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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함께 꿈꾸는 행복한 가정 - 유진로보틱스 사장 신경철
분야 융합과학/로봇 날짜 2011-03-31
로봇과 함께 꿈꾸는 행복한 가정 - 유진로보틱스 사장 신경철
| 글 | 이상엽 기자ㆍnarciso@donga.com |

크고 육중한 로봇만이 로봇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은 작은 가정용 로봇 안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 유진로보틱스 신경철 사장(48)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로봇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있다. 그가 상상하는 즐거운 미래 로봇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2004년 유진로보틱스에서 만든 만능 엔터테인먼트 로봇 ‘아이로비’.
지난 7월 ‘가리봉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 서울 금천구 가산동 일대. IT기업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산동 SK트윈테크타워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조용한 웃음, 나지막한 목소리, 마음 여려 보이는 눈. 신경철 사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순진한 공학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로봇의 일이예요.”
로봇이라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전투 로봇이나 공장에서 쓰는 용접 로봇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신 사장이 제시하는 미래의 로봇상은 사람들에게 정보와 즐거움을 주는 로봇이다. 그는 “로봇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로 ‘일하다’(robota)라는 뜻입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만 일은 아니에요. 집안일도 일이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76학번인 그는 1980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일하며 컴퓨터지원설계(CAD)나 컴퓨터지원생산(CAM) 등 컴퓨터와 접목되는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종이와 펜이 아닌 새로운 도구로 하는 산업에 흥미가 많았다”는 신 사장은 ‘컴퓨터를 이용한 로봇을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로봇을 더 깊이 공부하기로 했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미국 미시건대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은 로봇제어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 로봇은 한창 인기과목이었다. 산업용 로봇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미시건대에선 기계, 전자, 컴퓨터, 항공 등의 폭넓은 분야와 로봇을 연계해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미시건대에서 배운 것들이 사업을 하며 큰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했다.

1988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공을 살려 삼성항공 정밀기계연구소에서 산업용 로봇 개발팀장을 맡았다. 1990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자동화기기 전문회사를 맡아 로봇회사로 바꾼 것이 지금의 유진로보틱스다.



가정용 로봇에 미래를 걸다
 
   
 
 
신경철 사장
당시만 해도 한국은 로봇산업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이 활발히 제품을 내놓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일부 대기업 연구소 정도가 고작이었고 전문기업은 거의 없었다. 산업기반이 불안정해 이직도 잦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쉽게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며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로봇에 애착이 많았던 신 사장은 계속 한 우물을 파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 스위스, 일본 등의 업체들과 기술·사업면에서 협력하면서 로봇 생산에서 응용기술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 그때부터 ‘로봇을 가정용으로 써보자’고 생각했다. 사람과 친근한 로봇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고, 집을 지키고, 집안일을 대신하는 다기능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용 로봇을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주위 반응은 싸늘했다. “그게 무슨 산업이 되느냐” “과연 성공하겠느냐”는 등이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아이로비’를 개발한 뒤 교육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할 때도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로봇 말고도 수익성 있는 사업은 많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로봇의 중요성을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3년 지능형 로봇이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선정됐다. 기관·업체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고 연락해 왔다. ‘로봇 산업은 뜬다’고 믿고 정성을 쏟은 신 사장의 노력이 일궈낸 성과였다.

