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권위자 박성배 |
꿈을 갖고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가라 |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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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CPU 설계 권위자인 박성배 상무는 “지금까지 25년간 한눈팔지 않고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제품전시장에서 30cm 웨이퍼를 들고 있는 장면. |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연구진들이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독자설계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 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은 우리나라가 16메가 D램을 개발, 메모리용 반도체분야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것과 맞먹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 10월 24일 서울경제신문에서 대서특필한 기사의 일부다. 초당 명령어처리속도가 4000만회에 이르는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당시 미국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는데, 한국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의 씨앗이 되라고 모델명도 ‘SiART(씨앗) 90’으로 붙였다.
SiART 90 개발의 숨은 주인공은 당시 전자통신연구소 컴퓨터연구부의 한 연구원이었다. 그가 바로 박성배(49)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사업부 상무다. 박 상무는 25년간 연구개발현장에서 줄곧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설계하는데 매진해온 국내 권위자다.
반도체 올림픽에서 꿈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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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어머니, 형, 여동생과 함께한 모습. 앞쪽에서 두 번째가 박 상무다. |
박 상무는 32비트 40MHz CPU인 SiART 90뿐 아니라 1GHz CPU를 개발한 주역이다.
“1999년 6월 뉴욕에서 열린 ‘PC엑스포’에서 우리 삼성전자 연구팀이 상업용 1GHz CPU를 세계 최초로 발표하자 미국 관계자들이 모두 깜짝 놀랐죠. 1초에 전기스위치가 10억번 켜졌다 꺼지는 1GHz CPU는 당시 반도체회사의 꿈이자 이정표였어요.” 당시 개발한 1GHz CPU는 1500만개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제품으로 초당 60억번의 연산을 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펜티엄4 PC의 3GHz CPU는 복잡한 계산을 초당 90억번 처리한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박 상무는 반도체회로 설계분야의 올림픽인 ‘국제 반도체회로 학술회의’(ISSCC) 본부 집행위원을 맡기도 했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술회의는 매년 전세계에서 반도체 설계 전문가 3000~4000명이 참가한다. 1983년 처음 ISSCC에 참석한 그는 그때부터 이런 대단한 학회에서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겠다는 꿈을 꿨다.
드디어 1999년 2월 그 꿈을 이뤘다. 절연체 막 위에 실리콘 기판을 올리는 방식(SOI)으로 600MHz CPU를 설계·개발한 내용의 논문을 1200명의 전문가 앞에서 발표했던 것. 이 논문은 ISSCC 우수논문으로 선정돼 미국전자전기학회(IEEE)에서 발행하는 ‘저널 오브 솔리드스테이트 서키츠’(JSSC) 특별판에 실렸다.
미래 혁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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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홍콩 에버딘에서 휴가 중에 찍은 가족사진.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
중심 CPU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월간지 ‘새소년’의 연재만화에서 로봇에 전자두뇌를 집어넣는 장면을 처음 접한 뒤 전자두뇌를 만드는 꿈을 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생과학’ ‘전파과학’ 같은 잡지를 보고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부품을 구해다가 라디오나 무선마이크를 제작했다.
전자두뇌의 꿈을 좇아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했지만 큰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전자기파를 다루는 수식이 왜 그리 어렵던지 ‘내가 왜 전자공학을 택했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학부 때 성적이 썩 좋지 못했죠. 그래도 디지털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전공에 재미를 느꼈고 대학원에 가서 CPU 구조를 배웠어요.”
수식을 풀고 CPU 설계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회로를 직접 설계하고 싶었던 까닭일까. 1982년 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는 바로 연구현장으로 달려갔다. 전자통신연구소에 들어가 국내 최초로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드는데 합류했던 것. 이듬해에는 삼성, LG, 현대와 함께 16비트 CPU를 개발하는 책임을 맡았다.
CPU 칩을 제작할 때는 새벽 4시에 연구소에 출근해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서울로 출장 가 밤샘작업을 했는데, 오가는 차안에서 새우잠을 잔 적이 많았다고 한다. 연구소 시절 너무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동료들로부터 무미건조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SiART 90을 개발한 다음해인 1991년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됐는데, 입사한지 이틀 뒤 미국 현지에 있던 CPU 설계팀에 합류했다.
박 상무는 얇은 실리콘 조각 위에 전기회로를 세밀하게 깎고 다듬은 ‘예술작품’인 CPU를 거대도시에 비유해 설명했다. 2cm×2cm 칩을 20km×20km 도시(일산, 퇴계원, 송파, 영등포를 잇는 지역)로 뻥튀기하면 트랜지스터의 길이인 0.1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는 10cm에 해당해 도시는 폭 10cm 도로에 황금빛 전깃줄을 7~10층으로 빼곡히 쌓아 연결한 모습이란다. 칩에는 CPU의 핵심인 트랜지스터를 수십억개나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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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연구소에 들어가 교육받았을 때 적은 노트 위에 이듬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회로선폭 3μm의 마이크로컴퓨터 칩 사진, 완성된 칩 팩키지, 7.6cm 웨이퍼(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놓여있다. |
최근 CPU의 경향은 어떨까. 그는 “2003년 10GHz 32비트 CPU 시제품이 공개됐지만 CPU는 속도가 빨라지면 전력이 많이 소모돼 열이 많이 나는 게 문제”라며 “요즘 2~4GHz짜리 CPU 여러 개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 큰 이슈”라고 밝혔다. 물론 여러 CPU를 사용할 때 각 CPU가 하는 일을 어떻게 충돌 없이 효율적으로 나누고 메모리와 어떻게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지가 문제다.
머지않아 벽 사방에 설치된 스크린에 알프스산맥이 초고정밀 화질로 실시간에 펼쳐지고 똑똑한 가상도우미가 등장해 가이드할지 모른다. 그는 “이런 시스템의 핵심에 CPU가 숨어있다”며 “IT, BT, 나노기술, 로봇기술이 펼칠 미래 혁명의 중심이 바로 CPU”라고 말했다.
CPU 분야는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한국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박 상무는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앞으로 아이폰처럼 상상력이 중요한 IT제품에는 CPU의 비중이 커질 겁니다. 물은 왜 색깔이 없는지, 중력은 왜 생기는지 같은 질문을 계속하며 상상력을 키우세요.”
마이크로프로세서(CPU)
컴퓨터 시스템 전체의 작동을 제어하고 프로그램의 모든 연산을 수행하는 핵심장치. 중앙처리장치라고도 부른다.
Profile
1958 출생
1981 고려대 전자공학 학사
1982~1991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반도체연구부/컴퓨터연구부 선임연구원
1989 고려대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1991~2004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수석연구원
2003~2007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프로그램위원회 위원
2004~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사업부 상무
2006~2007 ISSCC 본부 집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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