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인으로 성공한 공학도 - 상지상사 표상기 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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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홍재 기자ㆍecos@donga.com |
상지상사 표상기 회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한 전문 무역인이다. 무작정 상경해 맨손으로 성공을 일군 그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의 인생을 따라가보면 이공계 출신의 진로가 한정돼 있다는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무역은 공대출신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일중 하나에요.” 원자핵공학과 졸업 후 무역에 뛰어든 이력을 특이하게 생각하는 기자에게, 상지상사 표상기 회장이 들려준 말이다. 표 회장은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공대 출신이면 무역하면서 덕볼 수 있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상지상사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알짜 중소기업이다. 표상기 회장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무역대리점협회장을 지내면서 중소무역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역할을 했다. 또 고아원 후원 등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이름이 알려진 기업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요즘 공대 출신들은 너무 한길밖에 보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들려주었다. 요즘 이공계생과 비슷한 고민해
표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가 남들보다 2년 늦게 합덕국민학교(현 합덕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공부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의 인생은 합덕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서울대를 졸업하고 부임해 영어를 가르치던 문인원 선생님과의 만남이 계기였다. 문인원 선생님은 어린 표 회장을 아끼면서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재능을 썩히기는 아까우니 고등학교는 무조건 서울로 가야한다고 조언해 줬다. 또 원자폭탄 위력에서 알 수 있듯 앞으로는 원자력의 시대가 열릴 것이니 원자력과가 생기면 꼭 그리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표 회장은 영어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향한다. 시골에서 자란 까까머리 소년으로서는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명문 서울고에 입학한 표 회장은 입주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사리 학업을 계속한다. 표 회장은 “큰 형, 작은 형도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상황이어서 어깨가 무거웠다”며 “평생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악착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표 회장은 1961년 드디어 서울대 공대 원자력과에 진학한다. 당시 공대는 의대, 법대, 상대보다도 더 대우받던 시절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표 회장은 “당시 서울대 원자력과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 선후배들이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표 회장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지금과 달리 원자핵공학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원자핵공학은 실험설비가 전혀 없어서 응용학문이라기 보다 수학과 물리로 된 복잡한 이론만 배우는 순수학문에 가까웠다. 표 회장은 자신의 대학생활은 요즘 이공계생들과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한때 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3학년이 되자 마음을 고쳐잡고 원자핵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한 1967년 표 회장은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당시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논의되던 시절로, 화신산업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원자력 1호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표 회장은 이때 처음 무역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업에 대한 꿈을 갖게되자 표 회장은 실무를 배우기 위해 화신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신산업에서 12년 동안 일한 표 회장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38살이 되던 1978년이다. 웨스팅하우스사에서 들여온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가동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알고 있던 표 회장은 회사를 뛰쳐나와 상지상사를 차렸다. 주 업종은 원자력발전소에 들아가는 원료인 우라늄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한국전력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계속되면서 상지상사는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기계설비 도입도 맡게 된다. 현재 상지상사는 규모는 작지만 IMF도 비켜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탄탄한 무역회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10-20년 뒤 평가받는다
표 회장은 요즘 공대를 졸업한 청년들이 제품을 연구하거나 공장을 돌리는 일만 생각한다면서 실제 공대 출신이 해야할 일은 훨씬 다양하다고 말한다. 원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일만큼, 제품을 상품화하거나 판매하는 일도 훨씬 잘할 수 있다고 한다. 표 회장은 “경제의 근간은 과학과 기술이기 때문에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공대인이 활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제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최상의 인재가 되는 비법을 알려준다.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란다. 표 회장은 자신의 아들에게도 이렇게 조언을 했다는데, 아버지의 조언대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현재는 벤처기업에서 실무를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심화되는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인지 표 회장의 아들도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의대에 갔으면 훨씬 낳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그때 표 회장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의사는 아주 훌륭한 직업이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일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국가경제를 위해 전세계를 뛰어다닌다고 생각해봐라.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짧지는 않다. 10-20년 뒤에 평가를 받는다.” 우물에 갇혀 있지 말고 큰 세상에 나가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는 얘기였다. 표 회장은 원자핵공학과에 관심있는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원자핵공학 하면 무조건 핵폭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졸업한 후 선택할 수 있는 응용분야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 등 연구계통뿐 아니라 방사선을 치료에 이용하는 의료계통으로 진출도 가능하다. 넓은 산업계에 나오면 활약할 분야는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표 회장은 이공계를 선택할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대학은 자기일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밑거름을 배우는 곳입니다. 이공계에서 공부하면 가장 좋은 밑거름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가끔은 뒤돌아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