과학은 공학과는 전혀 다른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죠.”


‘월화수목금금금’

 
   
 
 
이세준 박사는 : 1988년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90년 석사학위를, 1995년 기술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정책팀장,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과학기술부 기술혁신평가국 성과관리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1988년 석사과정에 진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자원경제학과 자원시스템공학 등 공학과 연계된 융합학문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생산 요소인 자본과 노동과 함께 기술의 진보가 경제학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90년 석사장교로 병역을 마친 그는 같은 해 박사과정에서 기술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당시 서울공대 김태유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그야말로 ‘빡세게’ 공부했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황우석 교수님이 자주 쓰던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 아시죠? 사실 그 말 원조는 접니다.”그가 만든 이 말을 김 교수와 친분이 있던 황 교수가 듣고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힘들었지만 대학원 시절의 엄청난 학습량 덕분에 탄탄한 공학적 마인드를 갖출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 김 교수님이 ‘일주일에 100시간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매주 월, 목, 토요일 3번 세미나를 갖고 매번 원서 200~300페이지를 읽어야 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세미나가 끝나면 다시 월요일 아침 세미나가 있었기 때문에 주말도 고스란히 반납하고 공부했죠.”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 대한 연구였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이론적 연구를 계속하기보다 직접 현장에 나가 실무를 경험하고 싶었다. 강원대 강사를 거쳐 한보경제연구원로 옮겨 전공과 관련된 분야인 에너지 연구실장을 맡았다. 시베리아 천연가스(PNG) 프로젝트, 남아메리카 유전개발 사업 등이 당시의 업무였다.

2000년 기획예산처로 옮긴 그는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에서 박사학위 주제인 에너지 관련 공기업 경영혁신과 민영화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 김태유 교수의 “과학기술 현장을 아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정책팀장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기술정책 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연구정책팀은 KIST의 비전과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이공계 사기진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죠. 그 밖에 정부 출연연구소의 연구기능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정부의 연구 지원 능력이 국가경쟁력

 
   
 
 
지난 5월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혁신박람회에 전시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부스.
이 박사는 2003년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에서 행정관으로 1년간 일했다. 여기서 그는 ‘이공계 전공자 공직진출 확대방안 수립과정’에 참여하는 한편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 발전방안’ 등에 관여했다. 지금의 과학기술부로 옮겨 온 것은 올해 1월이다.

“대학과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는 정부의 능력이 국가경쟁력입니다. 예산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쓰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연구 성과의 활용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기술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박사는 매년 ‘세계경제포럼’을 비롯한 기관에서 발표하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규모는 세계 10위권입니다. 투자규모가 더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5~10년 뒤엔 우리도 선진 7개국(G7)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의 투자 성과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칫 사장될 수도 있는 우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의 미래는 밝다’며 선진국들로부터 정부의 역량이 조금씩 인정받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한국 과학기술계는 칭찬에 인색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누군가 훌륭한 성과를 내면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없어 아쉽습니다. 연구 성과가 발표되면 경쟁 관계에 있는 학자들이 제일 먼저 비판하는 모습을 종종 봤어요. 다른 사람이 거둔 연구 성과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학기술 성과관리정책도 많이 달라졌다. 먼저 설문조사를 거쳐 연구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 이를 종합해 정책을 추진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비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다양한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고 기술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이 박사는 “한국 과학계엔 프로젝트 매니저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연구 역량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관리능력을 갖춘 과학자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재외과학자들이 국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공동 연구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재외과학자들도 중요한 국가자원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들을 긴밀한 네트워크로 묶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박사는 기술정책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탄탄한 전공 지식을 기반으로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쌓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것을 권했다. 단순한 인맥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를 많이 가지라는 주문이다.

“과학자들이 기부 문화에도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후학들을 위해 연구기금을 쾌척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생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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