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조선기업 이끄는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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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조선기업 이끄는 최길선 최고의 자부심과 끝없는 도전의식만 있으면 OK 영화 ‘훼드라’를 감명 깊게 봤던 시골 출신의 고등학생, 항상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최고를 이루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조선공학자, 오로지 기술력으로 세계 조선시장을 장악한 현대중공업 최길선 사장. 그의 꿈과 철학, 그리고 공학에 대한 열정을 들어본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와 함께 중공업산업 개발붐이 한창 일고 있던 196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 전라북도 어느 시골마을에는 놀기 좋아하고 쌈 잘하는 씩씩한 고등학생 한명이 있었다. 그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 덕에 공부도 운동도 놀이도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현재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사장이 돼 있다. 지난해만 9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거대한 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최길선 사장이 주인공이다. 조선공업과 함께 성장할 꿈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고등학교를 나온 최길선 사장은 1965년 서울대 조선항공공학과에 입학한다. 왜 조선공학과를 택했냐는 질문에 “다른 과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며 “당시 조선항공공학과는 최고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학과였고, 그래서 주저없이 택했다”고 말한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서울대 공대는 의대나 법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입학 점수가 높았다. 특히 1965년도의 조선항공공학과는 서울대 전체에서 가장 높은 커트라인 점수를 기록했다고 말한다. ‘너무 자랑하는거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 때쯤, 이어지는 최 사장의 말은 기자의 오해를 풀기에 충분했다. “사실 ‘훼드라’라는 영화를 무척 감명 깊게 봤다. 그 중에 새로 건조한 배를 바다 위로 처음 띄우는 진수식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영화의 배경인 그리스 풍경과 어울려 고교 시절 내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을 가슴 속에 품은 꿈 많던 고등학생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조선공학과를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자칭 ‘날라리’ 대학생이었다고 고백한다. 조선공학은 학과의 특성상 수준 높은 수학과 물리학, 역학 등의 수업이 많다. 하지만 치밀하고 논리적이기보다는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은 최 사장에게 이런 과정은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대학시절을 “원 없이 놀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랬을까. 최 사장을 이력을 살펴보면 그의 이런 말이 겸손한 인사라는 점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주제지를 거쳐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설계와 자재관리, 노무 등 배를 만드는 핵심부서를 두루 거쳤다. 이후 한라중공업 부사장과 사장을 역임했으며 마침내 2001년 현대중공업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이 그와 함께 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탄대로를 거쳐왔다. CEO 되기에 가장 유리한 학과 조선공학이라는 전공이 최 사장의 이력에 어떤 이점을 줬던 것일까. 조선공학이라는 전공이 현재의 자리까지 오는데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조업체, 특히 조선분야에서는 공학적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한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생산하고 공정을 개선하는데 공학적 마인드가 도움이 됐다는 말이다. 특히 조선분야에서는 배를 주문하는 선주를 만나 자사 기술의 우수성을 직접 설명해야할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조선공학 전공은 매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조선공학이야말로 공대 출신으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기 가장 유리한 학과”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현재도 그는 세계에 2백여명 밖에 없는 선주들과 이름을 부를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그들의 ‘상류층문화’에 적잖이 당황하며 어색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기술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가 차츰 선주들 사이에 먹혀들기 시작했고, 그들도 곧 최 사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물론 직원 2만7천여명의 세계 1위 조선업체를 이끌어가려면 마케팅이나 재무관리, 인사관리 등의 경영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최 사장은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라며 “경영학도가 조선공학의 전문적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는 공대 출신이 경영학을 익혀나가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로서 현대중공업의 CEO가 된 나름대로의 비결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최 사장은 “항상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라는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다. 최 사장은 그의 소신대로 지금껏 항상 최고의 자리를 거쳐왔다. 마음 속에 항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설령 지금의 위치나 능력이 최고라 아니더라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어려운 상황이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난 최고야’라는 자부심은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헤쳐갈 수 있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워준다고 말한다. CEO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회사를 닮아가는걸까. 최 사장의 이런 생각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발전해온 길과 닮아 있다. 1973년 12월에 설립된 현대중공업은 그 당시 세계 조선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을 20여년 만에 따라 잡았다. 이 일화는 조선업계에서는 하나의 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경상남도 울산에 배 만드는 회사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누가 들어도 ‘넌센스’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술력 하나 믿고 시작한 이 사업은 어느새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건조능력뿐 아니라 실적과 경험, 수주량 등 모든 부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의 세계 1위다. 건조량을 기준으로 하면 1983년 이후로 세계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단일 회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강을 소비하고 있다. 연간 사용하는 철강량이 1백30만t 가량으로 8t 트럭으로 실어 나를 경우 그 길이가 무려 1천6백24km. 경부고속도로 4차선 상·하행선을 빈틈없이 메울 수 있는 양이다. 하고 싶은 일 하는게 성공의 지름길
그렇다면 배만 만드는걸까. 그렇지 않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만들고, 한척당 8억달러에 이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원유생산저장설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최 사장은 “조선해양공학은 배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해양설비와 고성능의 엔진 개발, 심해저 연구 개발 등 바다에 관련되는 모든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현대중공업에는 이를 위해 3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공계 분야, 특히 조선해양공학 분야를 전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적성이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최 사장은 “우선은 물리학과 수학에 적성이 있어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학문적 적성과 소질보다는 도전정신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선분야는 대부분 주문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선주의 요구와 주문 목적에 맞게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배를 만든다. 똑같은 배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상황과 난관에 부딪힌다. 이때 도전정신과 ‘오기’가 없으면 맡은바 일을 해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최 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인생을 너무 짧고 얇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공대를 나오면 당장은 의대나 법대 출신에 비해 출세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다. 길게 보면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지름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은 쫓으면 쫓을수록 도망가기 때문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