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공학자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 한국과학기술원 윤정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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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상엽 기자ㆍnarciso@donga.com |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지진 위험에서 안전할까.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대지진의 참상을 접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봤을 문제. 이달에는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윤정방(59) 교수를 만났다. 지진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고 싶다면 그가 안내하는 지진공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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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역삼동의 한국과학기술회관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한국지진공학회 사무실에서 윤정방 교수를 만났다. 부드러운 인상에 편안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긴 그는 먼저 쉬운 비유로 지진공학이란 학문을 소개했다.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을 짓는 건 일종의 보험에 드는 것과 같죠.”
지진이 날 때 예상되는 피해를 고려해서 구조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구조물 수명을 100년이라고 가정하고, ‘건설비용이 얼마나 드느냐’와 ‘몇 년 만에 한번쯤 오는 지진이냐’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윤 교수는 적은 비용으로 지진에 안전한 구조물을 지으려면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냈다.
“내진설계에서는 먼저 구조물을 지을 곳의 지진 위험도를 평가해야 합니다. 먼저 역사책을 들여다봅시다.”
내진설계란 구조물을 지을 때 그 지점에서 예상되는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 지도를 펼치며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도에는 삼국사기부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기록된 지진의 분포 지역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지진에 대한 기록을 역사서에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엔 계측기기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체험한 지진만 기록돼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따라서 어느 곳의 정확한 지진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기록된 지진뿐만 아니라 단층, 지진 계측기록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서울대 토목공학과에 들어갔다. 농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농대를 지망하려다 고민 끝에 공대 토목공학과를 택했다. 농촌과 가까운 댐이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도 동기로 작용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토목공학이 필요하다’는 그 당시의 분위기도 토목공학과로 진학한 이유였다.
그는 지금도 “국가 공공시설물을 설계·건설하는 토목공학자라면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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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항공관제탐에는 지진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혼성질량감쇠기가 설치돼 있다. |
학부를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윤 교수는 1972년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대학원 수준의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1978년 동대학원에서 토목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지진공학을 전공한 것은 1977년 미국 뉴욕의 폴리텍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부터.
그는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내진설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원자력발전소는 30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확률의 커다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 지역에 막대한 재앙을 초래한다. 따라서 강한 지진이 일어나면 전력 생산은 중단되더라도 냉각수가 유출되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1979년부터는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Amoco)의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큰 파랑과 바람에 견딜 수 있는 석유생산용 해양구조물이나 교량을 설계하는 업무를 맡았다.
“파랑과 진동에 안전한 구조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진공학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고 윤 교수는 회고했다. 1982년 귀국한 그는 지금까지 한국과학기술원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진을 알아야 공학이 발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진설계라면 지진에 끄떡없는 구조물을 짓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단단히 설계 할 것이냐’와 ‘경제적으로 설계할 것이냐’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5년 일본 고베대지진처럼 대형 참사를 빚어낼 정도의 큰 지진은 한반도에서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지진공학에서는 50~100년 주기로 발생하는 작은 지진의 경우엔 구조물에 피해가 없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500~1000년 주기로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큰 지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손상을 입는 선까지는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붕괴만은 막아야 하죠.”
그는 “지진이 날 때 가장 위험한 건물은 5층에서 10층짜리 건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구조물은 각각의 고유진동주기가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도 고유진동주기가 0.5초보다 짧거나 1초를 넘으면 큰 피해는 입지 않습니다. 0.5~1초에 해당하는 구조물이 가장 위험하죠. 5~10층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지진 크기의 척도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흔히 리히터(Richter) 스케일이라는 것은 지진 자체의 규모로 이때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을 말하는 것이고, ‘진도’라는 것은 지진 자체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감지된 땅이 흔들리는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흔히 언론에서 나오는 ‘리히터 스케일로 진도 6짜리 지진’이라는 설명은 잘못된 것이죠.”
윤 교수는 외국의 내진설계 기술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국내 현실에 맞춰 구조물을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본이나 미국은 주로 강진에 대비해 구조물을 설계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약진 지역으로 지진 위험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강진에 맞춘 외국의 내진설계 기술을 그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학자는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일까. 윤 교수는 지진공학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것 같은데도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 이야기가 나오자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을 계속하는 그는 타고난 학자풍의 엔지니어였다.
그는 2002년부터 스마트 사회기반시설 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2개 대학과 연구기관이 모여 스마트 센서를 활용해 대형 구조물의 안전도를 분석하고 스마트 제어기술을 이용해 구조물의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 센서란 일반 센서에 컴퓨터 프로세서를 결합한 센서다. 이를 교량, 대형 빌딩 등에 설치하면 주요 부위를 항상 관측·분석해 안전도를 높일 수 있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진공학 연구는 국제화가 필수적”이라는 그는 스마트 구조기술연구센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네트워크(ANCRiSST) 회장을 겸하고 있다. 2002년 결성된 이 컨소시엄에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의 13개 연구센터가 참여해 국제 워크숍이나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연구인력·학생 교환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윤 교수는 지진공학의 앞날에 대해 ‘건설공학에서 우수한 인재는 여기 다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경쟁력 있고 전망이 밝은 분야라며 환하게 웃었다. 건설공학 분야 안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이는 것도 지진공학자들이 갖는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그에게서 교육자의 풍모가 드러났다. “어려서는 고교 수학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지진공학회 활동을 통해 여러 교수, 학생들과 함께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한다.
윤정방 교수는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구조동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의 선임연구원을 거쳐 198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과학기술원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전산구조공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지진공학회 회장, 스마트 사회기반시설 연구센터 소장을 함께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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