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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망 생각한 전공선택의 자세
분야 기타/기타 날짜 2011-03-28
21세기 전망 생각한 전공선택의 자세
학문 간의 퓨전 현상 두드러져


한순간에 미래를 결정짓기가 불안하다. 딱히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안다. 진학을 앞둔 학생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중·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을 속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량은 너무 적다.

일반적으로 고등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는 경로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문과·이과·예체능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세부전공을 정하는 것이다. 세부전공은 대강 이과는 자연과학, 공학, 농업생명과학, 의학 등, 문과는 상경, 법학, 인문, 사회 등, 예체능은 체육, 미술, 음악 등으로 나눠지며, 학생은 이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과 또는 학부에 지원하게 된다.

이처럼 전공을 선택하는 방법은 정식화돼 있지만, 막상 선택을 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 이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고등학교까지 배운 지식만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기가 불안하기도 하고, 또 딱히 잘하는 게 무엇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확신이 서있거나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경우에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외압에 의해 자신의 선택을 불안해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전공선택 방법과 조금은 다른 선택의 태도를 가져보자.



수학은 문·이과 구분 잣대 아니다
우선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적성을 가르는 첫번째 루트인 문·이과 구분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을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에 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것이 무슨 진리라도 되는 양,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넌 수학을 잘 하니까 이과가 낫다”는 조언을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수학 또는 국어실력에 따라 문·이과를 나누는 방법이 반드시 바람직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문과에 속하는 경영학과 경제학은 미적분학과 통계학 실력이 떨어지면 따라가기 힘들다. 실제로 필자의 문과계열 친구들 중 상당수가 미적분학 때문에 힘들어했다. 또한 고등학교 수학의 집합 단원은 철학의 논리학과 매우 유사하다. 수학과 다른 학문 간의 접합점은 이외에도 매우 많다.

따라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이과에 가야 한다는 충고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인 측면이 많다. 그러므로 중·고등학생들의 전공적성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편가르기 식의 문·이과 구분은 곤란하다. 통합교과적인 특성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교육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두번째 루트인 세분화된 전공선택에 관해 생각해보자. 대학입시라는 짧은 순간에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 행로가 상당 부분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진학에서 누구나 전공선택이 중요함을 잘 안다. 그렇다면 전공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선 원하는 대학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대략 수능점수에 따라 전공이 정해진다. 한국처럼 전공에 따른 서열화가 아닌 대학 자체가 서열화된 체제에서 특정대학의 ‘간판’을 위해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한 국가 내의 대학 서열의 의미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보다는 학과나 전망 위주로 지원하는 소신파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음으로 졸업 후 취업 정도에 따른 전공선택 방법이 있다. 특히 학과(학부)선택에 있어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대학졸업 후 안정된 직장의 보장과 같은 외부적 요인은 무엇보다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러나 유망직업에 따른 선택시 주의할 점은 직업의 세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이제까지 사농공상의 우위는 역동적으로 바뀌어 오지 않았는가. 좀더 멀리 보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 정도는 염두에 두면서 20년 뒤에 유망할 분야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유행을 쫓아가다 보면 일인자가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력과잉 때문에 엄청난 경쟁에 시달릴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세번째로 자신이 잘하거나 관심이 많은 분야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앞의 두 요소보다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소신파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적성과 앞으로의 비전을 강하게 결부시켜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전공이어야
실제로 상당수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어른의 말씀이나 여론에 마음이 더 쓰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는 어른도, 여론도 만들어주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중요해지는 가치에 대해 들어보자.

매슬로우(A. H. Maslow)에 의하면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정보혁명은 그 이전의 산업혁명 시기와 달리 인간의 새로운 욕구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다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는 생리적인 필요(physiological need)와 안전의 문제(safety and security)였다. 그러나 정보혁명이 시작되면서 사회활동과 소속감을 통해 얻어지는 인정의 욕구(love and belonging)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정보화가 가속될수록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남이 우러러보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존경의 욕구(self-esteem)가 우위를 차지한다. 정보혁명의 후기 단계인 최근의 경우 최고의 인간욕구는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이라고 한다.

정보혁명의 마지막 두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는 바로 ‘self’다. 즉 직업 또는 전공 자체가 자신의 인생을 풍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된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직업! 예전과 달리 직업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한 삶 자체가 돼야 한다. 히딩크가 말했던가, 축구를 즐기라고. 소신있게 택한 전공과 직업이라면 스스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수험생이라면 21세기에 성공가능한 분야는 무엇인가, 대학과 사회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세상의 변화와 자신의 전공선택이 어떻게 접합될 것인지 고민해보자. 최근에는 학문 간의 벽이 무너지고, 다학문적 성격의 새로운 분야들이 부상하고 있다. 흔히들 T Brothers라고 부르는 NT(나노기술), IT(정보통신기술), BT(생명공학기술), ET(환경기술), ST(항공우주기술), CT(문화산업기술)라는 기존의 학문분류와는 사뭇 다른 분야가 급부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노기술은 원자나 분자수준의 크기에 해당하는 물질을 다루는 학문으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산업에의 응용성이 높은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기존 영역의 해체와 학문 간의 퓨전 현상이 21세기 이후의 대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등학생들에게는 통합교과적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며,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현상들을 연결시키는 탐구자세 등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런 조류에서 상당수의 대학에 광역 학부제가 시행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문제점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전공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에 있어서는 다양한 학문을 고루 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이공계 소신있게 선택하자
덧붙여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몇마디만 하자. 이공계 기피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유독 국내의 경우 이것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관련산업을 성장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으로 세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관광이나 유통, 금융업과 같은 서비스업이나 1차산업에 있지 않고, 2차산업과 2차산업에 기반한 3차산업에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입장에서 너도나도 이공계에 안가니까 나도 안간다는 식의 유행에 따르는 듯한 태도는 신중하지 못하다. 이공계 기피는 다르게 해석하면 누구나 가던 시대에서 소신있게 선택한 사람들이 가는 시대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아직까지는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연구여건 개선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이 먼저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의 언론에서 마구잡이식으로 떠들어대는 것에 소신파마저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 글 | 홍성주/서울대 과학사 전공 박사과정, 자유기고가ㆍcastle@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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