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 글 | 이소영 서울대 건축학과 06학번ㆍsnusy06@snu.ac.kr |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류 열풍이 초기에는 대중문화에 집중됐지만 이제 다른 분야에까지 퍼지고 있다.
대한민국 건축을 세계에 심고 건축인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최재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를 만났다.
|
따스한 봄날에 서울‘북촌 한옥마을’을 걸으면 하늘과 이어지는 처마선, 땅과 이어지는 넓은 마루, 좁다가도 넓어지는 골목길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반듯하게 자를 재어 놓은 듯한 도시에 지친 현대인에게 신선함까지 전해준다.
최재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북촌에 자주 간다.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920여 채에 이르는 한옥의 매력에 맘껏 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라는 점을 한옥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하지만 불과 수십년만에 우리나라의 주거양식은 한옥에서 아파트로 옮겨갔다. 최 교수는 “한옥이 우리 생활에서 멀어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마당을 둘러싸고 이뤄지는 가족생활을 담아내던 한옥의 공간구조가 아파트에도 고스란히 반영됐고, 온돌 난방방식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한국형 아파트’가 된 것이다.
최 교수는“한옥의 온돌을 응용한 아파트는 아일랜드,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최근 중국 상하이까지 진출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한옥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현대식 건축기법을 연구중”이라며“대한민국 건축의 대중화·국제화를 이끌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세 계 에 수 출 되 는 건 축 기 술
흔히 건축은‘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옥의 현대화뿐 아니라 미래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전 세계에 초고층 빌딩 건설 바람이 거세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만의‘타이베이 파이낸셜빌딩’(508m)이 2004년 완공된 데 이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버즈 두바이 타워’(약 800m)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한국기술로 건설되고 있다. 서울 용산에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빌딩(620m)이 들어설 예정이다.
초고층 건물은 훌륭한 도시 관광자원일 뿐 아니라 한 나라의 건축기술을 상징한다. 또 건물 안에 삶에 필요한 다양한 공간이 집약돼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최 교수는“초고층 건물은 복잡하고 똑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건물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람들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즐겁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 건축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 교수는 학교에서 소문난‘디지털 기기’마니아다. 1980년대 초에 개발된 IBM PC를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조차 거의 처음 사용했을 정도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가 디지털 기기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일찌감치 건축과 정보통신(IT) 기술이 융합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유비쿼터스 주택이 미래 생활양식을 바꿀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보가전 제어시스템’‘CCTV 종합감지 시스템’,‘ 전자태그(RFID)를 이용한 위치기반시스템’같은 영화나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 보던 첨단기술이 주택에 구현된다. 그는 이 같은 최첨단 건축환경을 만드는‘어반 컴퓨팅’(urban computing)을 다각도로 연구한다.
효 율 적 인 공 간 활 용
그는“예전에는 해외 건축사가 국내 사업을 수주할 경우 국내 건축사와 연계해야 했다. 그러나 건축 시장이 개방되면 해외 건축사도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건축시장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국내 건축학과 교육과정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졸업장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전했다. 국내 건축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건축수준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건축학교육 인증 제도가 오래 전부터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건축학교육 인증을 받으려면 5년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커뮤니케이션, 문화적 맥락, 설계, 건축엔지니어링 같은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말과 글로 표현하고 건축과 예술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장 중시한다. 국내 대학 건축학과가 4년제에서 5년제로 전환하고 교육내용을 개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2007년 서울대, 서울시립대, 명지대의 건축학 교육과정이 국내 최초로 정식 인증을 받는데 일조했다.“ 앞으로는 건축학교육인증을 받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학력을 인정받아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며 건축학 교육인증 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강조했다.
중학교 시절 그가 쓴 소설이‘학원’이란 청소년 잡지에 실렸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아니라 과학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이과의 특성을 고루 포함하고 있는‘건축학과’에 진학했다.
하 이 브 리 드 건 축 인
그는 건축에 대한 재능과 감각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유학길에 올라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다. 외국 학생들의 폭넓고 깊이 있는 교양지식을 따라가기 벅찼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히 관련되는 만큼 공학적 이해와 함께 예술적 감각, 인문학적 교양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최 교수는“건축은 하이브리드 학문”이라며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능력을 함께 키워 나가야 자신만의 색을 지닌, 진정한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한민국 건축인의 실력이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P r o f i l e
1980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대 조교수,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 명지대 교수를 거쳐 1998년부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부터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