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光子)로 기술문명 새 장 연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남규 교수 |
| 글 | 이정호 기자ㆍsunris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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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사랑~ 빛은 행복~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 만들어 가요~”
귀에 익은 한 전력회사 CF의 배경음악이 인터뷰 도중 귓전을 때린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서둘러 받은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남규 교수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통화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한다.
자세를 고쳐 잡는 박 교수의 얼굴에서 미안한 기색이 묻어난다. 그러고선 한마디 한다. “제가 하는 광자(光子) 연구의 목표를 제대로 보여주는 노래 같아서 다운로드 받았는데….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소소한 일상에서조차 빛에 관한 애정을 드러내는 광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박 교수를 4월 초 서울대에서 만났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에 논문 게재
박 교수는 최근 주목 받는 연구 성과 하나를 올렸다. 빛의 세기를 1억 배 키우는 혁신적인 실험 결과를 담은 논문의 공동 저자로 광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 2월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연구의 실험결과와 물리학적인 근거를 수퍼 컴퓨터를 활용해 해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대식 교수 등과 함께 발표한 이 논문은 파장이 수 mm인 테라헤르츠파 영역의 빛을 폭이 수십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인 금속 나노 구멍에 통과시켜 빛의 세기를 1억 배 이상 증폭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장이 3mm인 테라헤르츠파를 폭이 50nm에 불과한 금속 나노 구멍에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진은 금속 표면에 만든 나노 구멍이 마치 깔때기에서 물이 통과하는 것처럼 빛을 작은 점에 집속시켜 통과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빛이 나노 구멍을 통과하면 금속 표면에서 전자들이 집단으로 진동하면서 구멍 주변에 전하가 모이는데, 이 전하가 형성한 전기장이 깔때기 효과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물은 깔때기의 좁은 공간을 통과할 때 속도가 빨라진다. 마당에 심은 화초에 물을 줄 때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의 출구를 꽉 누르면 물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원리다. 하지만 빛은 속도가 빨라질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가 높아진다. 이 연구는 초고감도 센서나 태양전지 효율을 향상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선견지명으로 ‘나노광학 디지털 소자’ 연구
사실 박 교수는 나노기술을 응용한 광자 연구에 뛰어든 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연구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건 그의 선견지명 때문이다.
박 교수는 본래 광통신 시스템을 연구했다. 특히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광증폭기 연구에 매진했다. 수백km 이어진 광섬유를 지나며 약해진 광신호가 잡음 없이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도록 신호와 동일한 성질을 갖는 많은 광자를 만들어내는 게 핵심 과제였다. 연구실 출신 연구원들이 설립한 벤처기업은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서 수천 대의 광증폭기를 판매했다. 그 뒤 2004년까지는 광자에 데이터를 실어서 많은 양의 정보를 멀리까지 잘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광 전송 분야에 집중했다. 광자 생성, 전송과 관련한 연구 이후 박 교수의 최근 관심은 광자로 연산 시스템을 만들려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연구의 수준이 점점 고도화된 것이다.
“현재는 나노 광자소자를 이용한 광학 컴퓨팅의 구현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노 단위의 연구가 시작된 게 이전 연구와는 가장 달라진 점이죠.”
‘나노광학 디지털 소자연구’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박 교수의 현재 연구는 일반인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 전자는 빛의 100분의 1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의 연구를 통해 전자 대신 빛을 쓰면 이론적으로 현재보다 컴퓨터 처리속도를 100배 높일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실용화되면 현대 문명에 극적인 변화가 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현재 전자업계에서는 반도체의 집적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열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쓰이는 소자는 움직일 때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전자를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소자의 집적도가 계속 높아지면 언젠가는 반도체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열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 등 많은 기업과 연구기관에서 전자와 광자의 장점을 조합한 기술을 내놓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2005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나노 광학소자에 대한 연구가 응용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세밀한 검토와 과감한 결정으로 이 분야 연구에 신속히 뛰어든 게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전문가들은 2015년 경이면 광자를 이용한 소자가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 문명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박 교수를 포함한 연구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연구 찾으면 성공하기 마련
박 교수가 이 분야의 연구자로 살아가게 된 것은 응용 과학에 대한 강한 애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벨 연구소, 삼성전자처럼 비교적 보통 사람의 삶에 바짝 다가선 연구를 하는 조직에 몸을 담았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소자개발에 매진하는 현재의 연구도 비슷한 흐름에 있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박 교수를 만든 건 현실에 충실하는 자세다.
“하루에 3시간 집중해서 연구하면 평균적인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5시간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죠.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 보통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건 성공 확률을 따지기 때문인데, 어떠한 분야에서건 열심히만 하면 성공을 못할 수가 없다는 거죠.”
박 교수의 제자 가운데에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광자를 이용해 면역시스템과 암 연구를 하는 연구원도 있다. 이 연구원은 생물학 분야에는 별 다른 배경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연구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 발탁됐다. ‘최고’는 분야를 막론하고 앞날이 열린다는 얘기다.
이는 박 교수 자신의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석사 과정을 밟은 미국 브라운대에 당초 초전도체를 연구하려고 진학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광자 연구였다.
박 교수가 느끼는 ‘재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자신의 연구 분야에 흡수시킨 나노기술 자체가 그에겐 말로 다 할 수 없는 흥미로 다가온다.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는 느낌이 정말 좋아요.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기보다는 훨씬 생산적이죠. 노력하는 자신을 믿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고수의 비법전수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마라. 오늘을 값지게 살다보면 의미 있는 미래는 의외로 쉽게 열린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1인자가 되려는 노력을 이어가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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