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애야 강하다
이수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 글 | 이현경 기자 ㆍuneasy75@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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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목소리 30dB(데시벨), 자장면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 95dB, MP3플레이어에서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100dB, 배고픈 아기의 울음소리 115dB, 강변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 125dB. 이 중 당신에게 불쾌한 소리는?
시끄러우면 학습 능력 떨어진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이수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애매한 답을 내놨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이 정답이란다. 소음(noise)은 말 그대로 ‘원치 않는 소리’다. 인간의 귀는 20~2만Hz 대역을 들을 수 있다. 소음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이들 대역의 세기. 대개 50dB부터 소음으로 간주한다. 총이 발사되거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130~140dB의 인체에 치명적인 소음이 발생한다.
그런데 너무 조용해도 사람은 불안해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주변에 40dB 정도의 ‘적당한 소음’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소음은 음파를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객관적인 연구대상인 동시에 사람의 감성이 개입되는 주관적인 연구대상인 셈. 국내 환경 소송에서 소음 관련 분쟁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이 교수가 이끄는 공력소음연구실은 을지대 의대와 공동으로 소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소음을 듣기 전과 후, 뇌에서 알파(α)파, 베타(β)파, 감마(γ)파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측정한다.
예를 들어 군사공항인 수원 기지에서는 전투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는데, 공항 인근 2~3km 안에 학교와 병원 같은 건물이 밀집해 있다. 학생들과 환자가 전투기 소음에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다. 이 교수팀은 소음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자세히 연구할 계획이다.
실제로 최근 선진국에서는 소음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거대한 국립공원이 많은 미국에서는 소음이 멧돼지나 다람쥐 같은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특히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가정이 늘면서, 국내에서도 가령 “도마뱀의 사인이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임을 밝혀달라”는 소송까지 제기되고 있어 관련 연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예 소음의 생물학적 영향과 관련된 사안을 전담하는 위원회인 ICBEN을 두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 ICBEN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약방의 감초, 소음
헬리콥터, 선박, 잠수함, KTX 그리고 자동차. 공력소음연구실이 커버하는 연구 대상은 한둘이 아니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해 이들 중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 그래서 이 교수는 소음을 ‘약방의 감초’라고 표현했다.
대상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블레이드(날개)가 돌면서 소음을 발생시킨다. 연구실의 첫 ‘히트작’은 자동차용 냉각팬. 이 냉각팬은 2003년부터 한라공조가 연간 200만 개를 생산해 전 세계 자동차 회사에 수출하고 있다.
헬리콥터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헬리콥터는 로터(회전날개)를 돌려 수직으로 이착륙하기 때문에 소음의 대부분이 날개에서 나온다. 미 육군연구소는 저소음 헬리콥터를 개발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 교수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 주제도 헬리콥터의 소음을 줄이는 블레이드 디자인이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2년부터 3년 동안 국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동일한 주제를 연구했다.
최근 이 교수팀은 한국형헬기개발사업(KHP)에 참여해 효율은 높고 소음은 작은 블레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헬리콥터가 일정한 궤도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상하좌우 다양하기 때문에 블레이드를 설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 교수는 “여러 움직임에 적용할 수 있는 최적 모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04년부터 3년 가까이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풍력사업단 단장을 맡았다. 풍력과 소음이 무슨 관계길래. 풍력발전기는 블레이드 지름이 100m, 높이가 150~180m인 거대한 ‘바람개비’다. 바람이 불면 블레이드가 돌아가며 발생시킨 운동에너지가 발전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로 변환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풍력발전기 한 기당 20~30억 원을 호가한다. 블레이드를 빨리 돌리면 그만큼 전기생산량이 늘어 풍력발전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 아직 이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연구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선두주자는 풍력이다. 태양광에 비해 효율이 높고 생산 단가가 낮아 덴마크의 경우 전체 에너지 공급량의 20%를, 스페인의 경우 10%를 풍력이 담당한다. 수요도 폭발적이다. 연구실은 두산중공업과 함께 3메가와트(MW, 1MW=106W)급 풍력발전기를 개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러브콜’
한국은 좁은 땅덩이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인구 밀도가 높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비해 소음에 민감하다. 그만큼 소음 관련 분쟁도 많고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소음이라는 연구 주제의 특성상 물리학, 수학, 음향학부터 사회학, 심리학, 의학을 전공한 사람까지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이 교수도 연구실의 모토를 ‘환경, 에너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넓은 개념으로 정했다. 그만큼 소음이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뜻.
공력소음연구실 식구 20명의 색깔도 다채롭다. 대신 연구실 세미나에서 오가는 내용은 대부분이 어려운 수식과 복잡한 그래프다. 이 교수는 “소음 발생 원인과 효과적인 디자인을 찾기 위해서는 정확한 계산이 필수”라고 말했다.
소음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로부터 ‘러브콜’도 잦다. 소음 관련 환경 분쟁이 잦은 탓에 이 교수에게 소음의 정의부터 ‘강의’들으러 오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판사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아예 이 교수에게 소음 강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야구장 관람객의 응원 소리를 모두 모으면 계란 하나 구울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가 나온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태우고 우주로 날아간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이 발사할 때 내는 굉음은 지구촌 100억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공력소음연구실의 연구 열정을 다 모으면 몇 dB이나 될까.
헬리콥터, 선박, 잠수함, KTX, 자동차, 그리고 풍력발전기. 공력소음연구실은 이들의 소음을 잡기 위해 오늘도 열정의 데시벨을 올리고 있다.
고수의 비법 전수
기술 방향의 흐름을 꿰뚫어라. 앞으로는 어떤 분야든 환경과 관련된 연구가 빠질 수 없다. 소음도 마찬가지다. 찾아보면 적용되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스스로 찾고 개척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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