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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의 변신은 무죄 - 삼성SDI 중앙연구소 윤석열 소장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디스플레이 날짜 2011-03-31
엔지니어의 변신은 무죄 - 삼성SDI 중앙연구소 윤석열 소장
변화의 중심에 자신을 세워라
| 글 | 박근태 기자ㆍkunta@donga.com |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해야한다고 유독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삼성SDI중앙연구소 윤석열 소장(50)을 두고하는 말이다. 10년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 일한다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가만 있자. 10년전 내 컴퓨터는 어떤 기종이었지? 윤석열 소장의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개 저편 어딘가에 숨겨진 옛 고도를 찾아가 듯 기억을 더듬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긴 하지만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도 있는 10년.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일상은 너무도 많이 바뀌어 버렸다. 사람 키를 훨씬 뛰어넘는 102인치 모니터에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무선인터넷, 20~30년전 슈퍼컴퓨터 성능에 해당하는 개인컴퓨터를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당황하는 빛이 역력한 기자에게 윤 소장의 짓궂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다음 10년 뒤는 어떻게 될까요?”

삼성SDI 중앙연구소 500여명의 직원들은 매일처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다. 기업 간의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보이지 않는 전선이 쳐지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뺏고 뺏기는 쟁탈전에 촌각을 다투는 아이디어 전쟁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시장 지형을 바꾼다.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는 더욱 그렇다.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심정입니다.” 윤 소장은 그 치열한 전장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최근 플라스마디스플레이(PDP)와 유기발광소자디스플레이(OLED) 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기업간 경쟁은 물론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나라간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추세다. 좀더 크고 선명한 화면을 생산해 시장에서 안정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SDI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기술이 쏟아져 나옵니다. 긴장을 놓지 않고 경쟁국과 경쟁기업의 눈치도 살펴야 합니다.” 중앙연구소 소속 500여 연구원들의 맏형격인 윤 소장의 말이다.
최근 들어서는 후발국의 추격까지 견제해야하는 형편. 특히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온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산 ‘짝퉁’(모방)제품에 시장을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지난 1월로 중앙연구소장으로 부임한지 꼭 1년이 된다. 1년이면 어지간히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텐데 그에겐 여전히 24시간이 빠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중에도 그를 애타게 찾는 메모가 계속해 들어왔다. 그래도 운동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몸이 열개라면 딱 좋았을 사람이다.

“지금은 LCD나 PDP가 주도하고 있지만 언젠가 OLED나 FED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과 패러다임을 세우고 성과들을 쌓아가도록 교통 정리해주는 일이 제 임무입니다.”
지금도 매일 그의 책상 위에는 40여개의 연구보고서가 올라온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서 시장과 기술 동향 분석,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기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록 지금은 관리직인 관계로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장 후배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하는 연구소라면 사람은 언제나 중심이다. 사람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사람 뽑으랴 정보 얻으랴 돌아다닌 나라가 지난해만 10개국에 이른다.

