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D와 함께한 내인생 - 이건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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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경택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1학년ㆍlaimo@hanmail.net |
급변하는 자동차 모델이나 엔진, 수십만 종의 부품이 복잡하게 얽힌 항공기를 설계하기 위해 컴퓨터가 도입됐다. CAD(Computer Aided Design)를 이용한 맞춤구두, 맞춤가발은 물론 인공척추디스크 개발의 권위자인 이건우 서울대 교수를 만나봤다.
2004년 말 이건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아시아 최초로 자동설계 분야에서 권위있는 학술지인 ‘CAD저널’의 편집장을 맡았다. 이 교수는 학술지에 실릴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는 한편,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논문을 평가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셈이다. 1999년에 그가 쓴 책인 영어판‘Principles of CAD/CAM/CAE systems’는 미국, 캐나다, 호주의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올해 중국어판이 출간됐다. 한국인이 쓴 책이 대학교재로 쓰이는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다. 신도리코 기술고문, K&I 기술고문을 함께 맡고 있어 늘 바쁜 이 교수지만 인터뷰 내내 여유로움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누군가가 사용한다고 상상해보세요. 만약 그 제품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사용된다면 흥분되는 일 아닌가요.” 이 교수는 평발이라서 늘 치수보다 큰 구두를 신어야 했다. 언젠가 발에 꼭 맞으면서도 편한 구두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상상을 현실로
숱한 난관을 극복한 끝에 만든 맞춤구두 제작시스템은 여기저기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탈리아 ‘국제 신발전시회’(SIMAC)의 출품 우수 아이템으로 선정됐으며 측정기술과 인터넷을 이용한 시스템을 포함해 3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를 인정받아 이 교수는 1999년 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신기술창업보육사업에 선정돼 K&I를 창업했다. 또한 그는 3D로 인체를 스캐닝하는 기술을 변형해 맞춤가발 제작시스템을 개발했다. 가발 전문업체 하이모의 대표 기술인‘3D 스캐너시스템’ 역시 그의 작품이다. 한편 그는 2002년 미국 스탠퍼드대 바이오엔지니어링전공에서 인공척추디스크를 만들었다. 이를 상업화하기 위해 ‘스파이널 키네틱스’라는 벤처회사를 동료들과 설립하고 귀국했다. 독일에서 100명 정도의 환자가 임상 실험 중이다. 미국 FDA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전 세계 요통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답게 살자
이 교수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만드는 재주도 뛰어났고 공부도 잘했다. 서울대에 거뜬히 합격해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다. 교수나 사업가로서의 삶도 성공적이다. 과연 그 비결은 뭘까.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는 스타일예요. 항상 다음에 할 일을 미리 정해놔야 직성이 풀리죠.”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만만하게 유학길에 올랐다. 외국 학생들의 뛰어난 실력에 놀란 일도 여러 차례. 지도교수를 정하기 위해 교수 10명을 찾아갔으나 모두 퇴짜를 맞기도 했다. 한국 학생인데다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반드시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며 학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 촉망받는 MIT CAD 연구실 박사 1호가 됐다.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세상을 넓게 보죠. 요즘 ‘이공계 기피’ 운운하며 막연히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분야든지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합니다.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믿음을 갖고 노력하세요.” 인간을 고려한 설계
평교수 시절인 1990년대 중반 높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서울대 신공학관 건물까지 오르내리는 일은 무척 고생스러웠다.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은 오죽 힘들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관공서와 버스회사를 끈질기게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2년만에 마을버스가 신공학관을 경유하게 됐다. “유학은 학문뿐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외국문화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면 돈 들여 외국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죠.”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써온 그이지만 막연히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요즘 인체의 역학반응을 고려한 CAD프로그램을 만드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앞으로는 제품을 사용하는 얼마나 사람한테 적합하냐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그가 이끄는 휴먼CAD연구실은 ‘인간 친화적 미래형 자동차를 위한 인체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주제로 산업자원부 지정 최우수 실험실에 뽑혔다. “자동차에 기계공학, IT, 환경기술, 인체공학, 나노기술이 적용되고 있어요. 여러 기술을 접목시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융합기술의 목표라고 할 수 있죠.” 요즘 그에겐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2008년 경기도 광교테크노밸리에 완공될 차세대융합기술원을 미국 MIT의 미디어랩, 일본 도쿄대의 ‘프런티어 사이언스 대학원’처럼 만드는 것이다. P r o f i l e 1978년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정보통신부 장관상, 2004년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을 받았다. 2004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자동설계 국제 학술지 ‘CAD 저널’의 편집장으로 뽑혔으며 같은 해 차세대융합기술원장으로 임명됐다. 1986년부터 서울대 공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