때맞춰 국내에선 로봇 축구대회가 열렸다. 로봇 산업을 활성화시킬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축구 로봇을 제작해 보급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로봇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저희 회사에서 만든 로봇으로 대회에 출전한 팀이 거의 1000팀에 이릅니다.” 신 사장은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1998년엔 KIST에서 5년짜리 프로젝트를 제안해 왔다. 지뢰탐지로봇을 개발하는 과제였다. 오랜 연구 끝에 얻은 결실이 자이툰 부대를 따라 이라크에 파견된 롭해즈(ROBHAZ)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며 탐색, 정찰, 위험물 제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원격 조종 로봇이다(과학동아 5월호 기사 ‘롭해즈, 200일간의 작전 기록’ 참고).
“처음엔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과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끝나고 돌이켜보니 롭해즈 개발에 참여한 것이 여러모로 사업에 보탬이 됐습니다.”
2001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차세대 개인용 로봇 과제로 홈 로봇에 대한 최초의 국가 주도 프로젝트를 맡았다. 같은 해 한국로보틱스연구조합의 이사장을 맡았다. 로봇 격투대회, 전시회를 열며 “로봇에 대한 대중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개발 경험이 쌓이자 자신감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2002년 ‘페가수스’에 이어 2004년에는 엔터테인먼트 로봇 ‘아이로비’를 시장에 내놨다. 일정관리, 날씨 정보, 사진 찍기, 동화 구연, 동영상 메일 등 다양한 기능을 한데 갖춘 로봇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호응이 적어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 사장은 주저 없이 “가격에 비해 성능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응축된 기술을 로봇 청소기에 쏟아 부었다.

6개월의 연구 끝에 개발한 제품이 청소 로봇 ‘아이클레보’다. 스스로 장애물을 감지해 움직이며 소음을 크게 줄였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자제품전시회(CES)에 선보였고, 2월 국내에 출시해 크게 주목받았다. 신 사장은 “현재까지 약 4000대가 팔렸다”고 밝혔다.

지난 10일에는 사용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청소방법을 지원하는 ‘아이클레보 큐’를 출시했다. 이어 내년엔 자기 위치를 인식해 움직이는 2세대 로봇 청소기를 내놓을 예정이다.


 
로봇으로 집안일 고민 끝낸다
 
   
 
 
유진로보틱스에서 내놓은 청소로봇 아이클레보. 본체 옆에 장착된 센서가 장애물을 감지해 충돌을 피한다.
“2007년이면 지능형 로봇 산업은 5000억원 규모의 거대 산업이 되고, 매년 2배씩 성장해 2025년엔 자동차 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겁니다.”
유진로보틱스는 앞으로도 청소, 엔터테인먼트 등 가정용 로봇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현재 60여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다.
그는 “사업을 하며 기술개발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점이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당장 팔릴 만한 제품을 출시해야 그 수익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낮은 인식 때문에 속도 많이 탔다. 오랜 개발 끝에 제품을 내놔도 ‘왜 말도 못 하느냐’ ‘바보 같다’는 평까지 들었다. 음성 인식처럼 어려운 기술을 응용해도 첫 반응은 싸늘했다.

“누구나 처음엔 로봇을 보고 흥미와 관심을 갖지만 로봇의 지능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 슬슬 흥미를 잃게 됩니다. 로봇에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신 사장은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익숙한 로봇들과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그는 ‘일단 한 번 써보시라고’ 일주일쯤 빌려 준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로봇의 한계를 잘 알고 적응하게 됩니다. 아직은 로봇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기보다 사람이 로봇이 잘 작동하도록 신경 써야 하는 단계죠.”
아직 사람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단계가 남아있다. 먼저 컴퓨터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여러 기술을 집약해야 한다. 사람의 관절 운동을 모방하려면 가볍고 유연하면서 강도가 뛰어난 신소재도 필요하다. 각종 센서 기술과 낮과 밤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카메라, 물체를 3차원으로 인식하는 기술도 앞으로 해결할 과제다.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려면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해요. 이런 단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우수한 로봇공학자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신 사장은 곧 새로운 로봇 ‘주피터’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는 “가정용 로봇 아이로비의 장점과 편의성을 더 높여 ‘유비쿼터스 로봇’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그가 상상하는 미래의 로봇 세상이 궁금하다.


신경철 사장은 1980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 미시건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 1988년 삼성항공 정밀기계연구소를 거쳐 1993년부터 지금까지 유진로보틱스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로보틱스연구조합 이사장과 한국지능로봇협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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