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불 밝히는 프로메테우스의 후예 -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황일순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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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종림 기자ㆍljr@donga.com |
서울대 핵재료연구실에 들어서자 입구에 걸린 큰 그림부터 시야에 들어온다. 그림 속 주인공은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어여삐 여겨 신의 세계로부터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전해준다. 그 모습이 제우스 신의 화를 사,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잔인한 형벌을 받는다. 과연 이 그림이 연구실 입구에 걸려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메테우스는 우리 연구실의 상징과도 같아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줬을 때 그로 인한 인류의 발전사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원자력’이라는 힘 또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는 에너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수입 비용만 해도 연간 1000억 달러(약 117조 원).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이거니와, 화석 에너지가 고갈되며 에너지 대란에 대한 불안도 커져만 가고 있다.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황일순 교수는 이러한 때 제3의 불, 즉 제3의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주가 순환하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원자력입니다. 화석연료 에너지, 태양열 에너지, 바이오 에너지, 지열까지도 모두 자연 속 원자에서 생성되고 축적된 에너지들이죠. 최근에야 이러한 원자력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알고, 그 보급을 늘리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길입니다. 그 안에서 핵재료의 필요성이 대두됐죠.” 음식재료가 있어야 어떤 요리를 할지 구상할 수 있듯이, 원자력 분야에서도 재료는 무척 중요하다. 아직은 고열과 다량의 방사선을 견디는 현실적인 재료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 환경과 안전에 민감한 핵물질인만큼 재료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설계조차 불가능하다. 원자력 분야가 과거에 물리학 위주로 설계를 이끌고 가던 체계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입자 물리, 원자로 물리, 핵융합 물리, 원자력 안전공학까지 두루 섭렵한 핵재료공학의 사령탑 역할이 필요해진 이유다. ‘원자력 연금술’ 실현할 핵변환 기술 핵재료연구실은 원자력 발전, 핵융합, 가속기의 안정성, 재료의 경제성에 대해 다루는 분야와, 핵물질의 통제와 핵변환을 다루는 분야로 크게 두 가지 연구분야가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력 에너지인 신재생 에너지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양식’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이 때에는 필연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 처리, 즉 핵폐기물 문제가 뒤따른다. 핵폐기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핵융합과 핵변환이 있는데, 핵융합은 아직 상용화가 요원한 미래 기술이다. 반면 핵재료연구실이 개발 중인 핵변환 기술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함으로써 폐기물 양을 1000분의 1로 줄이고 고준위에서 중저준위로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핵연료 속 자원을 활용하면 에너지를 추가로 생산해내는 ‘원자력 연금술’도 가능해진다. 핵재료연구실은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핵변환에너지연구센터를 두고 있다. 총 4층 공간에 마련된 대형 연구센터에는 고가의 첨단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장비는 5000분의 1로 축소된 핵변환로 실증 장치인 ‘헬리오스(HELIOS)’다. 핵변환 과정에서 열 펌프가 발생할 때 자연순환으로 해결돼야 하기 때문에 그 높이는 12m로 유지하되 면적만 축소한 것. 여기에 러시아 잠수정의 군사기술을 응용해 납-비스무스 냉각시스템을 개발했다. 납-비스무스 냉각제는 고열에 의한 화재위험을 줄이는 획기적인 액체금속 냉각제이다. “기존 냉각시스템에 쓰이던 나트륨 대신에 납과 비스무스를 반반씩 사용하면 녹는점이 125℃로 낮아져 화학적으로 안전한 성질이 됩니다. 헬리오스는 납-비스무스 냉각시스템으로 원자로를 설계해 고준위 핵폐기물을 없애는 실증실험을 하는 설비입니다. 실제로 구현될 경우 실증실험 결과보다 5000배 이상의 성능이 보장되죠.”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과정은 핵변환로 ‘피서(PEACER)’에서 구현된다. 여기에서 중저위화된 폐기물은 땅속에 안전하게 버려지고, 남은 것은 다시 피서에서 재처리되는 ‘파이로 프로세스(pyroprocess)’를 거친다. 핵재료연구실은 ‘파이로 그린’이라는 청정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핵폐기물의 관리 기간을 100만 년에서 500년으로 대폭 줄일 수 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선진국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적인 리더로서 꿈 키워 핵재료연구실이 굵직굵직한 기술 성과를 낸 데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한 융합기술을 추구했기에 가능했다. 특히 과학을 넘어 정치, 외교, 안보, 정책, 환경 등 국내외 정세를 꿰뚫어보는 안목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석사과정까지 연구실에서 수행을 하고, 박사과정 이상은 정치학과 법학을 통해 정책적인 소양을 쌓는 경우가 많다고. 연구원들에게 항시 ‘큰 그림을 그릴 것’을 강조하는 황 교수는 근 40년째 원자력 공학의 한 길을 걸어온 거장이다. 현재 IAEA 파이로 프로세스 전문가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납 냉각로 설계코드 검증 태스크포스, 세계납냉각로추진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연맹에서 의장으로 활동하는 황 교수는 척박했던 국내 기술을 선도하고 이제는 세계적인 기술을 주도하기까지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원자력 분야에 뛰어들어 지난 50년간 선진국에 비해 저변 기술을 놓친 게 사실입니다. 중요한 건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는지, 국가가 이익을 취하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안전, 평화, 환경의 키워드를 갖고 국경을 초월한 다국 공동체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핵재료연구실은 국제기구를 통해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리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원자력 기술이 세계화에 앞장서고 국제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큰 자부심이죠.” 아직까지 ‘핵주권’ 제약에 의해 구현이 늦춰진 기술이 많지만 점차 현실단계에서의 가능성을 준비할 때다. 핵재료연구실은 각종 국제회의에 참가해 납-비스무스 냉각기술을 비롯한 원천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에는 IAEA 전문가 회의를 통해 파이로 그린의 기술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올해 미국 현지에 미국, 벨기에, 한국의 공동연구센터 설립을 추진해 본격적인 파이로 그린의 실증에 앞장설 계획이다. 그래서인지 핵재료연구실의 분위기는 책상에 앉아서 학문적인 연구에만 파고드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필요한 시설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 관리한다. 거기에서 도출된 데이터를 이론으로 정리해 국제적인 연구활동을 펼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핵재료연구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어렵고 힘든 내용의 학문 수행이 뒤따릅니다. 그 과정을 견뎌내는 일이 쉽지는 않죠. 하지만 ‘대기만성’형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곳에서 연구하면서 세계적인 무대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목소리를 내는 리더로서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고수의 비법전수 공학자에게 수학과 물리는 기본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를 체계적으로 학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탄탄한 기본기를 마련해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