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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만한 기계로 블루오션 개척하다 -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 사장 장준근
분야 건강의료/의학
생명공학기술/생명공학
정보기술.컴퓨터통신/기타
날짜 2011-03-31
먼지만한 기계로 블루오션 개척하다 -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 사장 장준근
| 글 | 임소형 기자ㆍsohyung@donga.com |

“이렇게 어려운 건줄 알았으면 안했죠. 지금도 주위에서 누가 벤처 하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려요.”
5년 전 ‘바이오-MEMS’라는 새로운 개념을 갖고 벤처기업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를 창업해 이제 보란 듯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장준근 사장(38). 그에게 창업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그러다 이내 지금 자신의 모습은 “경험과 교육으로 인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못박는다. 과연 그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미세공학과 생물학의 만남

 
   
 
 
장 사장은 1990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할 무렵 인공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연구팀에서 인공장기 설계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의공학과에 진학해 인공장기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내친 김에 박사과정까지 진학해 세포공학을 공부했다.

생물학이나 의학에서는 많은 경우 세포에 화학성분을 처리한 뒤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한다. 그런데 공학도 출신의 눈으로 보니 그런 반응을 분석하는 도구들이 미세한 세포를 다루기에 너무 둔감하다는 걸 발견했다. 뭔가 혁신적인 분석도구가 필요했다. 이에 장 사장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세포 하나는 길이가 15μm(1μm=10-6m), 폭이 3~5μm, 높이가 5μm 정도밖에 안됩니다. 게다가 그 정도 크기 안에 흐르는 유체의 양은 피코리터(pL), 펨토리터(fL) 단위에요. 이런 미세유체는 기존 유체역학에서 다루는 양의 1000~100만분의 1밖에 안되죠. 때문에 세포를 다루려면 아주 정교한 미세기기가 필요해요.”

장 사장은 세포를 다루는 미세기기 개발 기술을 ‘바이오-MEMS’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의학, 공학, 생물학, 화학, 광학 등을 전공한 젊은 과학자들을 모아 의기투합해 바이오-MEMS 전문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각종 미세기기를 개발해 공학과 생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결국 장 사장은 기계공학, 생물학, 의학을 두루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기계로 세포를 다루는 일에 접근한 것. 그러니 현재의 모습이 진화의 산물이란 얘기도 이해가 된다.
올해 3월에는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가 개발한 ‘C-리더’가 축산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C-리더는 세포의 수를 세는 기계다. 세포 수 측정과 축산이 도무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외국 제품보다 성능 1000배

우유의 품질을 검사할 때는 우유에 들어있는 세포 수를 측정한다. 지금까지는 목장에서 젖을 짜 큰 탱크에 담아 품질검사소로 가져간 다음 여기서 적은 양의 샘플을 뽑아 세포 수를 측정했다.

이때 사용하는 기기는 대부분 규모가 크고 비싼 외국산이다. 그런데 소의 젖 4개 가운데 하나에만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 법. 이런 경우 기존처럼 대량으로 하는 검사로는 선별할 수 없어 결국 품질이 떨어진 우유가 되고 만다.
“축산업계는 현장에서 소량씩 품질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기를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갖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C-리더가 제격이죠. 성능도 외국산보다 훨씬 좋아요. 외국기기가 세포를 1000개 단위로 세는데 비해 C-리더는 1개 단위까지 셀 수 있거든요.”

C-리더는 유럽품질인증과 국내신기술인증을 모두 획득했다. 이처럼 현장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한 미세기기의 시장을 개척하는 게 장 사장의 목표다.
‘마이크로포레이터’도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의 야심작. 이는 세포 안에 유전자를 넣는 기기다. 유전자 삽입기술이 산업적으로 가치를 지니려면 한꺼번에 여러 세포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포레이터는 동시에 적어도 1억~10억개 세포에 유전자를 넣는다. 이걸 손으로 일일이 넣으려면 아마 몇 년은 걸릴 게다.

