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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일한 나노입자 = 프로페서 현
분야 융합과학/나노 날짜 2011-04-04
균일한 나노입자 = 프로페서 현
| 글 | 이현경 기자 ㆍuneasy75@donga.com |

 
 
   
 
 
발표 논문 115편, 인용횟수 4600회, 교신저자로 발표한 논문 80여편의 평균 과학기술논문색인(SCI) 인용지수 6.46, 재료분야 최고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의 국내 유일 편집자문위원, 나노기술 전문지인 ‘스몰’(small)의 국내 유일 초대 편집자문위원….

1997년 9월 현택환 교수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둥지를 틀고 10년 동안 내놓은 결과다. 모두 나노기술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다. 특히 지금은 세계 어느 학회를 가더라도 ‘균일한 나노입자=현택환’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현 교수가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나노입자 대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나노연구 황무지 개척자

현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음파화학을 이용해 금속 나노분말을 합성하는 내용이다. 지금의 나노 연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1990년대 중반 미국에는 나노연구 붐이 일었다. 그는 틈틈이 논문을 읽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저축’했다.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첫 해 현 교수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과감히 나노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현 교수가 “나노를 연구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니나노 하냐”며 농담할 정도로 국내 나노연구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는 주형을 이용해 나노세공물질을 제조하는 방법을 첫 연구주제로 잡았다. 당시에는 유기물을 주형으로 삼아 이산화규소(실리카) 같은 무기물을 만드는 방법이 널리 쓰였다. 이 과정을 뒤집으면 어떨까. 무기물을 주형으로 삼아 유기물을 ‘찍어’낼 순 없을까.

이런 생각에 착안한 현 교수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나노세공 실리카를 주형으로 이용해 나노미터(nm, 1nm=10-9m) 크기의 나노세공 탄소 소재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나노세공 탄소 소재가 국화빵이라면 나노세공 실리카는 국화빵을 찍어내는 빵틀이었던 셈이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화학회지’에 발표돼 지금까지 215회나 인용됐다.

첫 연구 성과에 힘을 얻은 현 교수는 1999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노입자 연구를 시작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차국린 교수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차 교수는 미국물리학회에 참석했다가 나노입자 합성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IBM슨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머레이 박사(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화학과 교수)가 균일한 코발트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표하는 내용을 들었다.

학회에서 돌아온 차 교수는 현 교수에게 자성체 나노입자를 만드는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현 교수는 흥미로운 주제에 구미가 당겼다. 게다가 박사과정 중 음파화학으로 철 나노입자 콜로이드를 합성한 경험이 있던 터라 현 교수는 선뜻 나노입자 제조에 뛰어들 수 있었다. 1년 뒤 그는 ‘미국화학회지’에 두께 2nm, 길이 10~40nm의 철 나노막대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표했고, 이 논문 역시 지금까지 215회나 인용됐다.


균일하게 만들어야 쓸모 있어

2001년 현 교수는 나노 대가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10nm 크기의 균일한 산화철 나노입자를 소개한 해설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린 것. 핵심은 크기를 균일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나노입자를 같은 크기로 만들어야 작은 공간에 많이 집적할 수 있고 물성도 일정하다.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한꺼번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현 교수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처음이었다.

흥미롭게도 현 교수의 이런 연구 결과를 전세계에 ‘홍보’해 준 사람은 바로 크리스토퍼 머레이 박사였다. 그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현 교수의 연구 논문을 읽은 뒤 충격에 휩싸였다. 머레이 박사 역시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현 교수는 값싼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해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하면서 나노 대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사진은 현 교수가 만든 5nm(1), 12nm(2), 22nm(3)짜리 균일한 나노입자들.
당시 IBM을 비롯한 나노입자 연구의 선두 그룹은 300℃가 넘는 고온에서 화합물을 열분해한 뒤 나노입자를 얻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현 교수는 금속염과 계면활성제를 반응시켜 얻은 착화합물을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가열해 별도의 분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원하는 입자 크기의 균일한 나노입자를 얻었다.

머레이 박사는 현 교수의 논문에 적힌 대로 실험을 했고, 실제로 균일한 나노입자가 만들어지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머레이 박사는 미국재료학회, 미국화학회 등 내로라하는 나노 관련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 교수의 방법을 소개하며 “내가 현택환 교수에게 졌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2004년 드디어 현 교수는 시원하게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1년 개발한 방법은 나노입자 제조에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산업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값싼 나노입자 제조가 필수. 현 교수는 가장 값싼 금속염화물 등 금속염으로부터 균일한 나노입자를 손쉽게 대량으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반응 조건만 조절하면 나노입자의 크기도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었다.

이 결과는 그해 12월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실리면서 CNN에도 소개되는 등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또 2005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뉴 핫페이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월 이 기술은 국내 기업에 이전돼 차세대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와 자기저장매체 등 산업 재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최근 현 교수는 다시 한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월 17일자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새로운 나노캡슐 제조 방법을 발표한 것. 그간 나노물질의 경우 열처리 과정에서 서로 엉겨 붙어 고유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현 교수는 나노입자 표면에 실리카를 입히고 500℃ 이상에서 열처리를 한 뒤 실리카 껍질을 벗겨내는 방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기막힌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현 교수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공격적으로 읽는다”며 “논문 한 편을 읽더라도 저자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여기서 뽑아낼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는지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얻은 아이디어들이 그에겐 ‘보물 1호’라고. 다음엔 현 교수가 어떤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궁금하다.

고수의 비법 전수
‘노 리스크 노 리턴(No risk No return)’. 남들과 똑같은 연구를 해서는 앞서갈 수 없다는 얘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 힘들지만‘신대륙’을 발견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게 현 교수의 지론이다. 그 역시 처음으로 나노세공 탄소 소재를 제조하기까지 연구 주제만 7번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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