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사이언스
  • 과학동아
  • 어린이과학동아
  • 수학동아
  • 시앙스몰
  • 지니움
회원가입 로그인
닫기

동아사이언스

스핀의 연금술사 - 김상국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분야 산업기술/재료 날짜 2011-04-04
김상국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스핀의 연금술사
| 글 | 주원효 서울대 재료공학부 3년 ㆍtemplerjoo@naver.com |

 
 
   
 
 
2001년 12월 젊은 ‘토종학자’가 서울대 공대 교수에 임용돼 화제를 뿌린 적이 있다. 게다가 그는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표지로 잇달아 장식해 표지 논문 제조기로 유명하다. 주인공은 바로 재료공학부 김상국 교수. 10년 후를 내다보며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연구에 헌신하는 그를 만났다.

공대에는 봄이 늦게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기 초부터 학생들을 바쁘게 만드는 공대 공부의 어려움을 대변한 것이겠지만 겨울 관악산 그림자에 가린 공대 캠퍼스는 유난히 쌀쌀하다. 하지만 이 추운 겨울에도 연구를 향한 열정에 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 역시 공대이다. 그 중에서 ‘스핀파 동역학-소자 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재료공학부 김상국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우리를 둘러 싼 스핀
누구나 어린 시절에 자석을 가지고 놀아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자석에 이것저것 붙여 보고 두 자석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을 느껴보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N극과 S극으로 구별돼 있는 막대자석을 쪼개어 두 조각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한 조각에는 N극만 남고 다른 한 조각에는 S극만 남을까? 과학수업 시간에 이미 배웠겠지만 정답은 그렇지 않다.

두 조각이 각각 N-S극을 모두 가진 새로운 자석이 된다. 이렇게 자석을 계속 쪼개다 보면 마침내 물질은 원자 단위, 더 정확히는 원자를 구성하는 각각의 전자가 작은 막대자석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자 또는 전자가 띠는 이런 자기 성질이 바로 스핀이다.

스핀은 매우 생소한 용어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스핀을 이용한 물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전기모터 같은 기계장치뿐만 아니라 철새가 길을 찾아 가는 데 필수적인 생체 내비게이션 센서도 스핀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구도 거대한 하나의 막대자석과 같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생명현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거대한 자석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낯선 이름과는 달리 스핀은 우리의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스핀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팽이가 세차운동을 하며 돌듯이 방향을 움직이고 있다.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가 떨어지면 물 분자 위아래로 움직여 물결파를 만들 듯이 스핀의 세차운동도 파동을 만드는데 이것을 스핀파라고 한다.


하드디스크와 D램의 장점을 하나로
 
   
 
 
김 교수는 스핀파를 이용한 메모리 소자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컴퓨터에서 널리 이용되는 정보저장 장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하드디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D램이다. 이 둘은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하드디스크는 대용량이고 비휘발성(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없어지지 않는 성질)인 반면 크기가 크고 처리 속도가 느리다. 이와 달리 D램은 크기가 작고 처리 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지만 소용량이고 휘발성이다. 김 교수는 이 둘의 장점을 합해 용량, 처리 속도, 크기와 비휘발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차세대 메모리 소자인 V램을 개발하고 있다.

V램은 D램과 구조가 비슷하지만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D램은 정보를 저장할 때 전자의 전하를 이용하고 전원을 끄면 저장된 내용이 없어지는 휘발성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V램에서는 정보를 저장할 때 스핀들로 이루어진 태풍과 흡사한 소용돌이 구조를 이용한다. V램의 개념은 김 교수가 처음 고안한 것으로 매우 적은 에너지로 스핀 정보를 기록하고 수정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응용물리학 분야의 우수한 연구 결과를 엄선해 싣고 있는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에 네 번이나 표지 논문으로 소개됐다. 이뿐만 아니라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도 여러 차례 게재됐으며, 2007년 3월에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주목 받는 연구’로 소개할 만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사실 김 교수는 원래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정신세계와 경이로운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기도 했다. 그 예로 빛은 왜 30만km/sec로 달릴까? 전자는 왜 ‘페르미온’일까? 전자가 만약 ‘보존’이였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로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가 물리학에 매료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스핀공학은 내 운명
그는 “재료공학은 수학, 물리학, 화학 같은 모든 기초과학이 어우러진 전공이라 매우 흥미롭고 연구 분야의 선택 폭이 넓다는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국내 기업은 1~2년 안에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에 관심을 보인다”며 “10년 후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학년 때 KAIST 물리학과 신성철 교수의 자성을 띤 신기한 신물질에 관한 세미나를 들은 뒤 스핀 연구에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석사 시절부터 신 교수의 연구를 이어서 하고 있다”며 “신 교수는 일종의 역할 모델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비전과 신념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김 교수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가장 강조하는 요소는 ‘적성’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일은 결국 가장 잘하게 된다”며 “지금 당장 유망한 분야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적성에 맞아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전공 분야를 선택하라”고 누차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학창시절 때 폭넓은 경험을 쌓아 적성을 빨리 찾는 편이 좋다”고 당부했다.


P r o f i l e
1990년 KAIST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과 1996년 포스텍 신소재공학과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렌스 버클리 미국국립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한 뒤 KAIST 연구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초연구와 응용 소자에 대한 70여 편의 논문을 썼고 관련 분야의 원천기술 특허를 10여 개 보유하고 있다. 창의적연구사업 일환으로 ‘스핀파 동역학-소자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자료첨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