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 - 일본 노벨상의 산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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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 | 글 |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ㆍjpcho@wisementor.net | 유카와 하데키 동상. 교토대 출신 유카와 박사는 ‘중간자 이론’으로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초기 10년 동안 이공대, 법과대, 의과대, 문과대가 문을 열었고 1919년 제국대학령의 개정으로 단과대를 학부로 바꾸면서 이학부, 공학부, 법학부, 의학부, 문학부, 경제학부, 농학부로 개편했다. 1947년에는 교토대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는 10개 학부와 16개 대학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일본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2003년까지만 해도 일본 내 국립대학은 조총련계 민족학교나 중국계 화교학교 졸업생에게 수험 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교토대는 학문을 배우는 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수들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일본 국립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다른 민족 학생들에게도 수험 자격을 부여했다. 교토대는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학교다. 교토대는 전공 과목에서 출석을 점수로 매기지 않는다. 신입생은 종종 수업 시작 전에 교수들이 “수업에 안와도 되니 시험 잘 보세요”라고 하는 말에 당황하곤 한다. 실제로 전공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르는 교수가 없고, 수업에 나오지 않아도 당당히 A학점을 받는 학생들이 많다. 교토대는 제도상 학과를 구분하고 있지만 학생 개개인의 흥미를 중요하게 생각해 다양한 학문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수학, 우주과학, 물리학이 포함돼 있는 교토대 이학부의 명성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명성은 교토대 출신의 물리학자인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서 더욱 굳건해졌다. 유카와 박사의 ‘중간자 이론’에 관한 연구는 세계 100대 과학 사건에 들 정도로 과학사적 의미가 높다. 백주년 기념 시계탑. 건축학과 교수였던 고이치 다케다가 세운 건물로 80여 년이 넘도록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던 유카와 박사는 연구자들이 경제적인 면을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리학계의 사랑방 같은 기초물리학연구소는 일본 최초의 공동이용연구소로서 일본의 이론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또 공동이용연구소는 교토대가 외부 연구자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현재 이곳 박사후 연구원의 절반 가량은 교토대 출신이 아니다. 교토대는 ‘노벨상의 산실’이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 받은 자연과학계열의 노벨상 수상자 9명 가운데 5명이 교토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라이벌인 도쿄대보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수가 적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도쿄대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도 2명이나 배출했다. 교토대 총장인 오이케 가즈오는 “자유로운 학풍과 산책하기 좋은 지형, 학문의 사회적 공헌을 중시하는 전통이 노벨상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의 학창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교토대의 자유로운 학풍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1959년에 교토대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치고 화학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생물학 연구에 푹 빠져 4학년이 될 때까지 이학부에서 바이러스만 연구했다.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는 교칙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그의 학구열을 높이 평가해 졸업을 시켰다. 학생의 학구열을 인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교토대의 유연한 배려가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해 내는 바탕이 되고 있다. 위치:일본, 교토 홈페이지:www.kyoto-u.ac.jp 입학처:Yoshida-Honmachi, Sakyo-ku, Kyoto 606-8501, ryugak78@mail.ad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