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전자코로 향을 음미하다 - 박태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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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전자코로 향을 음미하다 “인간의 후각수용체를 직접 사용하는 바이오 전자코는 인간이 맡는 것과 똑같은, 다양한 종류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의 코와 달리 쉽게 피로해지지 않고, 유독가스와 같은 위험 물질도 감지할 수 있으니 더 진화된 형태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후각만큼 변덕스러운 감각도 또 없다. 같은 냄새라도 어떤 사람은 좋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불쾌함에 얼굴이 찌푸려지고 만다. 좋은 냄새라도 여러 냄새가 섞이면 처음과 달리 역하다고 느껴진다. 처음에는 머리가 띵~하도록 냄새가 짙은 것 같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말 그대로 후각의 감각은 개인에 따라,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이 변화무쌍하고 다루기 힘든 후각을 기계로 재현하겠다며 나선 국내 연구진이 있다. 그 주인공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의 박태현 교수와 세포 및 미생물공학 연구실의 팀원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후각을 칩 위에 재현하는, 일명 ‘바이오 전자코’를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있는 세포가 전자소재와 어울려 바이오 전자코로 탄생할 수 있을까. 미래에 바이오 전자코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21세기 생명과학의 정점에서 조물주의 영역에 도전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대를 찾았다. 변화무쌍하고 다루기 힘든 후각 “바이오 전자코로 할 수 있는 일이요? 음식을 먹지 않고도 냄새로 신선도를 검사할 수 있지요. 마약 탐지견 대신에 마약을 탐지할 수도 있고요. 얼마 전에는 방광암 환자의 소변 냄새가 건강한 사람의 소변 냄새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그럼 바이오 전자코로 병원에서 환자를 진찰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로부터 바이오 전자코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듣고 나니 생각보다 이용 범위가 넓어서 기자는 살짝 놀랐다. 후각으로 맛도 보고 병도 진료한다고? “후각은 미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사실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90%는 후각에서 온 거에요. 혀가 느끼는 맛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을 때 음식에서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생각해본다면 누구나 아~하고 끄덕일 거에요.” 하지만 박교수는 “냄새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다루기 힘든 특성 탓에 후각의 인지 과정에 대한 연구는 다른 감각에 비해 매우 늦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후각 연구라면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리처드 액설 박사와 린다 벅 박사의 연구 정도. 이들의 연구로 인해 비로소 후각을 분자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그러고 보니 형용사 중에는 냄새에 관한 표현이 드물다. 장미꽃 냄새, 된장국 냄새, 아기 냄새… 대부분 명사를 빌려서 표현한다. 과거에 그런 냄새를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표현을 이해할 수 없는 게 후각이다. 특정 냄새에만 반응하는 후각수용체 엑설과 벅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유전체에는 1000여개의 후각 유전자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 실제로 냄새 수용체로 발현하는 것은 370~380개 정도란다. 냄새를 맡는 후각 상피세포는 코 속에서도 윗부분에 있다. 후각 상피세포가 있는 비강 윗부분과 후각을 인지하는 뇌의 변연계 사이의 거리는 약 2cm밖에 되지 않아 어느 자극보다 빠르게 뇌에 전달된다. 사람이 냄새를 인지하는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냄새를 구성하는 각각의 화학물질은 후각 상피세포 끝에 있는 섬모에 있는 후각 수용체에 와서 달라붙는다. 이때 각각의 후각 수용체는 특정한 냄새분자들과 1대 1로 겹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돼 있다. 냄새 분자와 후각 수용체가 만나면서 발생한 전기신호는 후각 신경의 중간집합소 격인 후구의 사구체에 모인다. 박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때에도 ‘빨간 신경은 빨간 정류장에만 모이듯’ 저마다 맡고 있는 냄새 분자에 따라 이동경로를 달리한다. 전기신호가 뇌로 전달되면, 뇌에서는 각각의 신호를 조합해 ‘어떤’ 냄새인지를 인지한다. “후각 수용체가 특정 냄새 화학분자에만 반응한다는 점, 수용체가 받은 자극은 전기 신호로 바뀌어 이동한다는 점에서 후각의 인지과정에 전기공학적 기술을 이용하면 사람이 맡는 것과 같은 센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살아있는 유기물질을 그대로 센서로 만들 수는 없었다. 대신 박 교수팀은 이들 냄새 맡는 유전자 하나하나를 박테리아에 집어넣어 발현시키기로 했다. 다만 문제는 유전자가 옮겨진 세포의 막 표면에 섬모 끝에 달렸던 것처럼 후각수용체 단백질이 위치하게 끌고 오는 일이었다. 박 교수의 연구팀은 망막 표면에 있는 광(光) 감각 수용체인 로돕신을 이용했다. 후각수용체에는 신호서열이 존재하지 않아 다른 세포로 옮겨 발현할 때 세포막에서 발현이 불가능하지만 로돕신에는 신호서열이 있어 세포막 표면에 단백질 수용체를 만들 수 있었다. 평소 다른 분야의 논문을 꾸준히 읽어둔 덕분에 얻은 빛나는 아이디어였다. 생명공학과 나노전자의 랑데뷰 이렇게 발현한 후각수용체는 1차 후각신호 감지부로 이용한다. 박 교수는 “다양한 나노소자를 2차 신호전달기로 이용해 1차 신호전달기의 신호를 증폭하면 매우 낮은 농도의 냄새물질도 선택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신호전달기에 사용한 다양한 나노소자들의 원리도 재밌다. 수정 결정(quartz crystal)으로 만든 얇은 박막은 고유의 공명주파수를 가지고 진동하는데, 이 결정 위에 후각수용체를 놓으면 냄새 분자가 와서 달라붙어 질량이 변하면서 공명주파수 또한 바뀐다. 실제로 박 교수가 이 과정을 실험한 결과 냄새 분자가 많이 와서 달라붙을수록 수정 결정박막의 진동수는 감소했다. 이는 수정 결정박막이 냄새의 농도를 구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지름이 1nm정도로 속이 비어있는 튜브 형태의 분자이다. 여기에 냄새 분자가 와서 튜브를 막으면 전기의 흐름이 느려지거나 막힌다. 박 교수팀의 이런 연구는 지난 3월 17일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단체인 영국 왕립화학회의 하이라이트판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저널에 소개됐다. “기존의 전자코는 냄새물질과 고분자 소자간의 흡탈착 특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한된 종류와 농도에서만 냄새분자를 측정했지만, 인간의 후각수용체를 직접 사용하는 바이오 전자코는 다양한 종류와 낮은 농도의 냄새도 검출할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바이오 전자코가 앞으로 실용화되면 유독가스처럼 사람이 맡을 수 없거나 인체에 해를 끼치는 냄새에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코는 쉽게 피로해져 연속적으로 냄새를 감별하기 어렵지만 바이오 전자코는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서 거기에 들어맞는 꼭 필요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박 교수야 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공학인의 모습이었다. 고수의 비법전수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는 과정에는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끼고, 무서리가 내리기 마련이다. 힘든 시련을 겪지 않고 얻어지는 열매는 없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