연구자가 실험에 필요한 미세기기를 따로 제작하려면 비싼 장비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장 사장은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가 확보하고 있는 장비를 활용해 미세기기 주문제작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연구자가 설계 아이디어를 갖고 오면 해당하는 미세기기를 제작해주는 서비스다. 개인이나 실험실뿐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이 서비스를 의뢰한다고.


세포 다루는 기술이 경쟁력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가 개발한 ‘C-리더’. 첨단 미세공학이 빚어낸 결정체다. 용도별로 축산용, 환자 진단용, 실험실용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지금까지 얘기로는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미세기기 시장을 척척 뚫어나가며 순조로운 항해를 해온 것 같다.

“처음 벤처를 시작할 때는 훌륭한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금방 많이 팔릴 거라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시장이란 게 생각보다 보수적이에요. 예를 들어 외국산에 비해 우리가 개발한 기기가 분명 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성능도 좋아요. 소비자들이 당연히 우리 제품을 선택할 줄 알았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린 브랜드가 없었어요. 비싸고 성능이 뒤지더라도 아직 많은 연구자들이 외국 대형회사 브랜드의 제품을 선호하더군요.”

아차 싶었다. 그래서 ‘INCYTO’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자체 개발한 모든 제품에 이 브랜드를 찍고, 과학전문저널에 광고도 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었죠. 지금은 전략적 제휴를 맺은 SKC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곧 우리 내부에도 마케팅 전담팀을 따로 구성할 계획이에요. 이런 난관들이 곳곳에 숨어있으니 벤처 하겠다는 주변 사람들을 말린다는 겁니다, 하하.”
장 사장은 과거 DNA의 시대에서 지금 단백질의 시대로 옮겨왔다면, 그 다음은 세포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한다. ‘Cyto’가 ‘세포’를 뜻하는 말이므로 INCYTO는 결국 ‘세포 안쪽’이라는 의미다. 세포를 다루는 미세기술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담긴 브랜드인 셈이다.


과학도 인생도 진화의 산물

회사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을 것 같은데,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학생들도 가르친다. 사장으로, 교수로 맹활약 중인 그는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을까.
“국어를 정말 못했어요. 시험 때마다 하도 엉뚱한 답을 써내니까 보다 못한 국어선생님이 네 생각대로 답을 쓰지 말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쓰라고까지 하셨죠.”
국어보다 수학을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다. 최소한의 공부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때부터 이미 ‘비즈니스 마인드’가 몸에 배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솔직히 난 비즈니스에 필수인 협상에 적합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싫으면 얼굴에 바로 나타나거든요. 넥타이 매는 것도 질색이구요. 그래서 지금도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경영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잘 되면 네 탓, 안되면 내 탓”이라고 말한다.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사람이 그 업무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의견을 가장 존중한다.

“어떤 사항을 결정해야 할 때 관련 업무 담당자를 불러 눈을 바라보면서 물어보죠. 그 직원의 의견이 곧 내 의견이 됩니다. 잘 되면 그 직원에게 인센티브나 논문 제1저자로 보상해주고, 안되면 판단을 잘못한 제 실수죠.”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공부해라” 대신 “취미와 특기를 만들어라”라고 가르친다. 공부보다 취미나 특기를 통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신을 알아야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일에 애정을 갖고 몰두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세상이 바뀌면 과학도 바뀝니다. 지금 잘 나가는 분야라고 해서 미래에도 그럴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하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세요. 시간이 지나면 그 ‘진화의 산물’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장 사장은 이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한다. 목표는 내년 코스닥, 다음 나스닥 등록이다.

내년 5월이면 장 사장이 지금의 아내를 만난지 꼭 20년이란다. 박사과정 때 장가 보내달라고 단식투쟁까지 해서 결혼에 골인한 소중한 인연이다. 장 사장은 코스닥 등록이라는 목표 달성이 그와 아내에게 2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장준근 사장은 1990년 서울대 기계항공 공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의공학과에서 1992년 인공장기 연구로 석사학위를, 1995년 세포공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물학과 공학을 넘나들던 경험을 토대로 2000년 바이오-MEMS 전문 벤처기업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를 창업했다. 현재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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