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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로봇 개발 20년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문상 박사
분야 융합과학/로봇 날짜 2011-03-31
인간형 로봇 개발 20년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문상 박사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충직한 부하”
| 글 | 임소형 기자ㆍsohyung@donga.com |


어릴 적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톰을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내는데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김문상 박사. 농부를 꿈꿨던 소년이 로봇박사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로봇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없어 외로운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는 나무인형을 만들기 시작한다. 정성스럽게 눈, 코, 입을 붙이고 팔다리를 조립해 완성한 나무인형에게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던 어느날 천사의 도움으로 피노키오는 진짜 사내아이처럼 말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센터의 김문상 박사는 나무인형 대신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든다. 로봇에게는 김 박사가 제페토 할아버지인 셈이다. 로봇이나 기계로 장식돼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김 박사의 연구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창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난들이었다. 김 박사는 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물은 직접 준다. 정성스럽게 가꾼 난이 꽃을 피우면 저절로 즐거워진다고.

로봇이 조각해낸 얼굴
 
   
 
 
“중학교 1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농부’라고 적었다가 담임 선생님께 혼쭐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신 거죠. 하지만 전 정말 농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뭔가를 내 스스로 가꿔서 그것이 자라 열매 같은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투자한 만큼 거짓없이 결과를 보여주니까요.”

그러던 김 박사는 학창 시절 만화나 책을 통해 로봇을 접하면서 막연한 동경을 갖기 시작했다. 아톰 같은 로봇이 현실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1976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에 진학했다. 로봇과 가장 가까운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곡식이나 과일을 가꿔내는 농부가 되고 싶은 희망과 사람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어내려는 바램이 일맥상통한 셈이다. 기계설계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작은 장치로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내 생각대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졸업 후 김 박사는 1982년 국가 장학금을 받고 유학길에 올랐다. 기계공학의 본거지였던 독일 베를린공대 생산공학 및 설계기술연구소에서 산업용 로봇을 공부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로봇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산업용 로봇 분야가 꽃피기 시작한 때였다. 사람과 격리된 환경이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정형화된 또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로봇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김 박사는 1987년 KIST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용 로봇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인간과 분리된 환경이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환경에서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형 로봇이 주목받게 된 것. 청소로봇, 교육로봇 등의 지능형 로봇 개발이 가능해진 것은 컴퓨터, 통신, 전기, 전자, 기계 같은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능형 로봇 중에서도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을 인간형 로봇, 즉 휴머노이드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를 로봇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말하죠.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바램이 담겨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나 바이센테니얼맨처럼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로봇을 만들려면 아직 갈길이 멀다. 로봇에게 지능이나 감성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기계적인 동작을 어떻게 유연하게 제어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가 해결돼야 인간이라는 완벽한 존재를 본뜰 수 있다. 휴머노이드는 모든 과학기술의 총합체인 셈이다.

20년 남짓 로봇 외길을 걸어온 김 박사는 완벽한 휴머노이드 개발에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1993년 사람 얼굴을 3차원으로 조각해주는 조각로봇을 개발해 대전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금도 김 박사의 연구실 안에는 로봇이 조각해준 김 박사의 얼굴이 전시돼 있다. 1998년에는 네다리로 걷는 휴먼로봇 센토(6쪽 사진)를 내놨다. 김 박사가 센토에 공들인 기간은 자그마치 5년. 앞으로의 로봇시대를 미리 준비하고 서비스 중심의 지능형 로봇 개발을 선도하겠다는 야심작이었다. 그 후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로봇 개발에 초점을 맞춰 안내로봇 지인, 위험작업로봇 롭해즈 등 인간 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됐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탄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한다.

인간 위해 인간형 로봇 개발
 
   
 
 
“현재 로봇 기술은 세계적으로 일본이 가장 앞서있는 상황입니다. 3백년 전에 이미 활쏘는 인형을 만들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로봇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로봇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죠.”

그 결과 산업용 로봇의 경우 세계 시장의 반 이상을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세계적인 일본 기업인 혼다는 10여년 동안 3천억원을 투자해 두다리로 걷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개발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향후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중요 산업 중 하나로 로봇을 꼽았다. 로봇 기술이야말로 기존의 다른 산업들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좀더 고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씽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즉 로봇 자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와도 융합돼 새로운 형태의 산업을 창출해내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휴대전화의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기능 이외에도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의 표정을 살피는 비서 역할까지 하게될지 누가 압니까. 자동차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조는 운전사를 깨울 수 있을만큼 똑똑해질 겁니다. 이런 제품을 개발하는데도 로봇 기술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에 과학기술부에서 시행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간기능 생활지원 지능로봇 기술개발사업이 지난해 10월 1일 시작됐다. 김 박사는 이 사업단의 단장을 맡았다. 우선 사업단에서는 2013년 완료를 목표로 노인을 위한 실버로봇을 한창 개발중이다.

“제가 만든 로봇에 전원을 넣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말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로봇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는 김 박사도 “로봇은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존재여야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돼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40-50년 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로봇이 출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김 박사는 ‘인간의 충직한 부하’로서의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실제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재앙을 초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없지만 로봇에게는 있는 능력 중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순식간에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로봇이 학습을 통해 배운 내용은 단 몇초만에 전세계의 로봇에게 전달될 수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컴퓨터의 우두머리인 스카이넷처럼 말이다.

“로봇은 언제든 인간이 플러그를 뽑을 수 있는 대상이 돼야지, 반대로 로봇이 인간의 플러그를 뽑게 돼서는 곤란합니다.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생명공학 분야의 복제 기술이 악용될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동반자 역할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고자 애쓰는 김 박사는 “지금 생각해도 로봇 분야에 몸담길 참 잘했다”며 자부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많은 후배들이 우리나라 주력산업을 이끌어갈 로봇 개발에 뛰어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로봇은 첨단 과학기술의 총합체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폭넓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현존하지 않는 기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므로 끊임없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최소 3-5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노력 끝에 결실을 보기 때문에 참을성과 끈기도 필수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인만큼 성과를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도 크다. 게다가 인간에게 필요한 장치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보람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달리 보면 기회가 됩니다. 남들이 이공계 기피 현상에 휩쓸릴 때 소신을 갖고 과학자의 길을 택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래를 개척하는 선견지명으로 로봇 개발에 뜻을 품고 동참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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