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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공학계 최고의 여성엔지니어 - 대우조선해양(주) 선형연구개발팀 연구원 이연승
분야 산업기술/조선
기초과학/해양
날짜 2011-04-04
한국 조선공학계 최고의 여성엔지니어
대우조선해양(주) 선형연구개발팀 연구원 이연승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우리나라 조선공학 여성박사 1호인 이연승 연구원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인정받으려면 결국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며 “‘최초’는 ‘최고’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최초’는 ‘최고’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 “요트처럼 아름다운 배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설계하고 있어요.” 대우조선해양(주) 선형연구개발팀의 이연승(39) 연구원은 한국 조선공학계 최초의 여성 박사다. 그는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조선공학 분야에서 최초의 여자 대학원생이었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할 때도 선박해양연구소 최초의 여성 연구원이었다. 조선공학 분야에서 ‘여성 최초’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이 박사는 남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선형(船形, 배 모양)설계 실력으로 이 분야를 호령하고 있다.



요트에서 대형 컨테이너선까지
 
   
 
 
7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부산어린이회관 과학관 앞에서.
졸졸 물이 흐르는 청계천 가에 높이 솟아있는 빌딩에서 만난 이 박사의 첫인상은 도회적이었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에게서 알싸한 바다 내음이 났다. “어린 시절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바다가 눈에 들어왔어요. 고등학교 때 주말에 요트를 탄 적이 있었는데, 물살을 가르는 배 위에서 몸을 감싸는 시원한 바람을 느꼈지요. 이 경험 때문인지 막연히 배를 만들어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선공학과에 지원했어요.”

대학에 들어간 뒤 그는 바다와 더 친해지기 위해 4년간 요트서클에서 활동했다. 1987년 대학 1학년 때는 태풍 ‘셀마’가 오기 전날 요트를 타다가 바람에 날아간 적도 있다. 물론 다행스럽게 무사히 구조됐다. 88 올림픽 때는 요트경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바다의 낭만에만 빠져 있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도 있었다. 대학 때 조선공학 공부에 재미를 느껴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그런데 자신이 조선공학 여자 대학원생 1호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바다는 남성의 전유물이고 여성이 감히 배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일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1988년 부산대 조선공학과 2학년 때 선박제도 숙제를 하는 모습. 요즘 컴퓨터 캐드(CAD)를 이용하는 선형설계와 달리 당시 자와 컴퍼스를 사용했던 선박제도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 조선공학에 젊음을 걸기로 결심했죠.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어요. 석사 논문을 거의 마쳤을 때 대학원 세미나에서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온 선박설계 전문가를 만났어요.” 이 전문가가 베를린공대에서 그의 지도교수가 됐다. 그의 전공은 컴퓨터를 이용한 선형설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선박의 경제성, 속도, 연료 효율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모양을 만드는 이 분야는 선박설계의 핵심으로 꼽힌다. 유학 시절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등이 주도한 유럽 최대 규모의 조선 공동 프로젝트였던 ‘칼립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는 항공분야에 적용되던 전산유체역학(CFD)을 이용해 선형을 최적화하는 기법을 검증하는 연구를 맡았다. 이때 유럽 조선업계에서 활동하던 실력파 여성과학자를 여럿 만나면서 여성과학자에 대한 자긍심을 높였다.







“실력으로 호령하라”
 
   
 
 
1992년 11월경 이연승 연구원(왼쪽에서 두번째)은 당시 부산대를 방문했던 독일 베를린공대 호르스트 노바키 교수(왼쪽에서 다섯번째)를 만났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이 연구원의 지도교수가 됐다.
2000년 베를린공대에서 선형설계로 박사학위를 따자 현대중공업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이 박사는 학부를 졸업한 뒤 방문했던 바닷가의 선박해양연구소를 떠올리며 연구소 사상 최초의 여성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물론 남성 위주의 보수적 분위기에서 사회 초년병으로 외로움과 고단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2002년 이 박사가 이끌던 연구팀은 연료를 경제적으로 쓰는 컨테이너선형 설계 연구로 사내 ‘기술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동료 연구원들의 눈길이 달라졌다. 그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인정받으려면 결국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2005년 연구 개발뿐 아니라 현장 업무를 좀더 경험하고 싶어 대우조선해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그가 속한 팀은 스위스 선사(MSC)에서 지난해 의뢰한 1만3200TEU?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개발하고 있다.

초기 설계 과정에서는 엔진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좁고 배에 들어갈 수 있는 컨테이너 수가 모자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끝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은 모형 시험. 우여곡절 끝에 변경한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의 36분의 1로 만든 길이 380m짜리 선박 모형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대형 수조(HSVA)에서 시험한 결과 배의 성능이 예상보다 좋게 나왔다. 18%의 연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보였던 것.

“배의 속도는 일반 선형설계로 0.1노트?도 높이기 어려운데, 선형최적화방법을 대형선박에 처음 적용해 계약속도(24노트)보다 0.9노트나 높였으니 놀라운 결과였죠. 독일 시험소의 다른 자료랑 비교해본 결과 우리 배의 성능이 제일 좋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때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며 큰 보람을 느꼈지요.” 요즘 우리 조선업계는 세계 1위를 달리며 호황이다. 화물선, 컨테이너선, 원유운반선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빅3 모두 ‘수주 100억달러 클럽’에 올해도 무난히 진입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기술력, 가격경쟁력, 장인정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특히 선박 설계에서는 여성의 예리한 손끝 감각으로 배의 성능을 높일 수 있어요.” 이 박사는 “선형설계 분야에서 세계 선두주자가 돼 후배 여성들의 진출을 돕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레저용 요트를 만들어 국내에서 요트가 활성화되는데, 고부가가치 여객선을 건조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며 어린 시절 꿈도 잊지 않았다.


 
   
 
 
Profile
1968 출생
1991 부산대 조선공학과 졸업
1993 부산대 대학원 조선공학 석사
1995~2000 독일 베를린공대 조선해양공학과 대학원,
유럽연합 칼립소 프로젝트 연구원
2000 독일 베를린공대 조선해양공학 박사
2000~2005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연구원
2005 독일 프렌드십-시스템즈 GMBH 객원연구원
2005~현재 대우조선해양(주) 선형연구개발팀 연구원

TEU
컨테이너를 세는 단위. 1TEU는 길이 6.1m, 너비 2.4m, 높이 2.6m의 컨테이너를 말한다. 1만3200TEU 컨테이너선은 이런 컨테이너가 1만3200개 들어가는 선박이다.

노트
선박의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 1노트는 시속 1852m.
자료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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