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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 안전 지키는 ‘족집게 명의’ - 서울대 재료공학부 권동일 교수
분야 산업기술/토목
산업기술/재료
날짜 2011-04-04
구조물 안전 지키는 ‘족집게 명의’
서울대 재료공학부 권동일 교수
| 글 | 이정호 기자 ㆍsunrise@donga.com |

 
 
   
 
 
“어떤 물체가 얼마나 튼튼하고 약한지 궁금할 때에는 일부를 떼어내 부숴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구조물을 온전히 보호하려는 안전 검사의 본래 목적과 모순이 생깁니다. 우리 연구실에선 이 문제를 계장 압입화 기술로 해결합니다. 건설 현장에서 압입자라는 뾰족한 침으로 구조물에 지그시 압력을 가한 뒤 떼어내는 거죠.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물리적 변화로 구조물의 안전성을 측정하는 겁니다.”

지난 3월초 만난 서울대 재료공학부 권동일 교수는 자신이 이끄는 나노역학신뢰성 연구실의 임무를 이 같이 설명했다. 이 연구실에서 개발한 ‘계장화 압입기술’은 세라믹 소재로 만든 뾰족한 침인 ‘압입자’를 접촉시켜 교량이나 파이프와 같은 구조물의 강도와 잔류 응력 등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물체를 부수지 않고도 부숴서 검사하는 효과를 얻는 게 핵심이다.

현재 여건에서 계장화 압입기술을 쓰지 않고 강도를 알아내려면 구조물에서 떼어낸 재료를 가져와 양쪽으로 잡아 늘리거나 자르는 실험을 해야 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몸 내부에 집게를 넣어 조직을 떼어내 진단검사실에서 각종 실험을 거치는 셈. 환자(구조물)는 오랫동안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검사 시 스트레스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비해 계장화 압입기술은 전문의의 촉진(觸診)이나 한의사의 진맥에 비유된다. 손으로 몸을 눌러보듯 압입자로 구조물을 누른다. 눌렀다 떼는 동안 구조물에서 발생한 각종 물리적 변화를 종합해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를 뽑아낸다. 누르는 힘이 세지 않기 때문에 구조물이 부서지는 일은 없다. 압입 장비만 있으면 실험실이 아닌 현장에서 바로 강도를 측정할 수 있어 안전성 검사에 드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세라믹 침으로 구조물에 압력 줘 안전성 알아내
연구실은 2001년 ‘저널 오브 머티리얼스 리서치’ 등을 비롯해 세계적인 학술지에 이 연구를 다룬 논문을 꾸준히 게재하면서 학계와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2005년에는 미국 특허도 받았다.
“이 기술은 발전소, 화학 플랜트, 가스 파이프라인, 철도 레일 등에 폭넓게 적용됩니다. 모든 구조물은 힘을 받거나 온도 변화를 겪으면 마치 생명체처럼 성질이 변하는 데 그 정도를 알아내 사고를 방지하는 게 우리 임무죠. 구조물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오차 범위 10% 이내에서 뽑아내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실제로 계장화 압입기술은 그 품질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계장화 압입이 표준 기술로 채택됐다.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국제 규격에 승인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가 이런 성과를 낸 데에는 지난 10여 년 간 연구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것과 동시에 개발된 기술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벤처 기업을 운영한 전략이 큰 몫을 했다.
“1999년에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지정연구실에 선정됐지요. 이때부터 계장화 압입기술의 기틀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우리 연구실에선 새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2000년에 프론틱스라는 벤처 기업을 세웠어요. 연구실이 연구개발에 주력하면 프론틱스는 제품을 생산하고 마케팅에 힘을 쏟는 이원구조를 가동한 거죠.”

실제로 프론틱스에 재직 중인 인력의 상당수는 마케팅 등 관련 분야의 외부 전문가다. 연구원들이 이일저일에 손대며 동분서주하는 아마추어식 경영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시스템의 장점은 판매 성과가 설명해 준다. 2001년부터 미국 시장을 공략한 프론틱스는 현재 엑손, 모빌, 쉘 등을 고객으로 삼고 있다. 세계 에너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공룡 기업들이 나노역학신뢰성 연구실의 기술력과 프론틱스의 제품 생산능력, 마케팅 역량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미국에는 오래된 가스 파이프라인이 많아요. 이 때문에 5년마다 파이프의 강도를 측정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 제품이 그런 규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이 기업들에서 받은 겁니다. 지금도 미국 시장에서 프론틱스의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죠.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가 있지만 프론틱스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공학도 ‘통섭’하는 생각 길러야
권 교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비파괴검사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벤처기업을 통한 상업화에도 성공한 인물이 된 것은 그의 지론 때문이다. 공학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까지 잘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믿음이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군 빌 게이츠를 보세요. 비록 개인적인 지향에 따라 대학을 중퇴하긴 하긴 했지만 그는 공학적 소양에 경영 마인드를 접목시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앞으로는 ‘통섭’이 대세가 될 거라는 얘기예요.”
권 교수가 예고한 것은 기술경영인이 대거 배출되는 시대였다. 실제로 그는 이 같은 조짐이 국내에서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휴맥스를 비롯해 국내 대표 벤처기업 대부분은 경영인으로 변신한 공학도가 주축이 됐다.

“공학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인문사회학 서적을 많이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과학자나 공학자는 ‘관찰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통섭에 힘을 기울이면 시대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인이 될 거예요.”
권 교수는 계장화 압입기술의 범위를 대형 구조물에서 소형 물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진출한 일본 시장에서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났다. 일본에선 대형 구조물보다 소형 부품의 강도를 측정하는 데 관심을 두는 수요자가 많다. 현재 계장화 압입기술의 주력 시장은 덩치가 큰 구조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작은 전자 부품의 강도를 측정하는 데에도 활용될 것으로 권 교수는 평가했다.

권 교수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 과학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의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 대다수가 대통령, 군인, 경찰을 장래 희망으로 삼았다. 과학자는 당시로선 꽤 특이한 취향에 해당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를 발견했어요. 장래 희망을 언급한 대목이 있었는데 ‘난 과학자가 될 거다’라는 글씨를 꾹꾹 눌러썼더군요. 그 소신을 공대에 진학하면서 현실로 만든 선택에 지금도 만족합니다. 공학계 진학을 둘러싸고 요즘 많은 걱정들이 있지만 공학을 기초로 한 경영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고요. 지금 제가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을 후배들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공학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인문사회학 서적을 많이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과학자나 공학자는 ‘관찰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통섭에 힘을 기울이면 시대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인이 될 거예요.”

고수의 비법전수
좌뇌와 우뇌의 가치를 골고루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대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다. 공학에 기초해 관심 분야를 넓히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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