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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세라믹콘덴서에 펼친 재료공학도의 꿈 - 삼성전기 최치준 상무
분야 산업기술/재료
산업기술/전기
날짜 2011-03-31
적층세라믹콘덴서에 펼친 재료공학도의 꿈 - 삼성전기 최치준 상무
기초과학 강조하는 공학자
| 글 | 이현경 기자ㆍuneasy75@donga.com |

1mm가 채 안되는 작은 부품에 연구 인생을 건 공학도가 있다. 재료공학을 연구하면서 인생철학도 깨닫는다. 진정한 프로는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삼성전기 최치준 상무. ‘괴짜’라고 부르기엔 너무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평범’하다고 부르기엔 너무 비범하다.

도대체 공학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얘기는 언어에서 역사로, 다시 문화로 그리고 과학으로 그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기초과학은 국민의 뇌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야 과학 얘기를 듣는구나 싶었더니 역시나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학과 국민의 뇌 구조가 무슨 상관인가. 인터뷰 내내 끊임없이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인물은 삼성전기 전자소자사업부 칩부품팀을 이끌고 있는 최치준 상무.


못 말리는 학구열, 공부하는 기술자
 
   
 
 
1977년 그는 서울대 금속공학과(현재 재료공학부)에 입학했다. 으레 그렇듯이 중·고등학교때 당연히 과학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는 과학에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럼 과학수업 시간마다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 많은 학생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질문을 너무 많이 하면 학생이 선생님을 시험해보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어 마음 놓고 그럴 수도 없었다고.

그런 그가 금속공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학부 1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해야 했을 때 앞으로 금속공학 분야가 뜰 것이라는 얘기가 그의 뇌리에 박혔던 것. 하지만 그는 학부 때도 전공 공부에 목매달았던 것은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들어가서였어요.”
그는 서울대 졸업 후 KAIST 재료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와 박사학위를 모두 그곳에서 받았다. 대학원에 입학해 재료공학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하고서야 그는 재료공학만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재료공학을 전공하는데 물리, 화학 같은 기초과학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됐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무(無)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천재도 몇 십년동안 벽만 보고 있다가 갑자기 창조적인 생각을 해내는 건 불가능하죠.” 그가 기초과학을 강조하는 이유다. 기초과학 연구가 튼튼하지 못하면 공학적 응용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사내에서는 이미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물로 정평이 났다. 덕분에 삼성전기에 입사한 신입사원들도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전자소자사업부에 배치되면 물리, 화학 시험을 치르는 것.
외국 출장 중에도 그의 학구열은 말릴 수 없다. 업무가 끝난 저녁에도 같이 출장 온 직원들을 쉬게 하지 않는다. 대신 공부를 시킨다.
“으샤으샤할 때에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아마추어입니다. 프로라면 한 순간의 열기로 끝나서는 안되죠.”
직원들을 공부시키는 만큼 그의 일은 더 늘어날 텐데 그는 전혀 싫은 내색이 없다. 오히려 리더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직원들을 모두 프로로 만들겠다는 욕심이다.


1mm로 세상을 움직인다
그의 이런 철학이 모여 빛을 발한 것이 바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Multilayer Ceramic Capacitor)다. 콘덴서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비축하는 부품이다. 그 중에서도 MLCC는 칩 콘덴서의 일종인데 얇은 세라믹 판에 전극을 인쇄한 후 층을 쌓으면 여러개의 콘덴서를 병렬로 연결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용량이 커진다.

특히 MLCC는 교류는 통과하고 직류는 통과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 오디오, 노트북 등 다양한 전자제품에 사용되면서 그 쓰임새가 부쩍 늘었다. 휴대전화 하나에 들어있는 MLCC만 무려 2백여개에 달한다. 그만큼 MLCC는 전자제품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기본적인 전자소자다.

현재 매달 세계적으로 8백억개의 콘덴서가 생산된다. 이 중 삼성전기가 충당하는 양은 80억개에 달한다. 세계 콘덴서 시장의 10분의 1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최치준 표’ MLCC는 그가 현장에서 작업자들과 3년 이상을 동고동락하며 얻은 결실이었다. 연구만 하던 공학도가 과감히 현장에 뛰어들어 고생한 댓가였다.
그는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 때까지도 평범한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차츰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만들고, 측정하고, 틀리면 수정하는 실험적인 연구를 원했기 때문에 이론에 치중한 연구에 점점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 검증받아 옳고 그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990년 그는 삼성전기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답답함을 풀어줄 현장에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 공장의 조장, 반장들은 비록 석·박사 학위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구원들이었다.

3년 이상 그들과 함께 MLCC 연구에 매달린 결과 1억원 남짓이던 월매출이 40억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MLCC의 불량을 해결하고 새로운 공법을 발견한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MLCC가 얼마나 작은지 아세요? 가장 작은 것은 가로 길이가 1mm도 채 안됩니다.”
삼성전기가 생산하는 초소형 MLCC는 가로 0.6mm에 폭과 두께가 각각 0.3mm로 좁쌀만한 크기다. 만약 와인잔에 MLCC를 채우려면 무려 1백50만개를 담아야 할 정도로 작은 크기다. 이렇게 작은 MLCC에 세상을 움직인 그의 땀과 노력이 들어있는 것이다.


기본은 변함없다
 
   
 
 
그는 1996년 삼성전기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MLCC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삼성전기의 주력 상품으로 부상하던, 소위 잘 나가던 때였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MLCC는 여전히 그를 필요로 했다. 그 역시 애정을 담았던 MLCC 연구를 한순간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1999년까지 삼성전기의 MLCC 기술고문을 맡아 연구를 계속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장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가 삼성전기에 공식적으로 재입사한 것은 지난 2002년. 당시 MLCC 개발은 다소 고전 중이었다. 기술 개발 등 여러 환경이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을 위한 그의 저력을 보여줄 때였다.
“‘Back to the Basics’가 필요했습니다.” 그가 늘 강조하는 점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MLCC 기술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이 이뤄졌는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철학은 또한번 새로운 성과를 낳았다. 지난 8월 삼성전기는 업계에서는 최고 용량인 22μF(마이크로패럿, 1μF= 10-6F) MLCC 개발에 성공했다. 용량이 커지고 기존의 같은 용량급 MLCC에 비해 크기도 6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최근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전자제품들이 모두 소형화 추세기 때문에 결국 MLCC도 작으면서 용량이 큰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
“실험을 하다보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험을 하면 옳고 그름이 명확해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흑백논리도 가질 수 없습니다. 사고가 개방적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기초과학을 공부하면 뇌 구조가 바뀐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이제야 기자의 의문도 풀렸다. 그리고 이 얘기야말로 그가 이공계 꿈나무와 현재 이공계 학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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