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적성파악 빠를수록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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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어느 봄날 서울 H고 1학년에 재학중인 A군은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에 있는 과학실로 달려간다. 오늘은 화약 로켓을 만드는 날이다. 지난번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하리라는 다짐으로 과학반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위험한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들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몇가지 가루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운동장 뒤에서 시험하다가 화상을 입을 뻔했고, 조금 큰 폭발음에 선생님이 달려오기도 했다. H고는 다른 학교에 비해 특별 활동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매년 가을이면 특별반이 준비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은 축제도 열리고 있다. 물론 과학반은 이에 대비해 여러가지 과학 현상을 이용한 재미있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작은 로켓인 것이다. 꿈을 키워준 과학반 활동
로켓 외에도 전기회로를 이용해 ‘사랑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만드는 팀도 있고, 금붕어를 얼렸다가 살려내는 냉동동물팀도 있다.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관찰하고 밤에는 별을 관찰하는 천체망원경 제작팀도 있다. A군은 로켓팀에 있지만 틈틈이 다른 팀이 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참견을 하느라고 과학반원 중에서도 제일 바쁘게 지내고 있다.A군이 중학생일 때에는 과학을 좋아해도 이를 지도해주거나 격려해주는 선생님이나 동료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물리라는 과목을 배웠는데, 물리 선생님께서는 질문하는 것마다 답변해주면서 엉뚱한 질문을 해도 모두 이해했다. 특별활동도 처음에는 어떤 것 하나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과학반에 들어와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 없이 처음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물론 선배들은 1년 이상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미 한팀은 선생님과 함께 천체망원경을 만들고 있었다. A군의 주관심은 물리학이며 우주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예전에 친구들은 다 엉뚱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A군과 같이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을 하려는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면서 더이상 따돌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에 예를 든 A군은 고교 시절 과학반이라는 특별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됐고, 스스로도 과학을 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다. 다른 학생들이 고3이 되면서 성적이나 시험을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A군은 과학책을 읽고, 후배들이 주축이 된 과학반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A군의 목표는 일류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을 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 목표를 이뤘다. 물론 부모나 학교 담임선생님이 바라는 소위 최고 대학은 아니었지만 A군이 좋아하는 물리학을 배웠고,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미국에 물리학을 공부하러 유학갔다. 지금은 워싱턴대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60만명이 넘는 고3 학생들, 아니 2백만명 가까이 되는 고등학생 중에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적성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도받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학생들의 흥미나 적성을 고려하면서 학생들과 상담하는 선생님의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몇년이나 시간 허비할 수도
소수인 선생님과 학생들을 제외한다면 많은 학생들은 피상적으로 학교 성적, 그것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성적이 어느 정도나 되고 그 성적이면 어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만 상담을 받는다. 제대로 된 적성검사나 흥미검사를 받을 기회는 거의 없으며, 이런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없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는 모두 모의고사 등 학력을 견주어보는 시험에만 관심을 갖는다.모든 것이 학교 성적과 일류대학 진학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리나라 교육 분위기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결국 학생들뿐이다. 다음의 사례는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못해서 생긴 것으로 이런 경우 학생들은 몇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B양은 고교 시절 수학 성적이 좋아 2학년에 올라갈 때 이과를 선택하도록 상담을 받았다. 학교 성적과 수능점수가 좋아 그 성적에 맞는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 바로 사범대의 물리교육과였다. 학부과정 4년을 다니는 동안 교육학과 전공과목인 물리학을 공부했고, 틈틈이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와 함께 교회에서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쳤다. 원래 B양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4년 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중·고등학생들에게 물리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이다. B양은 사실 보통 아이보다 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특수아동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 직업을 택한다면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같은 대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그런데 이 학교의 교육학과는 학문적인 것에 치우쳐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없었다. 결국 특수교육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B양은 새로 선택한 학과에 만족하고 졸업한 후 특수아동을 가르치는 일을 보람있게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B양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4-5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B양의 고등학교 시절에 가정환경이나 종교, 성격, 적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대학에 진학하도록 지도를 했다면 마음고생 없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어떤 과목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으로 문과나 이과를 선택하고, 학교성적과 수능성적을 고려한 진로 지도가 사회에 나갈 시간을 더디게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유학 가기도
필자가 20년 동안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만난 학생 중에는 잠재적인 능력은 우수하지만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
C군인 경우 만 3살 때 KIM연구소를 찾아와 중3인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연구소를 다녔다. C군은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고 재능을 보였으나 예체능 분야에는 관심이 없어 학교성적은 최상위권을 유지하지 못했다. 평소에 많은 책을 읽고 수학과 과학 공부는 자율적으로 했지만 다른 학생들처럼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 주로 독학과 연구소에 와서 개별적인 지도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에 진할 때가 돼서는 결국 중압감이 없는 자유로운 학창시절을 위해 부모와 함께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이와 같이 우리 교육의 현실은 창의적이고 잠재가능성이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요즘에는 특히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다시 전문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는 진로 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는 학생의 적성뿐만 아니라 장래 직업에 대한 비전도 함께 고려해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학교의 기능 중 하나는 학생들의 진로를 탐색하고 올바른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시절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성격을 파악해보고 흥미나 적성을 알아보는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직업이나 미래의 직업에 관한 자세한 안내를 하는 학교 안팎의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많이 접해볼 수 있는 교육 풍토가 아쉽다. | 글 | 김명환/KIM연구소 소장ㆍmhkim@thinkid.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