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 만드는데 젊음을 바친 (주)케이엠에스 장문석 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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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강석기 기자ㆍsukki@donga.com |
어떻게 하면 오염된 지구를 되살릴 수 있을까. 대학시절부터 꿈꾸었던 소망을 20년 집념으로 현실에서 구현한 장문석 사장. 그의 클린한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자. 중공사막. 중국 어디에 있는 사막 이름이 아니다. ‘가운데(中)가 비어있는(空) 실(絲) 형태의 막(膜)’이란 뜻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름의 막을 연구하는 사람이 바로 (주)케이엠에스 장문석 사장이다. 장 사장이 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장 사장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화학공학과를 택했다. 막상 전공에 들어가자 생각과는 달리 화학보다는 수학을 많이 공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로세스, 즉 공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수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밖의 발견으로 장 사장은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장 사장은 회의에 빠진다. “문득 생각해보니 화공과에서 하는 일이 전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처럼 보였습니다. 계속 공부를 해야할지 고민되더군요.” 대학 3학년 때 환경에 눈떠
“막을 이용하면 폐수를 처리하는데 유독한 약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화학공학을 공부해서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이날 이후로 지금까지 장 사장은 막에 대한 관심을 놓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막 연구가 미미했기 때문에 주로 외국의 논문을 보며 지식을 쌓아나갔다. 1985년 석사과정에 진학해서도 지도교수에게 막 연구를 하고 싶다며 험난한 길을 자초했다. 국내에 얼마 되지 않는 막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힘들게 박사과정까지 마친 장 사장은 1992년 미국으로 박사후 과정을 떠나 2년간 선진국의 최신 막 연구결과를 흡수했다. “1994년 진로그룹종합연구원에 와서 ‘수(水)처리 연구팀’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하수처리장 민영화 등 ‘물사업’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거든요.” 소주회사에 들어간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에게 장 사장은 “술 원료의 70-80%가 물”이라며 “주류회사는 물에 대한 기본적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물의 처리와 관련된 분야로 쉽게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여명의 팀원과 함께 열심히 연구한 장 사장은 연구소를 민간 기관 최초의 ‘먹는 물 검사기관’으로 등록시키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연구소가 문을 닫았다. 1997년 IMF 위기를 부른 계기 중 하나인 진로그룹의 부도 때문이다. 팀도 해체되고 실의에 빠진 장사장은 1년 간의 모색 끝에 ‘한국분리막’이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물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일수도 있겠지요. 만일 회사에 문제가 없어 지금까지 연구소에 있었다면 이런 열정적인 삶은 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업을 시작하며 장 사장이 주목한 것은 중공사막이다. 기존의 필터식 막은 처리할 수 있는 표면적이 작아 에너지도 많이 들고 자주 바꿔줘야 한다. 반면 중공사막은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적은 에너지로도 다량의 물을 분리할 수 있다. 중공사막을 확대해보면 옆에 길쭉한 구멍이 숭숭 뚫린 파이프처럼 생겼다. 이 구멍은 크기가 작아 물은 통과해 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미생물이나 불순물은 통과하지 못한다. 즉 중공사막을 폐수조에 담근 뒤 흡입하면 물만 흡수되므로 결국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 원리는 이처럼 간단하지만 제품화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상용화가 되려면 성능은 물론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2001년 첫 제품이 나왔지만 막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아 개선 연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해에야 선진국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중공사막을 만들 수 있었죠.” 기자 앞에서 중고사막을 보여주는 장 사장의 얼굴 표정에 자부심이 역력하다. 맨눈으로 보면 중공사막 모듈은 그저 백발의 굵은 머리카락 다발처럼 느껴질 뿐이다. 장 사장은 사무실 한켠의 폐수처리 장치로 기자를 안내한 뒤 전원을 켰다. 순간 윙 소리가 나면서 기포가 올라오고 물이 순환된다. “미생물이 폐수를 분해하면 찌꺼기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물을 순환시켜야 중공사막 틈에 찌꺼기가 끼지 않지요.” 기자의 눈에는 단순해 보이는 장치였지만 최적의 효율을 내기 위한 개발자들의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다. “보시다시피 수조에 미생물만 넣어주면 반영구적으로 폐수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일년에 한두차례 찌꺼기를 없애주기만 하면 되죠. 물을 흡수할 때만 모터를 돌려주면 되니까 에너지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지구촌에 깨끗한 물 공급하는 게 목표
“앞으로는 좀더 규모가 큰 시스템을 개발해 산업현장에도 공급하려하고 있습니다. 수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고요.” 지구촌에는 아직도 20억의 인구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장 사장은 토로한다. 이들에게 장 사장이 개발한 시스템을 공급하면 돈이 많이 드는 상수시설이 없어도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다고. “장치도 간단하고 운전도 쉽기 때문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트럭에 이 시스템을 싣고 다니며 강물을 정수해 쓴다면 수인성 전염병도 획기적으로 줄 것입니다.” 자신이 개발한 장치가 인류의 건강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장 사장은 벌써부터 흐뭇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20년이 넘도록 클린 테크놀로지, 즉 청정기술에 매달리게 했을까. “이 일의 밑바닥에는 철학적 신념이 깔려있습니다.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원은 닫혀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합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먹이사슬의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데, 사람의 활동으로 배출된 부산물이 원을 벗어나 계속 쌓이게 되면 결국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장 사장은 건강한 생태계를 되찾으려면 지금까지의 중앙집중방식에서 분산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중앙에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두는 하드 테크놀로지에서 각 거점마다 소규모의 단순한 시스템을 구축해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소프트 테크놀로지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사장은 머지 않은 미래에 각 가정마다 소규모의 생활하수 처리 시스템을 두고 스스로 물을 정화할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비인간화된 사회가 된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로 간주되는 나이인 40대 중반의 장 사장이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느 젊은이 못지 않은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생각들이 뿜어져 나온다. 20여년 전 클린 테크놀로지를 알게 된 젊은이의 눈빛을 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