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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잃지 않은 우리시대의 건축가 - 민현식 교수
분야 산업기술/건축 날짜 2011-03-31
오기 잃지 않은 우리시대의 건축가 - 민현식
인간에 대한 애정이 건축가 되는 첫째 조건
| 글 | 김홍재 기자ㆍecos@donga.com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사람인 민현식. 건축과 함께 한 그의 삶을 통해 건축이란 무엇인지, 건축가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자.

건축가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면서 건축사무소 기오헌의 고문이기도 한 그는 이 시대의 건축가로 불리는 사람 중 하나다. 건축분야에서 청소년의 모델로 선정된 그를 지난 5월 15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났다. 때마침 스승의 날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민 교수는 미래의 건축학도를 위해 건축과 삶에 대한 얘기를 진솔하게 풀어줬다.

잘못된 길을 바로 가다
 
   
 
 
건축가가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민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며 얘기를 시작한다. 민 교수가 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국전’이라는 미술전람회를 의무적으로 단체 관람해야 했는데, 민 교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림을 봤다고 한다. 고등학교때는 직접 밴드반에 참여해 음악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갔다.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도 그의 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어지던 요상한 모양의 집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집은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프랑스 대사관 건물이었다. 어느날 밤 집에 돌아가다 본, 환상적인 조명을 받고 있던 그 집의 날아갈 듯한 지붕과 우주선 같은 모습은 민 교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건축에 대한 관심은 민 교수가 일요일 오후마다 미술과 건축관련 전시회를 보는 새로운 습관을 갖게 했다. 단순히 관심을 갖는데 머물지 않고 직접 찾아다닌 것이다. 미래 주거에 관한 홍익대 졸업전시회, 김석철 건축전, 건축가 안병의 개인전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안병의 개인전 때 입구에 ‘왜 우리는 네모난 방에서만 살아야 하는가’라고 휘갈기듯 써놓은 글을 민 교수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고 있다.

그런데 막상 대학 진학할 때 민 교수는 선생님의 추천에 의해 서울대 공대 응용물리학과에 입학하고 만다. 민 교수는 “물리를 좋아했지만 2학년이 돼서도 건축에 대한 동경을 버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민 교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과를 결정했다.

첫길을 잘못 들어섰지만 이를 깨닫자마자 이뤄진 과감한 결정은 이후 빛을 발했다. 사실 전과한 초기 친구도 없어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민 교수는 건축이란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차츰 깨우쳐 나갔다. 특히 나중에 인하대 건축과의 기틀을 닦은 원정수 선배의 꾸중과 질책, 격려는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민 교수는 “대학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공대여서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이었다”며 “음대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 갈증을 겨우 풀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이건용, 문익환 목사의 장남으로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이었던 문호근(2001년 작고), 치과의사는 부업(?)이라고 말하는 극작가 오종우 등이 당시부터 만난 친구들이다.

민 교수는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17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과 그의 동료인 윤승준 밑에서 실무를 배웠다. 그러던 1989년 민 교수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영국 런던 AA스쿨에서의 공부는 민 교수에게 건축적으로 큰 전환을 이룬 계기가 됐다고 한다.

생활을 디자인하는 일
 
   
 
 
건축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민 교수는 엉뚱하게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되는 남진의 노래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민 교수는 건축에 대한 우리나라의 잘못된 편견이 바로 이 노래 때문에 생겨났다는 재밌는 해석을 내놓는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이 건축하면 스위스에나 있을 법한 별장을 생각하는데, 사실 이런 형태의 집은 우리나라의 삶과 경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민 교수는 “건축이란 그림처럼 예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건축가는 상상을 통해 그리기보다는 우선 주변의 환경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집을 만들어야 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 집이 환경의 한 부분으로 근사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민 교수는 위대한 건축가 미이스 반 델 로에의 얘기를 들려줬다. 반 델 로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전시회에서 “지금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아름다운 형태로 만든 집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처럼 건축의 핵심은 생활을 디자인하는 일이란 얘기였다. 예를 들어 한 집에서 화장실에 가고, 침실에서 자고, 식당에서 밥 먹도록 한 사람이 바로 설계한 건축가라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는 건축을 통해 “하이, 히틀러”라고 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이처럼 건축과 같은 환경이 의식과 생각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민 교수에게 사실 큰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민 교수는 건축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윤리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건축작업실 이름인 ‘기오헌(寄傲軒)’은 이와 같은 오기를 부린다는 뜻을 닮고 있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오기를 부리는 일은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민 교수는 “애착이 가지 않는 자식이 없는 것처럼 건축가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 애착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소개해 달라는 주문에 민 교수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안겨준 신도리코 기숙사와 김수근문화상과 아천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국립 국악중고등학교, 건축가협회 특별상을 안겨준 한국전통문화학교, 파주출판도시의 도시설계, 대전대 마스터플랜과 기숙사, 체육관 등을 들었다.

특히 신도리코 기숙사는 건축가가 느끼는 보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민 교수는 “건축가의 보람은 자신의 이론으로 완벽히 설계해 집을 만들거나, 다른 건축가나 비평가들이 이해하고 찬사를 해주는데 있지 않다”며 “실제 사는 사람이 건축가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민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신도리코 기숙사를 설계할 당시 건축비평가 김모씨는 실제 사는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할 것 같으냐고 부정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기숙사에 사는 한 사람이 민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건축과 관련 글에서 본 집에 대한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테라스에서 맥주 한병을 마시면서 그 얘기가 이거구나 하고 직접 느꼈다는 얘기였다.

은퇴가 없는 삶 가능
건축분야를 전공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물었다. 민 교수는 “건축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처럼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때문에 우선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민 교수는 “건축가가 집에 살 사람을 상상하며 설계하는 일은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며 상상력을 강조한다. 사실 사람에 대해 진실한 애정이 있으면 상상력이 자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건축설계을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애정을 가져야 할 대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를 설계한다면 학교 총장이 아니라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교직원들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건축과를 졸업하면 선택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민 교수는 “설계, 시공, 공무원, 건축이론가, 비평가 등 상당히 다양하다”면서 “건축사, 기술사라는 면허는 은퇴가 없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말한다. 민 교수는 설계를 부탁하는 기업주와 만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건축과를 보내라고 추천한다고 한다. 건축은 구성인자가 관계를 맺는 것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실 회사를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민 교수는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은 건축을 배우면서 여행을 자주 다니고, 다른 분야의 학문과 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우리나라 건축의 뿌리인 전통 건축에 대해서도 처마곡선이 아름답다는 정도보다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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