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정밀화학계 기술리더 이부섭 |
“기술로 리드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
| 글 | 이충환 기자ㆍcosmo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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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개발한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며 1위를 달릴 뿐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세계 표준이 됐답니다.”
올해로 창사 40주년을 맞이한 동진쎄미켐의 이부섭 회장이 ‘동진표’발포제에 대한 자랑을 먼저 꺼냈다. 동진쎄미켐은 1960년대 말부터 정밀화학공학의 불모지에서 우리만의 기술로 발포제를 비롯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공정재료를 국산화하며 선진국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기술로 리드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게 평소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 회장은 정밀화학공학 분야에서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우리나라가 기술독립을 이루고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온 엔지니어 CEO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숨은 공신
동진쎄미켐은 창립 당시인 1967년부터 발포제를 생산해왔고 최근 동진 발포제(수출제품명 ‘유니셀’)를 해외에 수출해 매년 7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발포제는 적정 온도와 압력에서 플라스틱과 고무에 가스를 발생시켜 기포 구조를 갖도록 만든 물질로 샌들이나 테니스공에서 바닥장식재, 벽지, 자동차내장재까지 다양하게 쓰인다. 생산 공정에서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해 환경문제도 해결했다는 점이 동진 발포제만의 특징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동진쎄미켐의 활약은 눈부시다. 요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하이닉스반도체)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다투게 된데는 동진쎄미켐의 뒷받침이 컸다.
“삼성이 반도체산업을 시작할 때 몇천억씩 적자가 발생해 망한다는 얘기가 있었죠. 당시 전자재료를 거의 전량 외국에서 수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개발하기로 선택한 제품이 ‘반도체용 봉지제’(EMC)와 포토레지스트예요.”
EMC는 반도체 회로를 보호하는 전자재료이고,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에 미세한 회로 패턴을 만드는데 필수인 감광성 재료다. 1993년 동진쎄미켐은 1M D램급 포토레지스트를 국내 최초로, 세계 4번째로 개발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해에는 회로선폭을 45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수준까지 좁힐 수 있어 최대 128Gb(기가비트, 1Gb=10억 비트)의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는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포토레지스트의 수입대체 효과는 연간 2000억원에 이른다.
또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 식각재료, 컬러안료 등을 국산화했고 휴대전화 카메라에 쓰이는 이미지센서(CMOS)용 컬러레지스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동진쎄미켐은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휴대전화 카메라의 원가를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
“100년 갈 제품 개발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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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동진쎄미켐 19주년 기념만찬에서 가족과 함께한 이부섭 회장. 이 회장의 큰 아들(맨오른쪽)과 작은 아들(맨왼쪽)은 현재 동진쎄미켐에서 중역을 맡고 있다. |
이 회장이 화학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54년 광화문 천막학교 시절이다. 경기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1950년 한국전쟁이 났고 전쟁이 끝나자 광화문에 천막학교가 설치됐다. 그는“고2 때 과외활동으로 화학반에 들어가 화장품을 만들거나 수소가스로 풍선을 부풀리는 실험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레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고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심정섭 교수의 지도 하에 ‘감광성 수지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에는 공대가 법대나 의대보다 인기가 많았다”며 “요즘 화학공학하면 학생들은 지저분하고 위험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진쎄미켐 연구원들이 전부 클린룸에서 실험하고 현대화학이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과 융합되고 있는 경향을 예로 들었다.
이 회장은 3, 4년 전부터 모교인 서울창천초등학교에 찾아가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매번 ‘할아버지 동창생’을 반갑게 맞아준다고 한다. 이 회장은 “한번은 연료전지를 이용한 장난감 자동차를 움직이는 실험을 보여줬는데, 학생들이 무척이나 신기해해 기뻤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연료전지는 최근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아이템 중 하나다. 이 회장은 “앞으로 연료전지나 태양전지와 관련 있는 에너지산업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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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경기고 3학년 재학 시절의 이 회장. 02_1994년 11월 발포제를 비롯한 동진쎄미켐(당시 동진화성공업)의 제품에 대한 국제표준화기구(ISO) 9002 인증서를 전달받고 기뻐하는 이 회장. |
그의 집안은 400년간 14대에 걸쳐 서울 연희동에서 살아왔다. 이런 집안내력에 걸맞게 그는 “동진쎄미켐이 머크나 듀폰 같은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처럼 100년 이상 살아남는 회사가 되려면 좋은 기술과 획기적인 발명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립 초기나 지금이나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을 개발할 사람이 중요하죠. ”동진쎄미켐에는 50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연구개발자다.“ 연구원의 대우는 삼성에 못지않으며 매년 100억원 이상을 연구비로 투자하고 있다”고 이 회장은 귀띔했다.
그는 “특히 반도체나 염료를 이용한 태양전지를 개발하는데 내년까지 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태양전지 다 햇빛을 쪼이면 전기가 발생하는데, 염료형은 녹인 다음 페인트칠을 하면 돼 반도체형보다 더 간단하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던가. 고희를 맞은 이 회장을 보면 70세가 되도록 산업현장에서 뛰고 있는 엔지니어 CEO는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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