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에서 찾는 경영의 지혜 - 박용태 서울대 산업공학과 기술경영연구실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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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에서 찾는 경영의 지혜 공학계열 학과 중에서 산업공학과의 선호도는 꽤 높은 편이다. 산업공학은 특정기술에 집중하기보다 산업과 기술, 그리고 사회 전반까지 여러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넓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는 성격은 요즘의 트렌드에도 잘 맞는다. 하지만 공학인지, 사회학인지, 경제학인지 불분명한 산업공학의 경계는 오히려 학문의 정체성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계속해서 세분화되고 전문인을 요구하는 공학계에서 광범위한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산업공학의 현 주소와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대 산업공학과 기술경영연구실의 박용태 교수를 만났다. 그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들 중에서는 유일한 경영학 박사이다. 학부 때 산업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무역회사에 취업해 일하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서 경영학 학위를 땄고, 이후에는 10년 가까이 정부기관에서 기술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다. 다양한 산업분야 전반에서 전천후로 활동한 그는 산업공학의 분야의 ‘달인’인 셈이다. IMF의 시련을 재기의 발판으로 먼저 박 교수에게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물었다. ‘기술경영연구실’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현재의 산업공학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워낙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무엇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네요. 기술경영이라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우리는 공학과 경영학을 접목했을 때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산업을 분석하고 가능성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더 어려운가요?”(웃음) 박 교수의 연구실에서 초창기에 진행했던 연구는 생산시스템과 각종 연구개발(R&D)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방법에 관한 일이었다. 이는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해 생산량은 늘리고 비용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일인데, 전통적으로 산업공학에서 많이 해오던 일이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정량분석해 과학적 체계 안에서 관리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관리의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력을 구성하고 투자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런 경향은 IMF를 맞으면서 더 심해졌다. 기업들이 관리와 기획파트의 인력을 대폭 축소해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그 때가 산업공학의 위기였어요. 산업공학 전공자들이 갈 데가 없어졌으니까요. 학생들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시스템 관리는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를 계기로 박 교수는 “연구의 주체를 기업에서 학생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수주하는 일을 수동적으로 연구하기보다 학생 스스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를 찾아 실험과 이론을 적용하도록 했다. 연구의 성격도 바뀌었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동향을 분석하고 미래기술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예측기술 엔지니어링의 시작 대표적인 것이 기술예측 연구다. 이는 막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해 현재의 기술 추이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가능할 지 예측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몇몇 리더들의 정성적인 브레인스토밍만으로 이뤄지던 ‘예측’이라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정량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이다. 자료 분석에는 컴퓨터공학에서 개발된 다양한 마이닝 기법들을 사용한다. 자동으로 텍스트 자료의 키워드를 찾고, 출현 빈도에 따라 중요도를 매기는 다양한 알고리즘들은 막대한 양의 자료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게 돕는다. “분석한 자료는 일종의 로드맵으로 구현합니다. 현재의 제품개발은 어디에 집중돼 있고,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은 무엇인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로드맵을 구성하면 앞으로 5년 뒤 또는 10년 뒤 어떤 타겟을 선정할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측 기술을 적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제품과 기술처럼 공학과 관련된 분야뿐 아니라 특허, 비즈니스, 서비스, 금융 등 산업과 사회에 관련한 모든 분야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오늘날의 제품은 서비스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를 IPS(integrated product service)라고 하죠. 어떤 서비스를 위해서 제품을 개발하는지, 서비스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할지를 고민해야할 때죠.” 창의력이 경쟁력이다 박 교수의 연구지도 스타일은 연구원 스스로가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편이다. 연구원들에게 직접 몇 가지 주제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선택은 연구원의 몫이다. 프로젝트 미팅과는 별도로 매주 한 번씩 주제 세미나도 연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연구 주제를 선정하면 6개월 동안은 자료 조사에 몰두한다. 박 교수는 이때 ‘깊이 보다는 넓이’를 강조한다. 기술경영연구실은 하드웨어를 새로 개발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나와 있는 기술을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덕분에 기술경영연구실의 이름으로 방법론과 관련해 등록한 특허가 3개, 소프트웨어가 20여 개가 있다. “우리 연구가 아직 어떤 성과를 얻었다고 자랑할 수준은 아니에요.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저것 시도하는 단계죠.”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박 교수는 지난 4월, 세계적인 학술지 발행기관인 ‘엘스비어(Elsevier)’와 기술경영 분야 권위기관인 ‘국제기술경영협회(IAMOT)’로부터 ‘기술혁신경영 분야의 세계 50대 연구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최근 5년간의 논문 게재 수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한 것으로 우리나라 연구자로는 처음으로 선정됐다. 또한 기술경영경영연구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산업공학에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 교수와 그의 연구실은 창의적이고 재밌는 연구주제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00년은 창의성을 시도하는 과정의 역사라고 봅니다. 20세기 전반부의 창의성은 과학자들이 이뤄낸, 우연성에 의한 것이었죠. 그 다음은 과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의 기술적인 마인드에서 나왔어요. 1990년대에는 시장의 주체인 소비자가 산업을 이끌었는데 이들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현재 수준을 돌파할 아이디어는 나올 수 없어요. 다음은 어디일까요?(웃음) 우리는 다음 산업을 이끌어갈 주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