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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미래를 이끌어간다 - 임형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반도체 날짜 2011-01-27
2007년까지 비메모리 부문 세계 5위 달성을 꿈꾸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임형규 사장. 초창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어 꾸준히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는 어떤 비전을 갖고 이 일에 뛰어들었던 것일까.

세계 2위의 반도체 회사인 삼성.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 전반에 걸쳐 균형이 잡힌 기업은 아니다. 세계 10위권 반도체 회사에서 삼성을 제외하면 모두가 비메모리(시스템LSI) 전문업체들이다. 이는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시장규모가 메모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반도체는 메모리, 시스템LSI, 그리고 트랜지스터와 같은 비집적회로 부품(디스크리트)으로 크게 나뉘는데, 시장 규모는 메모리 20%, 디스크리트 10%, 시스템LSI 70%를 차지한다. 국내에서만도 시스템LSI가 차지하는 시장이 7조원이나 된다.

2007년까지 시스템LSI 부문 세계 5위

이런 까닭에 1990년대 말 삼성도 시스템LSI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2007년까지 시스템LSI 부문에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이 본격적인 세계 경쟁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직접 표명한 사람이 임형규 사장이다.

임 사장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1985년부터 만 15년 동안 삼성에서 여러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해온 기술전문가 출신 CEO다.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녹음기 등에 쓰이는 플래시메모리로 시작해서, 캐시메모리로 쓰이는 S램,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메인 메모리인 D램을 순차적으로 개발해왔다. 특히 삼성의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임 사장이 직접 일궈낸 사업이라고 얘기된다.

이같은 기술력과 사업 추진능력에 힘입어 임 사장은 2000년부터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부문인 시스템LSI 사업부를 맡아오고 있다. 그는 2000년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일에 대해 우리나라의 메모리사업을 위해 자신이 지난 15년간 기여한 성과물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스템LSI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새로운 도전목표로 세웠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LCD 구동칩 분양에서 Market Share 세계1위를 기록했다. 비메모리 부문에서의 세계 일류 도약이 시작된 것이다. 시스템LSI 산업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임 사장은 “시스템LSI 부문은 종전의 메모리에 비해 개발해야 할 가짓수도 훨씬 많아 3배의 전문인력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메모리의 경우 D램, S램, 플래시메모리로 가짓수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시스템LSI는 기술중심으로 분류하면 30가지 정도라고 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기의 경우 메모리와 함께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칩, 통신용 칩, 전파송수신용 칩 등 다양한 비메모리 칩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휴대전화기에만도 다양한 시스템LSI 전문연구개발 집단이 필요한 것이다.

점점 확장되는 반도체의 영역
현재 삼성은 10가지의 시스템LSI 칩을 개발하는데, 각각에는 평균 2백여명의 전문인력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즉 임 사장 밑에는 2천여명의 시스템LSI 칩 개발 인력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전문 연구개발인력이 모여 있는 곳”이라며 자부심과 “각각의 집단을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집단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삼성이 비메모리 사업에 역점을 두는 까닭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 전망 때문이기도 하다. 임 사장은 “앞으로 전자기기는 점점 반도체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전자기기의 전체 시스템의 기능을 반도체 칩 하나로 구현하는 시스템온칩(SoC, System on Chip)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시스템온칩은 기존의 수많은 반도체 부품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메모리 하나만 잘해서는 이 추세를 이끌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임 사장은 “미래의 반도체 관련 전문가에게는 폭넓은 전자지식이 요구된다”면서 “앞으로 반도체의 영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미래의 반도체 전문가는 폭넓은 지식을 요구받는 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임 사장은 처음부터 자신의 이같은 성공을 예견했던 것일까. 반도체를 선택하면 화려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비전을 가졌던 것일까. 그는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임 사장은 1972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까닭은 특별히 전자공학을 잘 알아서라거나 적성에 맞아서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최고 학과에 들어간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공대는 오늘날과 달리 최고 성적의 학생들이 진학했다. 공대 다음이 의대였던 시절이었다.

전자공학과에서 주로 공부하는 전자회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반도체는 그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에 가깝고 논리적이어서 그의 적성에 맞았다. 대학 4학년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반도체 회사인 한국반도체에서 2명을 뽑는데 지원했다. 회사가 입사조건으로 제시한 한국과학기술원 석사과정을 통해 반도체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됐다. 당시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의 꿈은 미국으로 유학가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자리잡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워낙 못살고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희망의 나라,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1970년대 초반에 정부는 최고의 교육환경을 갖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만들어 우수인력이 국내에서 공부하고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임 사장은 처음에는 해외로 유학을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KAIST에서 반도체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3년간 회사에서 반도체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보다 앞선 기술을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커졌고, 주변의 대학 동기들이 유학을 준비하는데 자극을 받았다.

다양한 분야 진출 가능한 전자공학

하지만 그의 유학이 미국에서의 안주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세계적인 연구소나 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기업을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삼성이었다. 미국에서 안주한 선배들이 소수인종으로서 당하는 불이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런 사회에서는 자신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자신이 공부한 반도체 공학을 통해 뭔가 조국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애국심과 사명감이 그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하지만 임 사장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나와 같은 동기 때문에 공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한다. “좀더 멋있게 살고 싶고 돈도 벌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려면 자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임 사장은 수시로 대학 강의실을 방문해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후배 학생들에게 “앞으로 전자공학 전공은 사회에서 좋은 출발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얘기한다. 과거처럼 전자공학을 공부한 것이 반도체나 전자제품 개발과 같은 순수 전자분야 연구만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점점 여러 학문들이 융합해가는 상황에서 전자공학은 가장 핵심적인 기초가 되므로 어느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좋은 출발점이 돼준다는 것이다.

임 사장은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장기적인 안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30대 초반 정도까지만 내다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의 근거리를 내다보면 전자공학에서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의대나 한의대로 학생이 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공학에서 단기간의 비전이 안보일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면서 좀더 멋지게 살고 돈도 벌고 싶으면 공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주저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줬다. 그에게 성공이 보였던 것은 40대 때의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면서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다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임 사장은 상무로 승진했고, 오늘날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경우처럼 전자공학은 30대 초가 아니라 40대 정도까지 내다봐야 비전이 보이는 분야다.

오히려 큰 돈은 공학을 근거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수한 사람이라면 전자공학을 선택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지나친 안전주의 때문에 이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과감한 도전과 배팅을 통해 크게 성공할지, 아니면 한평생 안정적으로 그럭저럭 살아갈지는 선택의 문제다.

임 사장은 매번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호기심을 가졌다. 그리고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역사와 사회를 좋아해서 균형있는 지식을 쌓았다. 이를 통해 대중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가졌다. 바로 이 3가지가 임 사장을 오늘날과 같은 자리에 오르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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