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ㆍjpcho@wisementor.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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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완공된 대학 본부에서는 수영장, 농구장, 헬스장 같은 최신 운동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카네기멜론대는 1900년 피츠버그 출신의 사업가 앤드류 카네기가 기증한 100만 달러와 피츠버그 시에서 내놓은 토지를 기금으로 설립됐다. 그 뒤 약 12년 동안 카네기공대(Carnegie Technical Schools)라 불렸으며 피츠버그 산업 노동자들의 자녀를 교육시킬 목적으로 주로 과학,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 실습교육을 제공했다.
카네기공대는 교육과정을 확대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고 1940년대 무렵 공학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1956년 컴퓨팅 센터의 설립을 시작으로 1965년에는 카네기멜론대에 지금의 명성을 안겨준 컴퓨터과학부가 설립됐다.
금융가 앤드류 멜론에 의해 설립된 멜론공대와 1967년 합병돼 비로소 카네기멜론 종합대학으로 탈바꿈했으며 응용심리학, 핵물리학, 응용화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장세를 보였다. 또 로봇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같은 당시 새로운 분야에서 진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둬 카네기멜론대는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세계 최고의 연구대학으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 미국 대학사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대와 법대가 없으면 명문대학 대열에 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1972년 리차드 사이어트 총장은 초일류 의대와 법대는 이미 너무 많기 때문에 카네기멜론대가 이런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어 일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이어트 총장은 최우선 집중투자 대상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컴퓨터 분야를 선택했다. 그 결과 1998년 카네기멜론대가 보유한 컴퓨터 수는 모두 9000여 개로 학생수 7500명보다도 많았다. 1982년에는 이들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앤드류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 네트워크는 1997년 최첨단 무선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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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부와 과학대학 사무실이 있는 스카이프 홀(Scaife Hall)은 지붕모양 때문에 ‘포테이토 칩’ 이라고 불린다. |
앤드류 네트워크를 통해 학생들은 무선으로 과제물을 제출하고 교수들은 카페에 앉아 다른 대학은 물론 외국 교수들과 정보를 교류했다. 이 같은 우수한 환경 덕분에 해킹을 포함해 인터넷 보안과 관련한 세계 최고의 민간기구인 CERT가 탄생했다. 인터넷 검색엔진 ‘라이코스’도 카네기멜론대에서 개발됐다.
카네기멜론대 교육과정의 우수성은 소수 학생제도와 ‘컴퓨터공학 100’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대표된다. 카네기멜론대는 평균 15명의 학생이 한 클래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소수 학생제도는 교수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이자 지각이나 결석을 줄이는 제도가 되고 있다. 카네기멜론대는 ‘컴퓨터 공학 100’이라는 프로그래밍 기초 수업을 1학년 필수 과목으로 정해 놓았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익히고 다른 학과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
2005년 존 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해 카네기멜론대는 대학 역사상 열 다섯 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업적을 쌓았다. 어도비 창업자 찰리 게스케, 라이코스 창업자 마이클 몰딘,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한 세계 두 번째 여성 우주비행사 유디트 레스니크가 카네기멜론대에서 공부했다.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는 ‘카네기멜론대 학생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농담이 널리 퍼져 있다. 혹독한 도전을 요구하는 교육과정을 받아 보면 이것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카네기멜론대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넘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위치: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
홈페이지:www.cmu.edu
입학처:Office of Undergraduate Admission 5000 Forbes Avenue Pittsburgh, PA 15213-3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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