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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대박 신화의 주인공 -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분야 산업기술/건축
산업기술/기계
날짜 2011-03-31
벤처대박 신화의 주인공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 글 | 우지윤 서울공대 기계항공공학부 05학번ㆍz02dang@hotmail.com |

‘서울대 실험실 벤처 1호’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이끌고 있는 박희재 교수는 세인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잘 나가는 대학교수에서 벤처사업가로 성공한 박 교수를 서울공대 학생이 직접 만나 공학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난생 처음‘인터뷰 취재’를 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 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지금까지 공부가 가장 어려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터뷰 대상자에 관한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고 질문지를 작성하는 과정이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다행히 이번 취재대상이 같은 대학 전공 교수인 박희재 교수여서 친근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핸즈온 지식은 공학의 출발점

“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냅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들을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달되기 때문이죠” 사업을 하다보면 강의에 충실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각각 메카트로닉스와 정밀측정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두 과목 뿐이지만 그의 강의는 늘 학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다른 교수들에게 들을 수 없는 현장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학생들은 교재에만 충실한 강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졸업한 뒤 직접 부닥쳐야 하는 산업현장에서 어떤 학생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목말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공학기술은 국제 논문에 많이 실리고 세계적 상을 타는 것만으로는 가치를 발휘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것보다는 상품화한 기술을 통해 국가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교과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이 과목, 이 기술이 왜 필요하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전함으로써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전하는 데 치중한다. 현실에서 죽은 지식이라고 판단되는 내용은 과감히 건너뛰기도 한다. 또한 그는 학생들이 직접 그려보고, 써보고, 만져보게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른바 ‘핸즈온(Hands-On) 지식’이 공학의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지식을 찾아라

대학 2학년인 내게 ‘현장이 반영된 지식’이란 표현은 쉽게 와닿질 않았다. 이에 박 교수는 오히려 “무조건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라며 되물었다.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즉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결정한 뒤 실행하는 것이 순서인 거죠”라며 그의 공학관을 결정짓는 일화를 소개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유학하던 때의 일이다. 잘 나가던 같은 대학 기계공학과 교수가 갑작스레 사표를 냈다. 사연을 물어보니 교수가 기술을 제공한 회사들이 망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교수는 산업에 적용하지 못하는 공학기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그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도서관, 공장, 산업관련 전시회 등을 발로 찾아다녔다.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문을 직접 두드리기도 했으며, 핵심 엔지니어들의 노하우를 섭렵했다. 그는 현장감 있는 기술, 수요자가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교수가 돼 서울대에 돌아온 뒤에는 산학협동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에스엔유프리시젼(SNU Precision)을 창업하기 전까지 그는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와 중공업, 기계, 철강 등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100여 건에 이르는 산학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외환위기는 사실 엄청난 규모의 무역적자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부품 소재산업의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수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공대 교수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공학인은 경제를 움직이는 숨은 손

 
   
 
 
박 교수가 에스엔유프리시젼이란 회사를 세우게 된 이유다. 상아탑에 안주하던 대학교수에서 다소 무모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정밀측정 분야에서 찾아낸 블루오션은 TFT-LCD 나노 측정분야였다.

몇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는 LG필립스LCD와 손잡고 TFT-LCD 생산라인에 들어갈 초정밀 계측장비를 개발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4년을 기준으로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은 73%에 이른다. 2003년 70억원, 2004년 400억원, 지난해는 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그동안 익힌 산학협력 경험과 대학시절부터 키워온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연구원들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에스엔유프리시젼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의 연구원들은 현재 국내 최고수준의 연봉을 보장받고 있단다.

박 교수는 “공학은 탁상공론이 아닌 재화가 오고가는 학문”이라며 “개인, 가족,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꿈의 분야”라고 강조했다. 어느 분야도 공학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국내 대기업 CEO의 상당수가 이공계 출신임을 감안하면 공학인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기교수에서 성공한 벤처사업가가 된 박 교수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으니 돈을 많이 벌고 싶단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현재 약 1000억원의 매출로 1000여 명의 고용을 창출한 셈입니다. 5년 후엔 10만명을 책임지는 회사로 키워갈 계획이죠.” 그의 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Profile
1983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영국 맨체스터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를 받고 1991년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1993년부터 서울 공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1998년부터 에스엔유프리시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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