회사 내에서 윤 소장은 ‘판을 잘 읽기’로 유명하다. 수많은 사람과 정보를 마주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논리적 관계를 엄밀하게 따진다. 윤 소장은 그런 까닭을 ‘전공 탓’으로 돌린다. 전공인 금속공학과 재료공학을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길러진 습성이라고 말한다.
“금속재료공학은 물리 화학 전기 전자 등 거의 모든 이공학을 아우르는 학문입니다. 분석적이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기 때문에 논리적이죠.”
그러나 사실 별 생각없이 선택한 전공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곧잘 했던 그였지만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고3 때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때마침 담임선생님은 금속공학을 권유했다. 포항제철이 막 준공됐던 당시 철강 엔지니어는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그에게는 또 ‘대충’이란 단어는 없다. 윤 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종합기술원 해외 공채 1호. 모든 엔지니어의 꿈인 연구소장이 됐어도 스스로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현재를 버티고 있는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타고난 ‘무던함과 꼼꼼함’ 때문이라고 하는 게 좀더 어울린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는 성격은 학창시절과 직장생활 곳곳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은사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입학한 대학생활은 무미건조했다. 게다가 생활고로 반복해야만 했던 아르바이트는 점점 더 그를 학업에서 멀어지게 했다. 생각다 못해 군대에 다녀온 뒤 졸업을 서두르던 그에게 불현듯 회의가 들었다. 졸업학점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취업하려고 했죠. 그런데 갑자기 ‘지난 4년간 내가 도대체 뭘 배웠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실력도 없는데 회사 들어가서 괜히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누가 될 것 같은 걱정도 생겼구요. 이참에 에라 공부나 더하고 취직을 하기로 결심했죠.”
애당초 학위에 관심은 없었다. 오직 부족한 공부를 매워야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렇게 작심하고 들어간 석사과정을 마칠 무렵 취업 준비에 골몰하던 그에게 다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국비장학생 자격을 신청해보라는 지도 교수의 조언이었다. ‘에라, 기왕 시작한 건대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진학한 그는 그곳에서도 ‘왠지 부족함을 느껴’ 학위 수여를 늦추면서 한해 더 공부했다.
1988년 입사 이후 회사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를 지켜낸 것도 역시 그런 무던함과 꼼꼼함이었다. “승진에 실패했을 때도 ‘그래도 한 회사에 들어왔는데 임원 한번은 해보고 나가야지’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죠”라며 윤 소장은 허허 웃는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엔지니어 수명이 짧다고요? 그런 질문은 안주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하는 말일 뿐입니다.” 기자의 ‘우문’에 윤 소장은 정색한다.
“IMF시절 회사를 등져야만 했던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보세요.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남아 있는 사람보다 더 잘된 사람이 많아요. 위기와 변화를 슬기롭게 받아들인 결과죠. 학자 들 조차 한 분야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없어요.”
윤 소장은 그렇게 유난히도 변화를 강조한다. 앞으로 10년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는 알기 어렵지만 변화 추이를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스스로 그 변화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또 한번 자신이 ‘행운아’라고 덧붙인다.
“나노기술이나 연료전지 같은 최신 기술이 개발되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 해도 큰 행운입니다. 지금도 누구보다 앞서 변화의 흐름 앞에 서 있습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분됩니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 시절 윤 소장이 전국 과학고를 돌며 ‘강연’에 나선 것도 좀 더 많은 후배들이 이런 흐름을 빨리 간파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회사 후원을 받아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나선 일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아직까지 그때만큼 뿌듯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내 할 일은 후견인 역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라.” 기업 연구소장인 그의 운영 철학은 좀 남다르다. ‘핵심 인력 유출에 극도로 민감할 것만 같은 연구소장이 연구원들의 퇴사를 종용하다니’ 상식 밖이다. 자기 성취도가 높은 사원이 많은 회사일수록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오해가 풀린다.
“조직이 변한다고 회사가 잘 돼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회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연구소를 도맡아 운영하며 느낀 생각이란다. 그래서 윤 소장은 연구원들의 자기 발전을 돕고 후견인 역할을 하는데 좀더 힘쓰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 함양을 위해 연구소 내에 신기술을 기획하고 설계 방법을 연구하는 ‘디자인 포 6시그마’라는 새 조직까지 신설했다.

최근 이공계 위기도 역시 주된 관심사로 남아있다. 가끔 과학고 강연을 나가서 후배들에게 ‘10년 뒤’ 질문을 던져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난처해하는 눈빛뿐이라고 한다.
“입시 중심 교육으로 전락한 과학고에 사실 좀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똑똑한 영재들이 모두 의대로 진학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윤 소장은 교양 있다는 우리 기성세대가 못 배운 어머니 세대보다 덜 지혜로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인 것처럼 생각하는 지금의 기성세대를 꼬집는 말이다.
“저와 같은 선배들과 교사, 학부모가 학생들에게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외에 다른 비전을 제대로 던져주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선배로서 후배 학생들에게 좀더 구체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마치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려는 듯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하던 한 학생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윤 소장은 오늘 하는 일을 사사롭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10년 후를 생각하는 오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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